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보다 회사에서 더 편안함을 느꼈다. 회사는 나만의 사무공간이 있다. 노트북과 모니터, 전화기, 각종 참고자료들이 책상에 놓여있다. 내 마음대로 책상 위 물건들을 정열해 두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가족사진을 붙여두기도 하고, 화분을 키우기도 하고, 가습기를 가져다 두어 건조함을 없애기도 한다. 내 자리에 다른 사람이 침범하지 않기에 사무실 의자에 앉아 있을 때만큼은 안정감을 느낀다.
집으로 돌아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현관을 지나 거실로 들어서자마자 아이들이 어질러놓은 장난감들로 차 있다. 평일의 부엌은 시어머니 공간이라 침범 불가 지역이다. 안방은 4명이서 잘 수 있는 패밀리 침대가 방을 꽉 채워 놓여 있다. 방 하나는 아이들 책방이자, 시어머니가 주무시는 방이다. 마지막 방은 아이들 놀잇감이 있는 장소이다. 베란다에는 온갖 잡동사니 짐들로 가득 채워져 있어 문만 겨우 열린다.
집은 마음의 상태를 보여준다고 한다. 어지러운 집을 보는 내 마음도 혼미하다.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은 시어머니를 포함해서 5명인데 거의 모든 공간이 아이를 위한 공간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방 하나를 통째로 나만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을 원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곤란했다.
다른 엄마들은 어떤 방식으로 공간을 만들어나가는지 궁금했다. 사정은 비슷비슷했다. 부부만이 살았던 공간에서 아이가 있는 가족의 공간으로의 변화는 아이에게 모든 공간을 내어주고 있었다. 아이가 점점 커나가며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베란다 공간에서 작은 책장과 테이블을 놓고 커피 한 잔을 마신다고 했다. 예쁜 원목 테이블 위에는 고급진 접시에 담긴 호두파이와 막 내린 커피를 담은 머그잔이 놓여있다.
어떤 분은 베란다에 캠핑의자와 작은 휴대용 테이블을 펴놓고 OTT를 보기도 하고 맥주 한잔을 마시며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을 때는 식탁 한편에 태블릿과 책, 필기구 정도 갖다 둔다고 한다.
집 안을 둘러본다.
아이들 놀이방으로 가본다. 놀잇감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기에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다음은 베란다로 가본다. 모든 물건들을 빼내어 정리할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문을 닫는다.
안방으로 들어가 본다. 방에 겨우 들어가는 큰 사이즈 패밀리 침대가 있다. 침대 옆에 협탁을 두기엔 협소하다. 장롱과 침대 사이에 40cm 정도 장롱 문이 딱 열릴 정도의 공간이 있다. 그곳에서 책을 읽거나 다이어리를 쓸 수는 없지만 누울 수는 있다. 아이들과 숨바꼭질할 때 누워서 숨을 줄만 알았다. 잠시 아이들과 거리를 두고 싶을 때 눕는 것도 꽤 괜찮은 생각이다.
안방과 화장실 사이에 화장대가 있다. 조명이 어둡다. 등받이 의자가 아니라서 어딘지 불편할 것 같다. 하지만 앉아본다. 언제부턴가 화장대의 본 역할은 하지 못하지만 소품 몇 개 정도는 올려놓을 수 있다. 가족 모두 잠드는 공간이라서 사용시간에 제약을 받는다. 아이들의 잠을 절대 방해할 수 없다.
다른 방으로 가본다. 신혼 때 샀던 2인용 패브릭 소파가 눈에 들어온다. 소파 위 공간은 이미 물건들이 점령해 있지만 한쪽으로 밀면 된다. 밀고 나서 앉아본다. 오래된 저렴한 소파지만 딱딱한 벽이 아닌 곳에 등을 기댈 수 있다니! 잠시나마 편안했다.
방을 돌아다니며 공간을 찾다 보니 그곳에서 하고 싶은 일들이 무엇일까 고민한다. 멍하니 앉아만 있어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을 비치할 수 있으면 더욱 좋을 것 같다. 내가 편하게 생각하는 공간에서 나의 취향이 담긴 물건들로 나만의 공간을 다시 찾아본다.
책, 다이어리, 독서대, 필기구, 머그컵. 이렇게 물건 5개만 있으면 될 것 같다. 어딘가에 올려두기만 하면 되는데 그 어딘가를 찾아본다. 마땅한 테이블이 안 보여서 작은 좌식 찻상으로 대신한다. 어제는 아이 방에, 오늘은 거실에 둔다. 한 곳에 머무를 수도 있지만 노마드가 되어 여러 곳을 전전하는 것도 나름의 묘미가 있다.
언젠가는 가지게 될 나만의 구별된 공간을 꿈꾼다.
그렇게 오늘도 그 공간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