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처 : 도망하여 몸을 피하는 곳
휴학 한번 없이 대학을 다녔다. 4학년 2학기 수업이 마치는 12월 무렵 입사를 했다. 입사 5년 차에 결혼을 하고 7년 차에 아이를 낳으려고 출산휴가 3개월, 육아휴직 1년을 신청했다. 그렇게 나의 20대는 마무리되었다.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엄마라는 역할에 조금은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복직할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양가 부모님은 멀리 계셔서 아이를 맡길 곳은 어린이집뿐이었다. 본격적으로 아이를 누구에게 어떻게 맡길지 고민하기 전이었다. 아이가 11개월쯤 됐을 때 둘째가 뱃속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회사에 미리 알려야 했다. 둘째가 생겨서 바로 복직은 힘들다고. 출산휴가를 들어갔다가 다시 육아휴직할 계획이라고 말씀드렸다. 날짜를 계산해 보니 한 달 정도의 갭이 생겼고 그건 일반휴직으로 처리해 달라고 요청드렸다.
이왕 아이 둘을 낳을 거면 복직했다가 1년 정도 일하다가 다시 들어가느니 이게 낫겠지 싶었다. 하지만 고단했던 지난 일 년을 되돌아보며 같은 생활을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은 자명했다. 그리고 한 명이 아닌 두 명을 24시간 케어한다는 사실은 머리로는 알았지만 가슴으로는 몰랐다.
동생이 생긴 걸 아는지 이전보다 더 내게 매달렸다. 화장실을 가는 것도 몇 번의 설득이 필요했다. 몸은 무거워지는데 자꾸 안아달라고 해서 불룩 나온 배를 힙시트 삼아 위에 올려 안았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할만했다, 둘째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해서인지 더욱 힘이 부쳤다. 18개월 차이 연년생 자매를 돌보는 일은 아이 하나를 돌보는 일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렇게 2년 9개월을 온전히 엄마의 역할에만 충실히 하며 살았다.
긴 공백기를 끝내고 회사에 복직을 하게 되었다. 육아휴직이 1년이라 감사했다. 휴직을 사용할 수 있어서도 감사했지만, 더 길지 않고 1년이라 더욱 감사했다. 매일 아침 머리를 감고 옷을 갖춰 입고 구두를 신고 어딘가에 갈 곳이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나는 아이들로부터 도망하여 몸을 피했다, 회사로.
회사에서는 지정된 자리가 있었다. 느닷없이 방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공간에서 내게 주어진 일들을 잘 처리해 나가면 되었다. 오랜만에 나만의 공간이 확보되어 있다는 것 같아서 감사했다. 내 자리에서만큼은 내가 어느 정도 컨트롤이 가능했고 예측 가능했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최소 10시간 정도는 물리적으로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다. 퇴근 후 아이와 부대끼는 것은 하루종일이 아니라 퇴근 이후시간부터 잠드는 시간까지 만으로 한정적이었다.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는 미안함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한정적으로 정해져 있기에 오히려 그 시간을 알차게 보내려고 계획하게 되었다.
복직 후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었다. 관련 교육은 지방에서 2박 3일간 진행하는 일정이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 하룻밤도 떨어져 본 적이 없었기에 교육을 가도 되는 것인지 아닌지 망설였다. 아이들을 돌보는 시어머니와 퇴근 후 온전히 아이들을 케어해야 하는 남편에게 미안했다.
가족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교육에 참여하게 되었다. 출발할 때 마음은 무거웠는데 교육장소에 도착해서는 오히려 마음이 가볍고 편안했다. 다른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기에 온전히 교육에 집중할 수 있었다.
숙소는 기본적으로 2인 1실 사용인데 어찌 된 영문인지 나는 혼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2박 3일로 기간은 짧지만 내게 주어진 작은 숙소도 나만의 공간으로 누릴 수 있어서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저녁에는 숙소에 돌아와 개인시간을 보내면 됐다. 하지만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오늘 배운 내용을 복습했다. 공부하다가 궁금한 게 생기면 다음 날 질문하려고 노트에 적기도 했다. 혼자 조용한 공간에서 내가 계획한 일을 누군가의 간섭 없이 하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회사는 공식적으로 나에게 공간을 주었다. 회사 내에 지정된 자리를 주었고, 가끔이지만 강의 수강을 위해 지방 숙소를 잡아주기도 했다.
회사로의 복귀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만, 어쩌면 당당하게 도피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이유도 한몫했다. 1평도 안 되는 그 공간에서 나름의 자유를 만끽했던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