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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즐성 Dec 12. 2023

엄마의 변화를 부르는 질문

내 딸이 엄마인 나처럼 살기를 바라는가?

엄마처럼 살기 싫었다. 시장에서 천 원짜리 콩나물을 500원어치만 달라고 요청하는 엄마가 부끄러웠다. 명절이 되어도 친정집에 가지 않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가정주부로 치열하게 살아갔기 때문인지 정작 본인을 위해 돈과 시간을 쓰지 못하는 엄마가 어리석게 보였다. 통장 관리는 하지만 경제력이 없는데서 오는 무력함은 일상 속 여기저기서 티가 났다.


그래서일까? 가정주부가 되기보다는 어딘가에 소속되어 꾸준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나도 남들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했다.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남들처럼 이런 단계로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인생 여정인 줄 알았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건강하게만 태어나길 바랐다. 아이를 낳아보니 오로지 육체적으로 건강하기만을 바라지는 않는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데, 엄마의 욕심은 더더욱 끝이 없다.


아이가 어려운 일을 겪더라도 그걸 발판 삼아 더 높이 뛰어오를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공부를 하기 위해 억지로 읽는 것이 아니라 읽기를 즐기는 어른이 되기를 바란다. 어릴 때만 꿈을 꾸는 게 아니라, 꿈을 가진 어른이기를 바랐다.


회사에서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집에 왔는데 초등학교 1학년인 첫째 딸이 내게 물었다.

"엄마는 꿈이 뭐야?"


'앗, 올 것이 왔구나.' 

언젠가는 받을 질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내게 물어볼지 몰랐다. 엄마인 나는 아이들이 꿈을 가진 어른이기를 바랐지만, 아이들에게 바라는 그 어른이 나는 과연 되어 있는가? 나는 꿈을 가진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4년 전, 돌봄선생님께 아이의 보육을 맡기면서 회사 일, 육아와 가사 만으로도 벅차던 시절이 있었다. 일도 놓치고 싶지 않고, 육아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 당시, 스케줄러에 짤막하게 쓴 메모를 옮겨본다.

< 2019. 9. 21. 다이어리에 썼던 메모 >
모성애를 강요한 사회.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난 입을 다물고 눈을 감고 귀를 닫았다. 워킹맘으로서 안팎으로 팍팍한 내 삶을 내 딸들이 살게 된다면? 치가 떨렸다.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모습을 보고 자란 내 딸은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이게 당연한 거라 생각하고 주위의 시선을 신경 쓰며 나는 없이 살아가는? 그건 아니지. "내"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먼저 돼야 해. 나처럼만 살아라! 라기보다는 엄마의 삶도 괜찮네~ 이런 느낌이면 좋지 않을까? 내가 바뀌지 않는 한 같은 삶이 대물림될 거야. 정신 차려야지.


나는 엄마처럼 살기 싫었는데, 엄마처럼 살고 있었다. 내용은 조금 다를지 몰라도 답습하고 싶지 않았던 엄마가 내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어디에 가치를 두며 살아가는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무엇을 더 배우고 싶은지? 질문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당시에 어떤 일 때문에 내가 이렇게 급발진한 것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가진 시간과 에너지라는 자원을 제대로 분배하지 않았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었을 것으로 추정만 할 뿐이다.


내 딸이 엄마인 나처럼 살기를 바라는가?


이 질문만은 엄마인 나에게 변화를 주기에 충분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선택과는 다른 선택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눈앞에 있는 것을 해치우는 데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멀리서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고 한다. 소중한 내 딸에게 내가 바라는 것처럼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 읽는 사람, 꿈이 있는 사람이 바로 내가 되어야 했다. 


아무것도 시도한 것이 없어서 실패 없는 삶을 살기보다는 큰 어려움이 닥쳐도 자신을 믿고 튀어 오를 줄 아는 사람. 

읽고 쓰는 것을 즐길 줄 아는 사람.

꿈을 가지고, 그 꿈을 향해 한 걸음씩 전진하는 사람.


아이를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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