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준비, 나는 대기업을 떠나기로 했다.

대기업 퇴사, 행복을 쫒다.

by 천만장자 홍사장


요즘 청년들의 취업이 어렵다는 소식을 많이 접한다. 현직에서 신규 입사자의 나이만 봐도 현재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다. 누구는 일을 하고 싶어 간절함과 열정을 다해 노력하고 준 바를 하고 있지만, 어떤 이는 그 일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벽을 설계하고, 주말을 평일보다 더 바쁘게 지내고 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있을 뿐 무엇이 옳고 그름을 따질 문제는 아니다.


나도 역시 취업을 목표로 간절함을 표할 때가 있었다. 대학시절, 나는 지방 국립대를 다니며 자신만의 우물 안에서 콧대를 세우며 신나게 놀고 흥청거리며 지냈다. 선배들의 말로는 어디든 이력서만 쓰면 데리고 간다며 걱정하지 말라는 유혹에 빠져 세상 물정 모르고 한참 동안 세상을 즐겼더랬다. 하지만 군대를 다녀온 뒤, 점점 취업이 어려워진다는 소식을 듣게 되게 되고 처음으로 미래란 것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었다.


'취업을 못하면, 대학원에 진학해서 공부를 좀 더 해볼까?'

'취업을 못하면 부모님 앞에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있을까...'


이런저런 걱정으로 인해 앞으로 펼쳐질 인생에 대한 희망찬 꿈을 꾸기보다는, 먹고살아야 한다는 걱정에 사로 잡혀 머리 속이 혼탁해졌고 급한 나머지 당장 눈앞의 결과만을 쫒게 되었다. 당장의 결과를 쫒은 결과, 나는 대학교 3학년부터 취업이 확정되었고 (노예) 근로계약을 통해 장학금도 지원받게 되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고 있는 대기업이었으며, 기숙사도 제공해주고 있어 입사만 하면 나의 인생은 행복으로 가득 찰 것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 나머지 대학생활을 즐기고 또 즐겼다.




2008년 2월 입사.


나는 염원하던 그 대기업에 입사하게 되었다. 물론 2년 동안 장학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2 배수인 4년 동안은 퇴사나 이직을 할 수 없다는 근로계약서를 제출하긴 했지만 그런 것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고

일에 대한 보상으로 월급을 주며

따듯하고 시원한 기숙사를 제공해 준다는데


이런 곳을 버리고 내가 이직을 한다? 퇴사를 한다? 그때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생각했다. 나는 공대생들이 꿈꾸는 연구원으로 지원해 연구소로 입사하게 되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연구원이라고 하면 하얀 가운을 입고 연구소에서 멋지게 실험을 하는 모습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연구원이라는 멋진 꿈을 꾸며 신입사원 연수를 힘차게 마치고 앞으로 일하게 될 제품 개발 부서에 배정받게 되었다.


첫 출근.


지금 생각하면 정말 긴장되고 떨리며 불안했던 것 같다. 잘 어울리지도 않는 양복에 생전 처음으로 들어보는 서류 가방, 불편한 구두에 어색한 발걸음. 보기에는 다 똑같은 신입사원으로 보였겠지만, 그때 당시 나의 가슴속에서는 직장생활에 대한 불타는 열정이 있었으며, 그 패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채찍과 당근


수습기간이 지나고 난 뒤 나는 직장생활의 맛을 제대로 느끼기 시작했다.


밥 먹듯이 이어지는 야근에 계속되는 금요일.(월화수목금금금)

내가 소화해 낼 수 있는 업무의 160%는 해낼 수 있어야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조직.

하루라도 일찍 퇴근을 하게 되면 다음 날 업무가 2배로 뻥튀기되어있는 이기적이 사회.

밤 11시에 시작하는 회식. 그리고 새벽 4시까지 이어지는 술자리.


밤 11시에 퇴근하며 '미안합니다'를 외쳐보았는가?



사람이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싶을 정도의 직장생활이었지만, 나는 지치지 않았다. 다행히도 처음 입사했을 때 장착했던 불타 오는 열정과 패기가 아직 남아 있었고, 그것은 나의 직장생활의 원동력이자 버텨낼 수 있었던 힘이었다. 덕분에 나는 신입사원 동안 2번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


베스트 연구원상

매년 실시하는 연구소 연말 행사에서 신입사원으로서 처음 베스트 상을 수여하였다.

연구소장님 특별 지시

신입사원 해외연수 후 다들 그냥 넘어가는 경험을 나는 개인적으로 자료를 정리해 연구소장님께 독단적으로 메일로 보고를 드렸고, 이에 소장님께서 나의 안목과 판단력에 대해 평을 하시고 인사과에 진로 방향을 추천해주셨다. 이것은 향후 나의 진로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값싼 당근 맛에 빠져든다.


그 시절은 정말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만큼 성장했다고 자부했었다.

이러한 노력의 산물로 난 연구원 4년 차부터 회사의 특별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특별 인재 관리 프로그램"에 선정되어 인사과에서 다른 동료들 모르게 별도 관리를 받게 되었고, 그만큼 연봉 수준도 미약하지만 동료들 대비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희망은 절망으로


좋았다. 정말 좋았다. 회사에서 인정을 받으며 내가 원했던 꽃길을 걷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연구원의 경험을 토대로 마케팅, 전략, 상품기획의 업무를 하고 싶었던 나로서는 회사에서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만으로도 희망찬 미래를 꿈꿀 수 있었다.


회사에서의 큰 꿈을 꿀 수 있는 기회를 받은 후 나는 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저 어제와 같을 뿐 시계추와 같이 흘러가는 일상은 변함없었다. 매일 이어지는 야근. 매일 이어지는 새벽 퇴근. 매주 주말 없이 이어지는 금금금요일. 처음에 품었던 열정과 패기는 현실과 체력의 장벽에 부딪혀 열정의 불씨는 꺼지기 시작하고, 패기는 점점 좁혀져 가고 있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살아가며, 회사에서 내려준 꿈을 잡기 위해 어떻게든 버티고 버텼다.




그땐 정말 몰랐다.

회사에서 내려준 꿈, 그 관심이 바로 희망고문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