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선물하는 비일상
자유를 꿈꿨다. 늘어지게 늦잠을 잘 수 있는 자유, 배고플 때 밥을 먹을 수 있는 자유, 걷고 싶을 때 밖에 나가 산책을 할 수 있는 자유, 볼일을 보고 싶을 때 화장실에 갈 수 있는 자유, 친구들과 수다 떨며 천천히 식사할 수 있는 자유를.
일상이었던 일들이 육아를 하면서부터는 비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회사를 다니고, 아이를 돌보는 일만으로도 벅찬 시간들이 일상이 되었다.
첫째 아이가 만 5세가 됐을 때, 시어머니가 돌봐주시던 체계에서 돌봄선생님이 돌봐주시는 체계로 넘어갔다. 달라진 시스템으로의 적응기간 중에 있었다.
어느 날, 아이들 돌봐주시던 돌봄선생님이 미리 잡아두신 휴가 일정이 있어서 미리 양해를 구해 오셨다. 3일간 돌봄에 공백이 생겼다. 그 기간 동안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했다. 남편과 내가 번갈아 휴가를 써서 아이들을 돌보는 방향으로 정했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색다른 제안을 하나 했다. 시어머니께 아이들을 부탁하고, 우리 부부 둘이서만 3박 4일간 해외여행 가는 것은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터무니없다 여겼다. 아이들이 아직도 우리를 많이 찾는 상황인데 과연 가능할까? 주변 다른 사람들이 미쳤다 그러는 거 아냐? 아이들에겐 뭐라고 설득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의 얘기를 알아들을까? 이렇게 길게 떨어져 있었던 적이 있나?
이내 황당한 마음은 사그라들고 솔깃해졌다.
할머니가 봐주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할머니와 지내는 게 어색하지는 않을 거야. 주변 사람들이 뭐라 하면 어때? 우리도 이제 좀 숨을 쉴 때 된 거 아닌가? 좀 커서 말귀도 제대로 알아들으니까 설명하면 무슨 말인지 알 거야. 유인책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어떤 당근들을 준비해 두지?
결정했다, 태국 여행을 가기로.
아이들을 설득하는 일, 그리고 여행 가 있는 동안 기다림이 지겹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고민했다. 이벤트 기획을 즐겨하는 남편은 '보물찾기'를 제안했다. 매일 하나씩 수수께끼를 풀며 보물을 찾는 것이다. 장소에 대한 힌트를 적어서 아이들이 유추할 수 있도록 했다. 보물을 찾으면 또 다른 쪽지가 있어서 다음 날의 보물장소에 대한 힌트가 담겨 있는 방식이다.
보물은 '피규어' 장난감으로 정했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로 작은 크기의 피규어를 한창 잘 가지고 놀던 시기였다. 서로 역할을 정해가면서 캐릭터들과 가상으로 대화하는 것을 즐겼다. 하루에 만 원을 소요예산으로 잡고 골랐다.
아이들에게 엄마아빠가 잠시 여행을 다녀올 테니 3 밤만 할머니와 지내고 있으라고 말을 했다. 슬픈 표정을 지으며 왜 같이 가지 않는지 물었다. 속으로 답했다. '지난해에 너희들이랑 같이 마카오 갔다가 걷지 않고 계속 안아달라 그래서 너무 힘들었어. 그래서 당분간 해외여행은 같이 못 가...'
잔머리를 굴려가며 아이들에게 며칠에 걸쳐 설득을 했다. 아이들에게는 며칠에 걸친 일방적 통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보물찾기 게임을 할 거고, 매일 보물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며 달랬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아이를 두고 태국을 가게 되었다. 아침 일찍 떠나는 비행기라 아이들이 자고 있을 때 집을 나서서 그랬는지 우리의 발걸음은 그리 무겁지 않았다.
둘이서만 가는 해외는 신혼여행 이후로 7년 만에 처음이었다. 아이와 지지고 볶다가 갑자기 둘이서만 남겨졌다. 어색함은 잠시였다. (아이들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았다.
비행기표와 숙소만 달랑 예약해서 왔지만 전혀 부담되지 않았다. 숙소 옆 작은 시장에 가서 망고도 사 먹고, 유명한 시장에 가서 쇼핑도 했다. 걷다가 조금 지치면 수박주스(땡모반)도 사서 마시고, 곳곳에 있는 마사지샵에 들어가 마사지를 받았다. 오랜만에 둘이서 셀카도 마구 찍었다.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우리 부부에게 주어져서 너무 감사한 하루하루였다. 고갈된 에너지가 충전이 되고, 버티고 있던 마음이 힐링이 되는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자유를 만끽하며 3박 4일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긴 시간이기도 했지만 짧은 시간이기도 했다. 돌아와 보니 다시 일상이었고, 현실이었다. 선물로 주어진 여행은 그야말로 '꿈' 같았다.
일상에서 꿈만 꾸던 일들을 경험해 보니 생각보다 별 게 아니었다. 걱정과 달리 아이들은 할머니와 너무도 잘 지내주었다. 우리가 준비한 보물찾기 이벤트에도 큰 환호로 기뻐해 주었다. 씩씩하게 일상을 살아준 아이에게도 고맙고, 배려해 주신 시어머니께도 고맙고, 둘이서만 여행 다녀오자고 제안해 준 남편에게도 고마웠다.
이번에는 좀 길게 비일상의 시간을 가졌지만, 잘게 쪼개서라도 비일상의 시간을 갖는 것이 육아의 늪에서 리프레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 생각했다. 내 상황이 여기서 더 나아질게 뭐가 있냐고 한탄하고 주저앉기보다는 조금은 불량한 것 같아도, 이기적인 부모가 되는 것 같더라도 비일상을 한번 경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