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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권수 Oct 22. 2023

가짜 노동, 이제 그만두어야 합니다!

개인 뿐만 아니라, 회사까지 무너질 수 있는 가짜 노동

1차 세계대전이 종결되었을 당시, 영국은 과도한 군사비를 줄이기 위해서 군함 수를 줄였다. 군함 수가 줄어듦에 따라 장병의 수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해군을 관리하는 행정인력의 수는 도리어 증가했다. 관리할 해군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매년 행정인력을 늘어났던 것이었다. 


파킨슨은 이러한 현상을 보고 파킨슨 법칙이라는 이론을 주장했다. 파킨슨 법칙은 업무량과 상관없이, 심리적인 요인에 의해 공무원 수가 꾸준히 증가한다는 이론이다. 공무원은 자신이 바쁘다는 심리적 압박감을 줄이기 위해 새로운 인력을 채용했다. 그런데 새로운 인력이 들어오니 막상 그 인력을 관리할 업무가 또 추가되었다.


파킨슨은 공무원의 업무 형태를 보고 또 하나의 현상을 발견했다. 공무원에게 어떠한 일을 10일 동안 하라고 주었을 때랑, 20일, 30일 주었을 때 그 결과가 동일했다. 즉, 그들은 업무를 주어진 시간만큼 늘려서 처리했던 것이었다. 


현대인들의 번아웃을 가짜 노동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 흥미로운 책이었다.


가짜 노동에서 저자는 파킨슨이 발견한 현상을 가짜 노동이라는 현상으로 분석했다. 가짜 노동이란 실제로 업무를 하지 않고 시간을 때우는 방식으로 가짜 업무를 채워 넣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가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실제로 업무에 필요한 시간만큼만 일하지 않는다. 실제 중요한 업무를 하는 시간은 짧지만, 사람들은 나머지 시간을 바쁘게 보이도록 꾸며낸다. 그 이유는 중요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은 쓸모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 한다. 메슬로우의 5단계 욕구 중에 무려 네 번째에 위치한 존중의 욕구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인정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 남이 나를 인정해 줘야 존중의 욕구가 채워진다. 남이 나를 인정해 주는 기준은 그 사람이 속한 사회나 집단의 문화와 연결되어 있다. 그 문화는 대부분 회사의 문화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회사에서 바쁘지 않다면 능력이 없다고 여겨진다. 일이 없다는 건, 그 사람이 회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말과 같다. 인정받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일이 없는 순간이 있어서는 안 된다. 늘 일로 넘쳐나고, 매번 모니터를 보며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가짜 노동의 저자는 이렇게 중요한 사람으로 보이고자 하는 욕구로 인해 생겨나는 가짜 노동 때문에 사람들이 번아웃한다고 설명했다. 스스로를 구렁텅이로 넣고 있음에도 우리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저자는 우리가 이러한 번아웃에서 벗어나려면, 진짜 노동을 하되 남은 시간에는 자아실현을 위한 활동을 하라고 조언했다. 예컨대, 사무직이라고 하면, 불필요한 회의 시간은 다 없애거나 시간을 줄이고, 동료를 믿고 그냥 일찍 퇴근하면 된다. 



내가 생각하는 또 다른 의미의 가짜 노동


실제 한국 회사 중에서도 가짜 노동으로 인해 과도하게 인건비를 지출하는 회사들이 많을 것이다. 나는 대기업의 대부분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관리 포인트가 늘어나고, 절차가 복잡해지면서 가짜 노동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기업은 예전부터 해고를 쉽게 못하기 때문에, 가짜 노동이 만연하기 딱 좋은 환경이다. 만약 비포괄 임금제라면 가짜 노동의 비율은 더 많을 것이다. 어쨌든 야근해야 돈을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돈이 필요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늦게까지 남으려고 할 것이다. 밥을 천천히 먹는 노력을 기울여서라도 말이다.


가짜 노동을 읽으면서, 나는 또 다른 가짜 노동이 발생하는 형태에 대해 생각했다. 


책에서 언급한 가짜 노동의 원인 중 하나는 의미 없는 프로젝트를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설령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가짜 노동이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정보와 전문성 차이로 인해 프로젝트에 필요한 기한을 과도하게 부풀리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특히 외주를 맡길 때 발생한다. 외주를 맡기는 의뢰인은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전문가에게 돈을 주고 맡긴다. 문제는 그 비용이 전문가가 투입된 시간으로 결정되는 경우에 발생한다. 아무래도 전문영역에 대해서는 의뢰인과 전문가의 수준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앱 개발을 모르는 사람이 앱을 만들고자 외주를 맡긴다고 했을 때,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앱이 어느 정도의 전문성과 시간 투자를 요구하는지 알기 어렵다. 설령 시세를 파악한다고 하더라도, 전문가의 현란한 말솜씨에 과도한 비용을 지불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러한 현상을 막으려면, 믿을 수 있는 같은 분야의 진짜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 "진짜 전문가"를 찾기가 정말 어렵다는 점이다. 대기업을 다니다 보면 전문성이 없는 무늬만 전문가인 사람들이 너무 많다. 마치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제 업무하는 것을 보면 눈을 의심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실제로, 내가 클라우드 업무에 대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때, 경악했던 적이 있었다. 외주를 통해 전문가가 인프라를 구성하는데 서버 2~3대, 데이터베이스 1대를 만드는 작업을 4개월간 억 단위의 비용이 발생한다고 견적을 받았다. 나는 담당자에게 이건 일주일도 안 걸리는 작업이라고 이야기했고, 필요하다면 내가 직접 만들어 주겠다고 하기도 했다. 담당자는 외주사에게 이런 의견을 전달하고 다시 견적을 받으니까 비용이 거의 절반 가까이 줄여서 다시 제안했다. 즉, 원래부터 절반이면 되는 업무였단 소리였다.


만약 이 비용을 그대로 냈다면, 외주사는 소위 땡잡은 셈이다. 일주일 걸리는 작업을 4개월간 돈 받으면서 하면 그만이다. 모니터를 켜놓고 엔터만 치고 있어도 아무도 무슨 작업인지 모를 테니 가짜 노동을 만들기도 수월하다. 


요컨대, 나는 이러한 프로젝트에 대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내 회사라고 생각하고 리더가 판단을 내려야, 팀의 가짜 노동을 줄일 수 있다. 리더가 전문성이 없다면, 진짜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 친한 사람 말고, 그 분야에서 자타공인 인정받는 사람 말이다. 만약 그런 자질이 없다면, 회사를 생각해서 냉정하고 과감하게 다른 사람으로 리더를 교체해야 한다. 


일론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인원 감축이었다. 일론머스크는 기존에 8000명이었던 직원을 1500명까지 줄였다. 그 과정에서 비난도 많았지만, 내 생각에 대대적인 인원 감축으로 회사 내 가짜 노동을 크게 줄이지 않았을까 싶다. 안에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량은 알 수 없지만, 서비스가 여전히 잘되고 있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트위터에 글을 남기고 있다. 어쩌면, 원래부터 1500명~2000명 정도 인원으로 운영할 수 있었던 서비스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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