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러운 적응이 남긴 조용한 변화
중학교 1학년 무렵, 나는 하루 네 시간씩 그림을 그리고, 시험이 다가오면 책을 달달 외웠다. 특별하다기보다는 그저 눈앞에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낸 것이었다. 그 시절에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질문조차 없었다. 몸이 먼저 움직였고, 손은 연필을 쥐고 있었다. 책상 위에 교과서와 스케치북이 함께 놓여 있는 풍경은, 지금도 오래된 흑백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을 가능하게 한 건 나의 의지가 아니라 환경이었다. 언덕길 30분을 걸어야 하는 학교와 달리, 미술학원은 집에서 불과 몇 분 거리에 있었다. 가까움은 생각보다 큰 힘을 가졌다. 피곤하다는 핑계를 댈 틈을 주지 않았고, 어쩌다 발걸음을 돌리려 해도 이미 학원 간판이 눈앞에 있었다. 가까움은 나를 매일 그곳으로 향하게 했고, 반복되는 발걸음은 어느새 루틴이 되었다. 그 꾸준함이 내 안에 작은 돌멩이처럼 단단한 끈기를 남겼다.
환경을 바꾸는 일은 언제나 마음 한구석의 결심을 필요로 한다. 나는 개발자가 아님에도 컴퓨터 한 대와 모니터 세 대를 들였다. 처음엔 불필요한 사치처럼 보였다. 책상 위에 박스들이 쌓이는 동안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비용은 만만치 않았고, ‘이게 과연 나에게 어울리는 일일까’ 하는 의심이 따라붙었다.
하지만 세팅을 끝내고 책상 위를 바라본 순간, 풍경이 달라졌다. 모니터 세 개가 나란히 불을 밝히고 있는 모습은 작은 관제탑 같았다. 화면은 넓었고, 넓어진 화면만큼 생각도 확장되었다. 동시에 여러 창을 띄우고 일하는 동안 머릿속은 정리되고, 마음은 조금 더 담대해졌다. 작은 풍경의 변화가 하루의 리듬을 바꾸었고, 그 리듬은 곧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 결국 환경이 먼저 변했고, 그 뒤를 따라 루틴이 변했다.
새로운 루틴에 적응하기까지는 늘 한 달이 걸렸다. 그 한 달은 참으로 고통스러웠다. 몸은 낯선 리듬을 거부했고, 집중은 자꾸 흩어졌다. 한 번 시작한 일인데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매일같이 떠올랐다. ‘이걸 계속해야 하나’라는 회의가 머리를 짓눌렀다. 하지만 그 시기를 버티고 나면, 불과 석 달 전의 내가 낯설 만큼 달라져 있었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서른 개가 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예전에는 하나만 해도 버거웠다. 그러나 죽을 맛 같은 적응의 계절을 여러 번 지나고 나니, 이제는 여러 개를 동시에 다루는 일이 더 자연스러워졌다. 몸은 고단했지만, 이상하게도 머리는 더 차분해졌다. 마치 체력이 붙어 긴 거리를 달릴 수 있게 된 러너처럼, 나는 몰입의 시간을 오래 이어갈 수 있었다. 변화는 늘 가장 고통스러운 구간을 지나야 찾아왔고, 그 흔적은 나를 조금씩 단단하게 만들었다.
미라클 모닝을 처음 시도했을 때, 나는 새벽 세 시에 일어나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세상 어딘가에는 그렇게 하루를 열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일상은 나에게 낯설었고, 동시에 강렬한 자극이었다. 나 역시 해보고 싶었지만, 아침마다 실패했다. 눈은 쉽게 떠지지 않았고, 알람은 몇 번이고 꺼졌다.
아이까지 새벽에 함께 깨어버리는 날이면, 괜히 아이 탓을 하기도 했다. ‘내가 공부를 못하는 건 아이 때문이야’라는 변명은 잠시 마음을 달래주었지만, 결국 내 의지 부족을 더 뚜렷하게 보여줄 뿐이었다. 그러나 억지로라도 그 시간을 버티고 나자 조금씩 달라졌다. 몸이 새 리듬에 익숙해지고, 밤을 새우는 것보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졌다. 새벽은 그렇게 내게 찾아왔고, 새로운 리듬으로 스며들었다. 어느 날 문득, 새벽 공기의 차가움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순간이 찾아왔다.
운동도, 공부도, 창업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도전하지 않았다면 일상은 평범하게 흘러갔을 것이다. 하지만 실패하더라도 도전한 기억은 오래 남았다. 때로는 실패가 성공보다 더 선명했다. 땀 냄새, 쓰라린 좌절, 그 순간의 무력감까지도 생생하게 각인되었다.
그리고 수많은 실패 끝에 찾아온 성공은, 그 잔상 위에 얹힌 작은 열매에 불과했다. 실패와 좌절이 바탕이 되었기에 성공은 더욱 확실한 존재감을 가졌다. 중요한 건 몇 가지를 하느냐가 아니었다. 목표라는 그릇이 어디에 놓여 있는가, 그리고 그 그릇을 지탱하는 환경과 루틴이 무엇인가. 그것이 나의 길을 결정했다.
AI를 처음 접했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순간부터 실제로 실행하기까지 꼬박 1년이 걸렸다. 새로운 변화를 본능적으로 거부했고, 인간보다 못한 점을 찾기에 바빴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한 번 쓰기 시작하자 달라졌다. 서류작업의 효용성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이 단숨에 단축되는 경험은 낯설고도 경이로웠다. 개발의 효용성을 깨닫기까지는 다시 반년이 더 걸렸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익숙해지며 생활 속에 스며들었다.
지금은 열 개가 넘는 AI 툴을 쓰고 있다. 하지만 손에 자연스럽게 익은 건 세 가지다. 클로드, 커서, 챗GPT. 이 도구들은 이제 숨쉬듯 내 곁에 있다. 모니터를 늘리고, 자동화를 연결하며 환경을 다시 세팅했다. 루틴은 또 한 번 바뀌었고, 나는 그 변화에 만족한다. 이제 남은 건 성과뿐이다. 그래서 다가오는 9월 9일, 사회서비스박람회를 향해 다시 한 번 달려가고 있다.
창업은 내 삶을 더욱 주도적으로 만들었다. 아직 세상에 보여줄 만한 성과는 없지만,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하기 싫은 일도 감내하게 되었고, 더 크게 성장하고 싶은 열망도 커졌다.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압박은 종종 숨을 막히게 했다. 그러나 다른 시각으로 보면, 여전히 배울 것이 있고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은 감사였다. 불안과 초조는 자주 찾아왔지만, 내가 만든 루틴 속으로 들어가면 어느새 감정은 사라졌다. 새로운 도전은 또 다른 실패를 낳았고, 그 실패 속에서 나는 살아 있음을 느꼈다.
환경이 바뀌면 내가 바뀌었다. 그리고 그 바뀐 나는, 실패와 도전 속에서 매번 다시 태어났다. 그것이 지금까지 내 삶을 지탱해온 방식이었다. 죽을 맛 같은 한 달을 지나야만, 조용히 찾아오는 변화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