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쓰기 멘토는 몽골에서 화상으로 수업을 진행하다가, 다음 번에는 프랑스 공항에서 접속한다. 환승 대기 시간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수업을 이끄는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이번 달에는 호주 멜버른에서 온라인 클래스를 연다고 했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밀양에서 작가들을 만나고, 안동으로 이동해 글쓰기 모임을 진행하고, 서울에서 사인회를 연다. 장소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이야기를 수집하고, 그것을 다시 글로 풀어낸다. 그는 말보다 행동으로 가르친다. 움직임 그 자체가 글쓰기의 원천이라는 것을, 변화가 곧 영감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사람은 누구나 익숙한 생활반경 안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매일 같은 카페, 같은 책상, 같은 루틴. 나 역시 그랬다. 10년간의 주재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뒤, 어느새 나는 집과 동네 공원, 가끔 가는 도서관 사이를 오가는 삶에 익숙해져 있었다. 대만은 포모사라는 작은 섬이다. 나라의 70%는 사람이 살기 힘든 고산지대이고, 30%의 땅에 해안선을 따라 타이베이부터 우리나라 부산 같은 항구도시 가오슝까지 도시가 이어져 있다. 타이베이에서 가오슝까지 고속철로 2시간 남짓. 새벽에 타이베이를 떠나 가오슝에서 미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대전쯤 되는 위치의 타이중에서 고객과 저녁 식사를 하는 식이었다. 나의 첫 번째 주재원 생활은 그렇게 다이내믹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 모든 시간이 지금은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정도로, 나는 움츠러들어 있었다. 멘토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문득 깨달았다. 아, 나도 한때는 저랬었지. 끊임없이 움직이고, 새로운 환경에 뛰어들고, 그 속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멘토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다시 움직여도 된다'는 허락이었다. 그것은 말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의 삶 자체로 전해진 메시지였다. 최근 시작한 강의에서도 그 영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하루 6시간을 진행하는 강의는 언제나 도전적이다. 200여 장에 해당하는 강의 내용도 부담이지만, 중간에 텐션과 흐름을 유지하면서 6시간을 이끌어가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특히 점심 식사가 끝나고 나면, 식곤증에 힘들어하는 청중과의 교감을 나누며 진행하는 부분이 가장 어려웠다. 처음에는 노트북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강의 자료에 적힌 키워드를 놓칠까 봐, 청중의 질문에 당황할까 봐, 나는 안전지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 문득 멘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언제나 사람들 사이를 자유롭게 오갔다. 화면이 아니라 사람을 봤다. 자료가 아니라 대화를 이끌었다. 나도 용기를 내어 한 발 앞으로 나가봤다. 청중의 옆으로 다가가 눈빛을 교환하고, 질문을 던지고, 그들의 대답에 반응했다. 때로는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부드럽게 넘어가는 법도 조금씩 배워갔다. 강의 자료에 대한 숙지뿐 아니라, 강약 조절과 올바른 질문법, 그리고 무엇보다 청중을 바라보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자, 두려움이 서서히 행복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지금 나는 매 강의마다 조금씩 더 움직인다. 자료를 수정하고, 표현을 다듬고, 청중과의 거리를 좁힌다. 연신 카메라를 들고 슬라이드를 찍는 사람들을 보면, 이것이 진심이 통하는 순간이구나 싶다. 멘토가 보여준 것은 단순히 '부지런함'이 아니었다. 안주하지 않는 삶,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 그리고 그 모든 움직임이 결국 사람과 이야기로 연결된다는 믿음이었다. 나는 이제 안다. 삶의 반경을 넓히는 것이 곧 글쓰기의 반경을 넓히는 일이라는 것을. 멘토는 그것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저 살아 보였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