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복직했다. 아이 둘을 연달아 낳으며 2년 9개월 간의 공백기간을 마쳤다. 정기적인 점심시간이라는 게 주어졌고 앉아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아이의 울음소리 대신 키보드를 치는 경쾌한 토닥토닥 소리가 들렸다. 말이 통하는 사람들과 대화다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첫째는 집 앞 어린이집에 보냈고, 돌을 갓 지난 둘째는 어린이집에 가기엔 좀 어리다고 판단했다. 남편과 오랜 상의 끝에 내린 결론은 시어머니가 집으로 오셔서 아이를 봐주시는 것이다.
시부모님 댁과 우리 집은 거리가 300km가 넘는다. KTX로 2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를 매주 일요일밤에 올라오셨다가 금요일 밤에 내려가는 일정이었다. 어머님은 헌신적인 스타일이시다. 눈을 뜨고 눈을 감을 때까지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모든 시간을 쏟으셨다. 특히 부엌일에 열심이셨다.
아침도 그냥 가볍게 먹는 법이 없다. 과일 2-3종류, 각종 야채가 들어가 영양 가득한 주먹밥, 견과류, 미숫가루, 비타민까지 모두 먹어야 집을 나설 수 있다. 나의 아침은 안 챙겨주셔도 되는데 그냥 넘어가는걸 못 보신다. 꼭 챙겨주신다.
정신없이 준비하고 바삐 출근길을 나선다. 회사에 가서도 정시에 퇴근할 수 있도록 나를 채근했다. 공식적인 회식일정이 잡혀도 어떻게든 빠져나갈 궁리를 한다. 하루종일 아이와 씨름하실 텐데 그냥 맡기는 게 너무 죄스러운 마음이다. 그렇게 부랴부랴 일을 마치고 가도 할 일은 태산이다.
아이들과 놀기도 해야 하고, 아이들이 어지럽혀 둔 것을 치우기도 해야 하고, 아이들을 씻기고, 머리 말려주고, 옷 입히고, 잠 잘 준비를 하는 것도 하세월이다. 아이들 물품을 구매하기도 하고, 집에 고장 난 부분을 수리하기도 하고, 수시로 남편과 상의도 해야 한다.
시어머니는 방으로 들어가서 쉬실 생각은 못 하신다. 부엌에서 요리와 설거지 등 뒤치다꺼리하느라 10시가 넘어야 부엌에서 나오신다. 시어머니가 계속 부엌에 있다 보니 나도 또한 방에 들어가서 누울 수도 없다. 남편이랑 싸울 수도 없다. 잠깐 소파에 앉아 있고 싶어도 직무유기인 것 같다고 느낀다. 부지런히 몸은 움직이지만 마음은 편치 않다. 그냥 마음 편히 10분만 누워 있고 싶다.
아침엔 회사로 출근하고, 저녁이 되면 집으로 출근을 한다. 아이가 잠들고 내가 눈을 감아야 퇴근을 한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기 전까지는 퇴근한 게 아니다. 집은 그저 추위, 더위, 비바람을 막아주는 역할만을 감당할 뿐이었다. 이 한 몸 편히 누일 곳이 없다.
1평만 내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조용한 곳이면 좋겠다. 캡슐로 된 작은 공간이라도 괜찮다. 검색을 시작했다.
공간을 대여해 주는 사이트에 들어가서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주로 테이블과 의자로 구성되어 있는 회의실이나 파티룸이 많았다. 마땅치 않았다. 작은 원룸을 빌려서 예약 없이 마음껏 드나들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월세 30만 원짜리 반지하 방에 자기만의 공간을 꾸민 어떤 50대 여성분을 영상을 통해 보게 되었다. 침대라고 하기에는 좀 높지만 창 옆에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1명이 쓰기엔 충분한 아담한 테이블도 있었다.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검색해 보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었다.
사실 나는 남 탓을 하고 있었다. 시어머니가 부엌일을 너무 오래 하시고 방에 안 들어가시니까 내가 쉴 수가 없잖아? 남편이 집안일 좀 하면 좋은데 엉덩이가 왜 이렇게 무거운 거야? 아이들은 왜 이렇게 정리를 못 하지? 어린이집에서는 잘한다는데 집은 왜 이렇게 어질러 놓는 거지? 같이 정리하자고 해도 엄마가 잘하니까 나보고 하라는 건 뭐지?
공간의 문제는 내 마음의 문제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어머니가 손녀들을 위해 희생하고 계시는 모습을 보고 나도 그에 맞게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고 단정 지었다. 내가 소파에 앉아 있다고 해서 눈치를 주거나, 빨리 침대에 들어가 눕는다고 해서 야단을 치지 않으신다. 그냥 내 마음대로 성급하게 미리 짐작했다.
남편도 퇴근하고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싶다. 집안일도 부지런하게 하고 싶다. 하지만 마음처럼 움직여지지 않을 뿐이다.
사실 내 한 몸 누일 곳은 집 안의 모든 공간이었다. 거실에도, 부엌에도, 안방에도, 아이방에도 난 어디든 앉아있고 누울 수 있다.
이제 마음가짐을 달리 해본다. 내게 맞는 공간을 찾아 헤매는 걸 멈춘다. 그저 내게 편안한 공간을 만들어 보겠다고 결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