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 암도 나의 삶의 일부.
2020년에 있었던 일을 기록했었던 타 블로우에 작성한 글 입니다.
불행은 갑자기 찾아오지 않았다. 연말 건강검진 결과를 받을 때 초음파 검사를 해 주시던 선생님께서 진지한 표정으로 "왼쪽 오른쪽에 결절이 있네요. 크기가 크지는 않은데 모양이 좋지 않아요. 꼭 다른 병원 가셔서 검사받아보세요."라고 말씀해 주셨다. 집에 돌아오면서부터 등 뒤로 싸한 느낌이 나면서 '암인가?'라는 불안감이 있었다. (뒤돌아 생각해 보면 그분이 아니었다면 건강에 1도 관심 없던 내가 상급병원에 찾아가지 않았을 것이고 암의 발견이 훨씬 늦어졌을 것이다. 감사의 마음이 전해 지길..)
연초는 어느 회사나 바빴고 상급병원에 찾은 건 1월 중순이었던 것 같은데 내분비내과에서 선생님을 만나 뵙게 된 건 2월 13일 오전이었다. 다른 병원에서 촬영한 자료로 판단하지 않고 무조건 새로 촬영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어서 그날 검사예약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크기가 그렇게 크지 않네요. 3개월 후에 혈액검사와 초음파 촬영한 후에 다시 뵙지요."라고 말씀하셨다.
초음파 검사를 하게 된 건 7월 말, 8월 7일에 내원해서 초음파와 혈액검사 결과를 보시고 "오른쪽에 있는 결정 중 하의 모양과 위치가 좋지 않아 보이는데요. 혹시 모르니까 세침검사를 한 후 다시 뵙지요."라고 말씀해 주셨다. 모양이 좋지 않다.. 등에 찌릿하고 뭔가 스치는 것 같다.
세침검사는 쉽게 설명해서 초음파로 의심이 되는 부분을 보면서 주삿바늘 같은 기구를 통해 조직의 일부를 채취하는 검사로 암병원 내에 시설이 있었다. 살면서 대학병원 같은 상급병원에 갈 일이 얼마나 있는가? 심지어 암병원은 더욱더 그럴 텐데.. 다른 진료과가 다른 분위기가 있었다. 무거운 공기. 긴장된 표정. 가끔씩 들리는 한숨소리. 다시 오길 바랐는데.
세침검사 결과는 일주일 가량 뒤에 나왔고 8월 27일 내분비내과에서 결과를 전해 들었다. 검사 결과가 좋지 않아 내분비외과로 담당 선생님이 배정되었다. 일은 그렇지 않은데 그때는 멍했는지 시키는 데로 움직이기만 하고 정작 "암인가요?"라고 물어보지 않았다. 외과가 암병원에 있고 선생님이 변경된다는 사실은 이미 암이라는 것을 의미했지만 듣고 싶지 않았던 걸까?
9월 3일.
암병원 내에 있는 갑상선내분비 외과에 오시는 분들은 나처럼 조직검사 후 암이 확정되어 처음 방문한 사람이거나, 이미 수술하신 분, 그리고 보호자분들이다. 이미 갑상선 수술하신 분들은 공통적으로 머플러를 많이 하셨고 무척 담담한 표정이셨다. 나처럼 검사 결과를 가지고 오신 몇 분은 시계를 계속 보면서 초조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걸 보았다. '직업병인지 여기 와서도 사람을 관찰는구나.' 실없는 웃음을 지으면서도 내 심장 뛰는 소리가 커지는 게 느껴질 정도로 긴장되었다. 특히 내 차례가 다음이 되어서 진료실 바로 앞에 앉아 있다가 내 이름을 부르는 순간.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조직검사 결과 총 6단계 중에서 5단계로 암이 거의 확실하며, 갑상선의 오른쪽 절반을 절제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암이군요." 선생님의 설명에 나는 마른 목소리로 되물었는데, 내 목소리가 마치 다른 사람의 목소리처럼, 이질적으로 들렸다. 이후 어떤 검사를 해야 하고 어떤 일들을 해야 하는지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이 설명해 주셨지만 머릿속이 멍해져서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암환자가 되었다.
9월 17일, 수술 전 검사들을 하고 수술 날짜를 확정하기 위해 병원에 내원했다. 혈액검사, 폐와 갑상선 CT촬영 등을 하고 선생님을 뵈었다. "오른쪽만 절제하면 되겠고요. 폐는 깨끗하네요. 근데 혹시 전에 들은 적 있으신가요? 혈액 검사에서 에이즈 양성 결과가 나왔습니다. 한 번은 음성, 한 번은 양성이 나와서 이런 경우 정부기관에 재 검사를 요청해야 합니다." 에이즈? 그 AIDS? 갑상선 암도 기가 막히는데 에이즈라니? 화가 났다. 솔직히 와이프에게도 이사실을 전화로 알렸는데 어이가 없고 화나기는 마찬가지 었다. 수술 날짜를 상담하기 위해 코디네이터 선생님께 혈액검사 결과가 수술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여쭈어 보았다. "아마 음성으로 나오실 거예요. 아주 드물지만 몇 번 그런 케이스를 본 적 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하신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최대한 예전예전예전으로 기억을 되돌려봐도 그럴 가능성은 없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암에 걸렸는데 에이즈면 수술도 안 해 줄텐데.?' 논리적으로 생각해 본다. '그래 에이즈에 걸렸는데 몰랐다고 하면 와이프와 내 딸도 에이즈에 걸린 건가?' 논리적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본다. 혈액검사를 하면서 일부의 경우 양성 판정이 나오고 나중에 정밀 검사를 하면 음성이 대부분 나온다는 글을 몇 개나 찾아보고서야 조금 안심하게 되었다. 그 글의 링크를 카카오톡으로 와이프에게 보내고 검사 결과는 2주나 걸려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냥 어이가 없었다.
병원에서 걸려온 첫 번째 전화는 받지 못했고, 두 번째에 나를 담당하시는 선생님 목소리 었다. "많이 걱정하셨죠? 음성입니다. 관리 잘하시고 수술 전날 뵙겠습니다." 통화가 끝나고 당연한 사실의 확인인데 가슴이 뛰고 등에 다시 식은땀이 흘렀다. '당연하지. 당연한 건데 왜 이런 소식까지 들어야 하는 거야.'
와이프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암이라는 것도 모자라 에이즈라니. 무엇보다 날 의심하지 않고 아무 말하지 않는 와이프에게 감사했다. 아래의 기사와 같이 가정불화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다행히 우리 가족은 부침 없이 해프닝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웃기지도 않은 해프닝을 뒤로하고,
10월 21일.
수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