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데카콘 '캔바 (Canva)' 멜라니 퍼킨스 창업스토리 5탄
"카메론! 서비스가 접속이 안되! 당장 복구시켜줘!"
재무와 운영을 담당하던 클리프가 땀범벅이 된 얼굴로 머리를 감싸 쥐며 절규했다. 카메론 아담스의 셔츠는 이미 식은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고, 그의 열 손가락은 키보드가 부서져라 미친 듯이 코드를 두드리며 날아다녔다.
비좁은 사무실에는 숨 막히게 무거운 침묵, 그리고 폭우가 쏟아지는 듯한 타자 소리만이 잔혹하게 울려 퍼졌다.
조금이라도 결함이 있는 불완전한 제품을 세상에 내놓느니 차라리 런칭을 끝없이 무기한 연기하겠다며, 투자자들의 은근한 압박 속에서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1년을 버텨낸 멜라니였다.
하지만 그녀의 그 숭고한 완벽주의의 결말이, 접속조차 되지 않는 '서버 다운'이라는 가장 끔찍하고 치욕적인 대형 사고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모니터를 바라보는 멜라니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피가 마르는 지옥 같은 몇 시간이 흘렀다.
개발팀이 데이터베이스의 병목을 뚫고 미친 듯이 자원을 할당하며 사투를 벌인 끝에, 마침내 죽어있던 서버가 다시 아슬아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에러 창이 걷히고 정상적인 캔버스가 모니터에 뜨자, 멜라니는 그제야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화면 속 실시간 트래픽 대시보드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곧바로 깨달았다. 방금 전의 끔찍한 다운은, 코드를 잘못 짠 단순한 시스템 장애나 치명적인 버그 때문이 아니었다.
수십 년간 비싸고 무거운 전문가용 디자인 프로그램과, 그 복잡한 기술적 장벽 아래 철저히 짓눌려 있던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억눌린 갈증'이 단숨에 폭발해 버린 결과였다.
런칭 직전, 캔바 팀은 '대기자 명단(Waiting List)'을 웹에 조용히 오픈했었다.
그들의 직관적인 디자인 도구를 먼저 써보고 싶다면 줄을 서라는, 일종의 심리적 넛지(Nudge)였다.
그 결과, 정식 서버 문이 채 열리기도 전에 무려 5만 명이라는 거대한 잠재 사용자층이 이 이름 모를 소프트웨어 앞에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스타트업의 교과서처럼 보편화된 이 문법을, 캔바 팀도 매우 영리하게 활용했다.
베타서비스 런칭을 준비하며, 사용자가 캔바에 접속해 단 5분 만에 기적처럼 아름다운 포스터나 페이스북 썸네일을 만들고, 그것을 자신의 SNS에 자랑스럽게 공유하는 그 순간. 이미지 우측 하단에 아주 작게 박힌 로고와 그들의 결과물 자체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매력적인 광고판이 되도록 캔바 팀은 서비스의 모든 바이럴 루프(Viral Loop)를 매우 정교하게 설계했다.
그리고 제품의 압도적인 직관성과 바이럴 전략이 맞물리며 트래픽은 날이 지날 수록 서서히 우상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뜨거운 바이럴의 불길에 막대한 양의 기름을 부어 캔바를 단숨에 글로벌 유니콘의 반열에 올려놓은 결정적이고도 운명적인 사건은 따로 있었다.
실리콘밸리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거물 마케터, 가이 가와사키(Guy Kawasaki)의 합류였다.
그는 1980년대 스티브 잡스와 함께 애플(Apple) 매킨토시 사업부에서 일하며, 기술 업계에 '에반젤리스트(Evangelist, 기술 전도사)'라는 개념을 역사상 최초로 확립한 마케팅의 거장이었다.
어느 날, 가이 가와사키는 자신의 SNS 계정을 관리해주던 소셜 미디어 매니저 펙 피츠패트릭(Peg Fitzpatrick)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세련되고 아름다운 그래픽 이미지를 전례없이 빠른 속도로 업로드하는 것을 발견했다.
포토샵 전문가도 아닌 그녀가 어떻게 이런 결과물을 만들어내는지 경악하며 묻자, 그녀는 그에게 '캔바'라는 낯선 웹사이트의 링크를 조용히 건넸다.
링크를 클릭해 브라우저 위에서 마우스를 몇 번 움직여 본 이 실리콘밸리의 거장은, 마치 벼락을 맞은 듯한 거대한 충격과 전율에 휩싸였다.
"애플의 숭고한 미션과 캔바의 미션은, 수십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완벽하게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과거 "모든 평범한 사람의 책상 위에 컴퓨터를 올려놓겠다"며 소수 전문가의 전유물이던 퍼스널 컴퓨팅의 시대를 열어젖혔던 1980년대의 애플.
그리고 지금, "세상 모든 사람이 기기를 가리지 않고 디자인을 할 수 있게 하겠다"며 시각 권력의 해방을 외치는 2013년의 캔바.
가와사키는 스티브 잡스에게서 느꼈던 그 미친듯한 혁명의 냄새를 이 20대 호주 청년들의 소프트웨어에서 정확히 맡아버린 것이다.
가와사키는 주저 없이 호주로 날아가, 기꺼이 캔바의 '수석 전도사(Chief Evangelist)'를 자처하며 합류했다.
트위터와 링크드인을 지배하던 그의 거대한 글로벌 인플루언서 지지망에 캔바의 압도적인 제품력이 결합하자, 캔바라는 이름은 걷잡을 수 없는 산불처럼 전 세계 인터넷망을 타고 맹렬하게 퍼져나갔다.
수십만 원짜리 프로그램을 살 돈도, 그것을 배울 시간도 없었던 평범한 사람들.
전단지를 만들어 돌려야 하는 동네의 영세 식당 사장님, 예쁜 수업 자료가 절실했던 일선 학교의 교사들, 매일 썸네일 콘텐츠를 쏟아내야 하는 스타트업의 소셜 미디어 관리자들이 마치 홀린 듯 캔바로 몰려들어 자신만의 위대한 디자인을 창조해 내기 시작했다.
사상가 나심 탈레브(Nassim Taleb)는 그의 저서에서, 외부의 거대한 충격이나 혼란 속에서 부서지지 않고 오히려 한 차원 더 강하게 진화하는 시스템의 속성을 '안티프래질(Antifragile)'이라 명명했다.
초기 캔바의 성장은 매일같이 벌어지는 잦은 서버 다운과 끔찍한 트래픽 폭주라는 예측 불가능한 혼란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 지독한 혼돈은 캔바를 죽이지 못했다. 오히려 그 서버 폭주는 세상 사람들에게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제품을 간절히 원하고 열광하길래 사이트가 마비되는가?'를 증명하는 가장 위대한 훈장이자 최고의 마케팅 스토리가 되어주었다.
런칭 1년 만에 가입자 수 100만 명 돌파. 누적 디자인 생성 200만 개.
스타트업 역사상 가장 가파르고 폭발적인 하이퍼 스케일링(Hyper-scaling)의 궤도에 완벽하게 올라탄 것이다.
호주 시드니의 작은 사무실은 연일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테크 크런치와 포브스를 비롯한 전 세계의 미디어들은, 이 호주 변방의 작은 스타트업이 거만한 실리콘밸리의 디자인 제국을 통째로 집어삼킬 차세대 유니콘이라며 찬사를 쏟아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이대로 실리콘밸리의 왕좌에 오르는 일만 남은 듯했다.
하지만 축제가 절정에 달했던 그 순간, 모두가 퇴근한 자정의 텅 빈 회의실.
모니터를 응시하던 클리프의 안색이 시체처럼 차갑게 굳어졌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