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삶의 통제권을 쥐어준다는 것

디자인 데카콘 '캔바 (Canva)' 멜라니 퍼킨스 창업스토리 6탄

by 똘똘이스머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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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기술 혁명이 시작되고 실리콘밸리에 거대한 자본이 쏟아지기 시작한 이래, 수많은 테크 창업자들이 20대와 30대의 젊은 나이에 억만장자의 반열에 올랐다.


그 막대한 부를 손에 쥔 젊은 권력자들의 다음 행보는 보통 비슷했다.


태평양의 개인 섬을 사들이거나, 뉴질랜드 지하에 화려한 종말 대비용 벙커를 짓거나, 자신의 초대형 요트에서 호화스러운 파티를 여는 일.


만약 그들이 자선을 베푼다면, 보통은 백발이 성성한 은퇴 후나 자신이 죽은 뒤에 남은 재산을 기부하겠다는 우아한 서약서에 서명하며 세상의 고상한 박수를 받는 식이었다.


하지만 멜라니와 클리프는, 오래동안 '그들 답게' 쓰는 법을 고민해왔었다.


그들은 캔바를 처음 창업하던 그 경험없고 위태로웠던 시절부터, 이미 자신들의 가슴속에 명확한 철학적 마스터플랜 하나를 깊게 새겨두고 있었다.


그들은 이것을 2단계 계획(Two-Step Plan)이라 불렀다.


1단계는, 어떠한 타협도 없이 '지구상에서 가장 압도적이고 탁월한 가치를 지닌 회사를 구축하는 것'.


그리고 2단계는, '그렇게 모인 거대한 부와 가치를 온전히 활용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가장 극대화된 선(Good)을 행하는 것'이었다.


2021년. 마침내 기업 가치 400억 달러(약 53조 원)를 돌파하며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비상장 스타트업 중 하나로 등극했을 때, 멜라니와 클리프는, 마치 평생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는 듯 지체 없이 2단계를 행동으로 옮겼다.


그들의 결단은, 30대의 한창 젊고 피가 끓는, 여전히 회사를 맹렬하게 이끌어가고 있는 현직 CEO로서 전 세계 기술 업계에 전례 없는 놀라운 결단이었다.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캔바 지분의 대다수, 즉 전체 기업 가치의 30%에 육박하는 165억 달러(약 22조 원)라는 천문학적인 자본을 세상에 환원하겠다고 공식 선언한 것이다.


화려한 자선 재단 런칭 파티나 요란한 언론 플레이도 없었다. 그저 평범한 티셔츠를 입고 카메라 앞에 선 두 사람은 담담하고 겸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이뤄낸 막대한 부는 우리가 남들보다 똑똑해서가 아니라, 그저 운이 좋아 얻게 된 일회성 기회일 뿐입니다. 한 개인이 이토록 거대한 부를 소유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이 자본은, 세상에서 가장 절실하게 이 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또 마땅히 흘러가야 할 곳으로 분배되어야만 합니다."


세상을 놀라게 한 그들의 거대한 자본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아프리카의 말라위(Malawi)였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위대한 철학자 아마티아 센(Amartya Sen)은 그의 저서에서 빈곤의 본질을 이렇게 정의했다.


빈곤이란 단순히 주머니에 돈이 없거나 빵이 부족한 물리적 결핍의 상태가 아니라고. 그것은 한 개인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통제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마땅한 '자유와 역량(Capability)'을 세상으로부터 완벽하게 박탈당한 참담한 상태라고 말이다.


멜라니는 과거 서구의 선진국들이 일방적으로 먹다 남은 식량을 주거나 헌 옷을 보내며 우월감을 느끼던, 그 오만하고 낡은 하향식 원조 방식을 파괴했다. 가난한 자들은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없으니 우리가 대신 결정해 주겠다는 기득권의 폭력이 그 안에 숨어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대신 캔바는 미국의 혁신적인 비영리 단체 기브다이렉틀리(GiveDirectly)와 손을 잡았다. 그리고 마을 주민들의 모바일 뱅킹 통장에 중간 과정이나 아무런 조건 없이, 거액의 현금을 곧바로 쏴주는 파격적인 방식을 택했다.


'가난하고 무지한 자들에게 현금을 쥐여주면 보나 마나 술이나 도박에 탕진하고 게을러질 것'이라던 기득권세계의 편견은 부서졌다.


생전 처음으로 거액의 현금을 손에 쥔 말라위의 사람들은, 서구의 엘리트들이 책상머리에서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하고 현명했다.


평생 일용직을 전전하던 23세의 청년 마이크는 돈이 들어오자마자 가장 먼저 밀린 학비를 냈고, 굳은살 박인 손으로 6년 만에 중학교 졸업장을 거머쥐며 새로운 직업을 꿈꾸기 시작했다.


어머니 베르타는 지독한 가난 탓에 구루병에 걸려 평생 걷지 못하던 어린 딸을 번쩍 안고 당장 도심의 병원으로 달려가 수술비를 결제했다. 평생 흙바닥을 기어 다니던 아이는 마침내 기적처럼 두 발로 땅을 딛고 서서 세상을 향해 환하게 웃었다.


말라리아 모기장을 지원받아도 금세 구멍이 나 역병에 걸리던 마을 사람들은 현금을 받자마자 거친 짚단 침대를 버리고, 푹신한 스펀지 매트리스를 사들였다. 거친 짚단이 모기장을 찢는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마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제네바나 뉴욕의 화려한 회의실에 앉아있는 엘리트 관료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파악할 수 없는, 현지인들만의 치열하고 정교한 생존의 지혜가 실행으로 옮겨졌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돈 자체가 그들을 구원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내 삶에 가장 시급한 것이 무엇인지 직접 결정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권리.


'선택권'과 '자유'라는 이름의 그 찬란한 인간의 존엄성이, 파괴되었던 한 마을의 경제 생태계를 그들 스스로 완벽하게 복원해 낸 것이다.


십수 년 전, 호주 퍼스의 낡은 컴퓨터실에서 복잡한 디자인 툴의 장벽에 가로막혀 모니터 앞에서 좌절하고 한숨 쉬던 학생들.


그리고 지구 반대편에서 지독한 가난과 질병 앞에서 삶의 주도권을 통째로 빼앗긴 채 무력하게 죽어가던 말라위의 사람들.


눈앞에 보이는 겉모습과 차원은 달랐지만, 그들이 겪고 있던 본질적인 고통의 뿌리는 닿아 있었다.


결국 캔바가 지난 10년의 피 터지는 사투를 통해 세상에 던진 메시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두 손에 '스스로의 삶을 조립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한(Empowerment)'을 쥐여주는 일이었다.


디자인의 권력을 대중에게 넘겨주었듯, 구호의 통제권을 거대한 기관에서 가난한 수혜자 개인에게로 넘겨버림으로써 멜라니는 그들이 스스로의 삶을 직접 디자인하기를 바랐다.


호주 변방의 비좁고 낡은 거실 바닥에서 조악한 졸업앨범을 만들며 출발한 두 청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단호하고 겸손한 목소리로 말한다.


"우리는 결코 샴페인을 터뜨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의 단 1%만을 왔을 뿐입니다."


(The end)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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