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 욕심이 많은 워킹맘이다. 집에서 가만히 아이들을 보면서 육아만 할 자신이 없었다.
전업주부도 집에서 해야 할 일이 진짜 많다. 하나부터 열까지 아이들도 살펴야하고 집안 정리일도 해야 한다. 2017년 첫째 아이를 낳고 돌이 지나 나는 일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첫째 17개월 때 둘째를 임신하면서 일을 시작하기에는 무리였다. 하지만 난 둘째를 낳고 진짜 일을 시작할 거야 스스로 다짐을 하면서 둘째를 출산하기를 기다렸다.
둘째가 낮잠을 자는 어느 날, 영화 [88년 김지영]을 보면서 감정이입을 하며 하염없이 눈물이 흘리고 있었다. 분명 다정다감한 신랑의 육아도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육아는 힘들었다. 첫째는 문화센터도 다니고 여기저기 여행도 다녔는데, 둘째는 문화센터 다니기도 힘들고 두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갈 자신도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두려웠다. 내가 육아를 하면서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시간이 너무 소중한데 짜증을 내며 하루하루를 힘들어하고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어 첫째 어린이집을 보내고, 둘째와 오전 활동을 한 뒤 낮잠을 자는 시간 틈틈이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의 시작은 별거 없었다. 노트북을 켜고 노트한권을 준비하여 배워보고 싶은 창의 교구 수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180만원의 투자비용이 필요했다. 창의 학습 교구와 교수안을 평생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여서 나는 투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이가 낮잠 자는 시간을 기다리며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3개월 동안 시간을 쪼개어 공부를 하며 창의수학 보드게임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경력이 없었던 나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습만이 살길이라 생각하고 어린 두 딸들과 보드게임 교구로 놀아주었다. 딱 한 가지 목표를 갖고 ‘아이들이 등원을 하면 오전에는 집안일을 하고, 오후시간에는 생산적인 일을 하자.’ 나는 워킹맘으로 살 것이다.
그 후, 둘째가 14개월 때, 첫째가 있는 어린이집으로 입소를 했다. 엄마라면 두 돌까지는 아이를 돌봐야 하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에 사로잡힌 엄마들이 많다. 하지만 그건 엄마의 생각이다. 요즈음은 외벌이로 살아가기 힘든 시대이다. 엄마들도 경제활동을 시작하며 아기들은 자연스럽게 돌이 지나면 어린이집을 간다.
두 아이들이 등원하는 꿈에 그린 시간이 돌아왔다. 전업주부에서 워킹맘의 도약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주5일 출근이 아닌 주3회 출근으로 일을 하러 나오는 것 자체로 즐거워했다. 온전히 내가 다른 공간에서 다른 영향을 주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선생님의 직업에 점점 매력을 느껴가고 있었다.
전업주부가 아닌 일하는 엄마, 워킹맘을 선생님을 선택한 이유는 하나이다. 수업이 끝나면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두 딸들에게 부리나케 달려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첫째 딸이 ‘엄마 언니오빠 잘 가르치고 왔어? 엄마 선생님이잖아.’ 나도 모르게 마음 한 구석에 감동이었다.
딸의 한 마디에 나는 일을 하고 있는 뿌듯함이 올라왔다. 때로는 포기하고 싶을 만큼 몸이 힘들 때 딸의 한마디가 나를 일으켜 세워준다. 엄마는 일하는 엄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