코로나19 이후 가족 모임이 많이 줄었다. 엄마에게 손녀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드리지만, 아이들이 직접 보고 싶어서 주말에 가끔 대전으로 올라오신다. 엄마가 오시는 날은 아이들을 잠시 맡기고 쉴 수 있어서 좋다. 엄마는 손녀들을 마음껏 볼 수 있고, 나는 휴식을 취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상부상조, 일거양득이다.
엄마는 그야말로 에너자이저다. 아이들 둘과 쉬지 않고 놀아주신다. 그러니 아이들도 서로 할머니와 놀고 싶다며 난리가 난다. 울음도 그치지 않는다. 셋이서 사이좋게 놀면 되는데, 첫째 딸이 할머니 바보라서 문제다. 할머니가 계시면 둘이서만 놀려고 한다.
요즈음 아이들은 할머니 품에서 많이 자라서 그런가? 나는 할머니와 깊은 정을 갖고 찾아뵌 기억이 없다. 할머니의 존재가 우리 딸처럼 크게 자리 잡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만약 지금 엄마처럼 재미있게 놀아주고 사랑으로 돌봐주었으면 다를 수도 있었다.
주말에 엄마가 다녀간 뒤에는 아이들보다 내가 많이 적적하다. 엄마가 곁에서 함께 지냈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의지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엄마 앞에서는 어린아이가 되어 버린다. 두 아이의 엄마이지만, 나도 한 엄마의 딸이기도 한다. 가끔은 엄마 앞에서 응석도 부리고 싶고, 푸념도 늘어놓고 싶다.
물론 나의 욕심이라는 것도 안다.
‘엄마도 엄마의 삶을 희생하며 우리를 키웠겠지?’
라는 생각을 하는데도 엄마가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이는 대한민국 육아 맘들의 대부분 희망사항이 아닐까 싶다. 특히 워킹맘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해내려면 배우자의 도움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 자리를 친구 같은 친정엄마가 채워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
엄마는 나의 모든 것을 알고, 함께 나누는 사람이다. 그런 엄마가 잠시 왔다가 머물고 자리는 늘 그립고 또 그립다.
오늘도 수화기 넘어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현정아, 아이들 잘 케어하고, 밥 잘 챙겨 먹어. 건강이 우선이야,”
엄마의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다. 엄마가 보고 싶은 33살의 어린 딸이 되어버린다.
오늘도 두 아이의 엄마는 ‘엄마의 엄마’를 그리워하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