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_#3
7분 플랭크를 마치고 땀을 닦으며 샐러드를 꺼낸다. 야채 한가득, 닭가슴살도 곁들인다. 여기까진 완벽하다.
그런데 그 순간 생각이 스친다. "야채니까 많이 먹어도 되겠지."
샐러드그릇에 담기는 야채의 양이 점점 늘어난다. 배가 고프다는 이유로 양이 늘고, 건강식이라는 면죄부를 믿고 접시는 한 번 더 채워진다. 닭가슴살을 넣으면 마음은 더 대담해진다. "단백질도 있으니까." 그리고 소스가 따라온다. 한 번, 두 번. 맛이 살아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기분이 좋아지면 양도 살아난다.
결국 나는 건강한 재료로 시작해, 스스로 절제의 의미를 흐리게 된다.
복근 운동을 시작한 지 3주째다. 티셔츠 위로 은근히 드러나는 복근 라인, 바닷가에서 민망하지 않을 배. "나도 한번 만들어보자." 그렇게 시작했다. 크런치, 레그레이즈, 플랭크. 특히 플랭크는 잔인하다. 팔이 떨리기 시작하면 시간이 느려지고, 숨은 턱끝까지 차오른다. 그래도 땀이 흐르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변화하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리고 매일 아침 거울 앞에 선다. 티셔츠를 살짝 들어 올리고, 배를 한 번 눌러본다. "혹시…?" 하지만 거울 속 뱃살은 의연하다. 아니 초연하기까지 하다. 단단해진 느낌은 아주 조금 있는데, 그 위를 덮고 있는 지방은 제자리를 지킨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복근은 분명히 있다. 다만 지금은 잠복중이다. 내 복부지방 밑에서 아주 단단히.
문제는 운동이 아니었다. 운동 뒤였다. 나는 '나쁜 음식'에 넘어지는 사람이 아니라, '좋은 선택'을 망치는 사람이었다. 그때 알았다. 실패가 항상 의지의 문제는 아니라는 걸. 내가 무너지는 순간은 유혹이 아니라 면죄부였다. 좋은 선택을 했다는 안도감이, 그 선택을 망치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나는 계속 같은 구조에서 같은 패턴으로 졌다. 그래서 오늘은 결심 대신 장치를 두기로 했다.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내가 지기 쉬운 지점을 조금 덜 위험하게 만드는 장치다.
첫째, 샐러드는 그릇부터 작게 쓴다. 대접 금지. 둘째, 소스는 처음부터 작은 용기에 덜어 한 번만 쓴다. 셋째, "야채니까 괜찮아"라는 문장이 떠오르면 젓가락을 내려놓고 10초만 멈춘다.
복근은 오늘도 안 보인다. 하지만 내가 어디서 무너지는지는 조금 더 보인다. 예전엔 결과만 찾았다면, 요즘은 내가 선택을 망치는 방식을 먼저 본다.
복근은 여전히 잠복중이다. 대신 그 위로 한 가지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습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