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내 안에 내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유 없이 마음이 무겁고, 왜 우울한지도 모르겠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 지조차 모를 때.
분명 어제와 다르지 않은 하루인데, 어딘가 무너져버린 것 같은 기분.
그럴 때마다 나는 책을 꺼낸다.
말이 많은 책보다는 조용히 말을 건네는 문장을 좋아한다.
위로하려 애쓰기보다, 나 대신 조용히 울어주는 문장이 좋다.
책은 때로 거울이 된다.
내가 보지 않으려 했던 마음을 비춰주고,
말로 설명 못 한 감정을 누군가 먼저 꺼내줄 때,
그 문장 속에서 ‘아, 이게 나였구나’ 하고 깨닫는다.
꼭 나와 같은 상황이 아니어도,
그 문장이 가진 고요한 힘이 마음에 닿는 순간이 있다.
내가 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되는 순간.
하지만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있다.
그럴 땐 나는 필사를 한다.
문장을 따라 쓰는 일은 생각보다 묘한 힘이 있다.
그저 베껴 쓰는 것 같지만,
반복되는 손끝의 움직임 속에서 어느새 마음이 정리된다.
손으로 문장을 새기다 보면, 그 말이 점점 내 것이 된다.
그리고 그 문장을 선택한 ‘나’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된다.
‘왜 이 문장이 좋았을까?’
‘나는 왜 이 구절에서 멈췄을까?’
그 이유를 설명해 보려다 보면, 자연스레 나의 생각과 감정이 모습을 드러낸다.
필사는 내 안의 소리를 끌어올리는 조용한 채널 같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조금씩, 아주 천천히 나를 알아간다.
물론 필사와 독서가 당장의 답을 주는 건 아니다.
하지만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게 해 준다.
책 속의 문장과 나란히 걷다 보면,
혼란스러웠던 내 감정에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이름 붙인 감정은 더 이상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때때로 스스로에게 낯설어진다.
세상과 나 사이에서 길을 잃기도 하고, 감정에 휩쓸려 자신을 잊기도 한다.
그런 순간, 독서와 필사는 아주 단순하지만 깊은 위로가 된다.
말 없는 대화, 조용한 울림, 그리고 나를 향한 천천한 안내.
내가 나를 모를 때, 책과 펜을 권하고 싶다. 그 안에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