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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즐성 Dec 07. 2023

남편이 육아휴직을 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낳은 지 9년이 된 맞벌이 부부다. 첫째를 낳고 아내인 내가 육아휴직을 해서 아이를 돌봤다. 복직을 한 달 앞둔 어느 날, 둘째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길로 육아휴직을 연장하게 되고, 2년 9개월 간의 공백을 거치고 복직을 했다.


생후 3년은 기관에 맡기지 않고 직접 돌봐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믿었고, 다른 분에게 맡기는 건 믿을 수 없었다. 집과의 거리가 300km가 넘는 곳에 계시는 시어머님께 부탁을 했다. 일요일 저녁에 올라오셔서 아이들을 돌보고 금요일 저녁에 내려가시는 일정의 강행군을 3년간 하셨다. 그리고 정부에서 하는 아이돌봄서비스의 돌봄선생님이 2년간 아이들의 하원부터 저녁을 먹이는 것까지 4시간가량을 돌봐주셨다.




그렇게 2년 전, 첫째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고, 다시금 누가 아이들을 돌볼 것인지 고민이 필요했다. 연년생이라 첫째가 1학년을 보내면 둘째가 연이어 1학년을 맞이한다는 사실 또한 함께 고려해야 했다. 여러 대안을 두고 몇 날 며칠을 고심했다. 


1안 : 돌봄선생님의 시간을 늘려서 7시간 돌봐주시는 걸로 변경한다.

2안 : 시어머님께 다시 부탁한다. 

3안 : 남편이 육아휴직을 한다. 

4안 : 아내가 육아휴직을 한다.


점점 남편의 육아휴직 쪽으로 기울어졌다. 내가 조금 몰고 가기도 했다. 그렇게 휴직을 권한 것은 사실, 나의 억울함도 있었다. '육아휴직이 말처럼 쉽지 않지, 너도 한번 당해봐라. 생후 1년을 했었어야 했는데, 지금은 많이 자라서 그 정도까지 손이 가는 것도 아니고, 아이가 학교에 가 있는 시간 3시간 정도는 있을 테니 그래도 24시간 붙어 있는 것보단 나을 거야.'


그렇게 남편의 육아휴직으로 결정이 났고, 팀장님의 허락을 득하기 위해 설득하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갖가지 이유를 대고 최종 허락을 받아냈다. 입사하고 한 번도 쉰 적이 없었던 그는 장밋빛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나 또한 그에 대한 기대가 컸다. 


특히, 내게 지워져 있는 많은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겠다 생각했다. 기존에는 돌봄선생님이 오셨기에, 출근하기 전에 아이들 아침을 챙기면서, 아이들 저녁도 냉장고에 준비되어 있어야 했다. 집이 더러워져 있으면 안 되니까 로봇청소기의 전원 버튼을 누르고 출근해야 하기에, 방바닥에 있는 물건들을 전부 어딘가에 올려둬야 했다.


또한, 돌봄선생님의 퇴근시간을 사수해야 하기 때문에, 야근은 웬만하면 피해야 했다.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남편과 미리 상의해서 '네가 갈래', '내가 갈래' 결정해야 했다. 어린이집에서 공지할 때 쓰는 키즈노트 앱을 매일같이 내가 확인하지 않아도 되고, 음식 준비도 할 테니 식재료 사는 것도 본인이 할 테고, 빨래나 청소는 그래도 종종 하겠지? 기대했다.




그런데 웬걸, 기대는 하나씩 무너지고 있었다.

나의 정규 퇴근시간은 6시인데, 6시 30분쯤에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제 와?"

"우린 저녁 뭐 먹지?"

업무를 부랴부랴 한다고 하지만, 퇴근시간인 6시가 되어도 하고 있던 일이 마무리되지 않아 보통은 30분 정도는 늘 더 했었다. 그런데, 왜 6시에 땡 하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지 않느냐고 물었다. 맞는 말이긴 한데, 일이 안 끝나서 마무리하려고 했다고 변명해 보았지만 먹히지 않았다. 그의 말도 일리가 있었으니까.


일이 많은 날은 아침에 일찍 출근하면 되겠지 싶었다. 딸 둘의 머리를 잘 못 묶겠으니까 머리만이라도 묶어 달라고 했다. 그런데 머리를 묶는 일은 등교 준비가 다 된 상태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밥을 먹고 양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난 뒤에 해야 하는 일. 그렇게 난 출근도 일찍 못하고, 퇴근도 늦게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돌봄선생님의 퇴근시간 8시에 맞춰서 오는 것보다 더 빨라야 했다.


남편은 요리를 꽤 잘하지만, 아이들을 위해 한 음식을 먹는 것은 좋아하지는 않았다. 볶음밥을 하면 4인분을 하면 될 텐데 뭔가 자꾸 다른 걸 먹고 싶어 했다. 아이들 밥 따로, 어른 밥 따로이다 보니 외식이 줄지 않았다.

회사에서도 퇴근시간을 넘기지 않으려고 부랴부랴 조급하게 일했다. 갑자기 회의가 소집되면 짜증이 났고, 급하게 다른 일정이 끼어들면 불안했다. 어차피 야근수당이 있는 것도, 특근수당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일을 하느냐는 잔소리가 너무 듣기 싫었다. 일을 못해서 야근을 하는 거 아니냐고 비꼬는 것 같았다.


그렇게 조급하게 집에 왔는데, 집구석은 폭탄 맞은 공간이었다. 아이들은 좀 어지르면서 놀아야 한다는 것은 우리 집 개똥철학이었다. 발 디딜 틈이 없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먹일 밥을 하고선 소파에 앉아 인터넷을 했다. 웹툰을 보거나 뉴스기사를 보았다.


나는 집으로 다시 출근을 했는데, 본인은 퇴근을 하는 것 같았다. 문제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나는 속에서 열불이 난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내가 왔어도 아직 육아 퇴근은 아니지 않나? 육퇴는 원래 애들이 자야 가능한 건데? 아니, 우리가 자려고 눈을 감을 때까지 퇴근한 게 아닌데?




얘기를 들어보니, 남편도 자기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직장 다니는 것을 잠시 쉬면서 본인이 배우고 싶었던 걸 배웠다. 아이들이 줄넘기학원과 미술학원을 갈 시간에, 주변에 있는 학원에 가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다. 문제는, 악기를 배운다는 것은 연습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연습은 언제 할 수 있는가? 아이들이 학교를 가면 할 수 있는 거였다.


하교를 하고 난 후에는 학교 앞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노는 동안 친구 엄마들과 두세 시간을 서 있으며 담소를 나눴다. 다행히 남편은 엄마들 사이에서 예쁨 받으며 잘 지냈지만, 서서 얘기를 나누는 거 자체가 진이 빠지는 데다가 점심도 거르기 일쑤였다. 3시쯤 되어서야 뱃속을 대충 달래고 둘째를 픽업해서 학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저녁을 먹이려고 요리를 준비하면서는 내가 언제 오나 오매불망 기다렸던 것이다. 얼른 집에 와서 함께 아이를 돌볼 수 있게 되기를 고대했다. 6시 30분이면 이제 좀 해방이 되지 않을까 소망하며. 그렇게 기다린 6시 30분. 내가 사무실에 있다는 얘기에 큰 실망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좋은 부모가 되어 보겠다고 온 힘을 다해 6개월을 좌충우돌하며 보냈다. 그가 그렸던, 또 내가 그렸던 장밋빛 미래는 없었지만. 


지금도 아이들의 돌봄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워킹맘에게 남편의 육아휴직을 권한다. 아이들과의 관계가 좋아지는 것은 기본이고, 가장 좋은 건 남편의 말과 태도니까. 적어도 현재 전업주부 아내인 나를 '놀고' 있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오늘도 '고생' 좀 해달라고 부탁하며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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