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결혼한 지 10년이 되는 날이었다. 나는 육아휴직 중이었기에, 남편의 회사일정만 고려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나보려 했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여파로 해외 나가는 것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 여행은 흐지부지 됐다.
결혼 10주년을 기념하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남편과 둘이서 오랜만에 영화도 보고 점심도 함께 먹었다. 그리고 카페에 가서 종이를 한 장 꺼내 끄적였다.
우리의 결혼생활 10년을 돌아보며 어떤 의미 있는 일들이 있었는지 함께 나열해 보기 시작했다.
1. 4인 가족이 되다.
2. 첫 내 집 마련!
3.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은 승진
4. 아이 없이 둘만의 여행
5. 시부모님 댁에서 6개월간 얹혀살기
6. 남편의 육아휴직
7. 두 딸, 의젓한 초등학생이 되다.
8. 겁 없는 자매, 엄마 아빠 없이 둘이서 또봇트레인 타다.
9. 코로나 확진으로 안방에서 감옥생활
10. 주식을 시작하다.
10가지 일들 중에, 7가지가 모두 출산과 육아로 인해 의미 있다 생각한 일들이었다. 나머지 3가지 중 2가지는 가정경제에 관한 일이었고, 1가지는 승진에 대한 일이었다. 직장에 대한 것은 딱 한 가지뿐이었다.
결혼생활에 있어서 출산과 육아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것 같다. 아이가 둘이 되면서 4인 가족이 되고, 엄마라는 역할에 큰 비중을 두었다. 연년생 육아에 자신이 없어서 시댁에 얹혀살기도 했다. 육아에 전념한 나머지 아이 없이 여행을 다녀오는 일이 우리 부부에게 큰 힐링을 가져다주었다. 어느새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었고, 덕분에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기도 했다. 엄마, 아빠 없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아이들을 보며 우리 부부는 큰 감동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결혼 12년 차가 되다 보니 점점 아이보다는 내게로 초점이 옮겨지고 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나는 직업적으로 무엇을 가지고 싶고 무엇을 누리고 싶은지?
생각해보지 못했다. 먹고사는데 급급했다. 직장생활을 습관처럼 하다 보니 회사와 집을 오가기만 할 뿐 생각하며 지내지 못했다.
직장에 오면 내가 원래 하던 루틴한 일들에, 종종 튀어나오는 문제들을 빠르게 해결하기에 급급했다. 다른 직원들의 여러 요구사항에 즉각 대응하고, 새롭게 떠오르는 일들은 어떻게 하면 빨리 쳐낼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일에서도 중요하고 긴급한 일들을 먼저 해야 한다고 배웠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시작하기 두렵고 무서운 일들을 다음으로 미루고 중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은 일들을 먼저 하기도 했다.
일하는 엄마라서 오랜 시간 함께하지는 못하더라도 짧은 시간을 아이와 집중해서 놀아주라고 배웠다. 하지만 집에 오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집안일들에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다. 아이와 함께 논다고 하지만 내 눈은 빨래에 가 있고 내 손은 어질러진 장난감을 치우고 있었다.
현재로서는 어쩔 수가 없다며 생각 없이 바쁘게 살았다. 이런 삶의 방식을 아이가 있다는 핑계로 고수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했다.
앞으로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생각해 보고 진단해 보고 실행하면서 잃어버린 내 삶의 의미를 찾아 나설 때가 온 것 같다.
사는 대로 생각하기보다 생각하며 살아가기를.
나의 상황에 잠식되기보다는 주도적으로 행동하며 살아가기를.
앞으로 5년, 10년, 20년, 나는 어떤 의미 있는 일들을 만들어가고 싶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