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엑시트는 또 다른 시작이다.

전 세계 커뮤니티가 모이는 플랫폼, Discord /제이슨 시트론 (1)

by 똘똘이스머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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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글은 성공한 스타트업의 영웅담을 공유하자는게 아니다.

스타트업의 성공 방정식 같은걸 배우자는 목적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실패와 피벗, 통제와 자유, 책임과 철학, 그리고 엑시트 앞의 선택까지.
창업자가 결국 마주하게 되는 질문들과 선택의 이야기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따라가 보려 한다.

교훈은 각자의 해석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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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에서 성공의 정의는 대체로 단순하다. 회사를 키워 거대 기업에 팔거나(M&A), 주식시장에 상장해(IPO) 현금을 손에 쥐는 것. 이른바 엑시트(Exit)다. 스타트업 세계에서 엑시트는 일종의 결승선처럼 여겨진다. 투자자는 투자금을 회수하고, 창업자는 보상을 얻고, 회사는 더 큰 조직 속으로 편입된다.


이 구조 속에서 엑시트는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다. 위험을 감수하고 회사를 만들었으니, 그 위험이 금전적 보상으로 돌아오는 순간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창업자들에게 엑시트는 긴 여정의 종착점처럼 보인다.

하지만 모든 창업자에게 그 순간이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엑시트가 끝이 아니라, 오히려 질문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제이슨 시트론(Jason Citron)은 그런 종류의 창업자였다.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자랐다. 특별히 기업가 집안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었고, 어린 시절부터 창업을 꿈꾸던 아이도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가 분명했다. 그는 게임을 좋아했다. 아니, 좋아한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빠져 있었다.


닌텐도와 PC 게임은 그의 일상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수많은 게임을 플레이하며 그는 자연스럽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 게임은 왜 이렇게 재미있지?”, “이 시스템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단순한 플레이어로 만족하지 못했던 그는 결국 게임을 만드는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10대 중반 무렵, 그는 스스로 프로그래밍을 배우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고, 코드를 따라 치고, 작은 게임을 직접 만들어 보면서 기술을 익혀 갔다. 처음에는 단순한 실험에 가까웠지만, 점점 그 과정 자체가 재미있어졌다. 누군가 만든 세계를 소비하는 것에서 벗어나, 자신이 직접 세계를 만드는 경험. 그 경험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실리콘밸리의 기술 생태계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2000년대 후반, 한 가지 거대한 변화가 세상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의 등장이다.

아이폰이 출시되고 앱스토어가 열리면서, 모바일 소프트웨어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개발자들이 모바일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고, 작은 팀도 전 세계 사용자에게 서비스를 배포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모바일 게임 산업에는 아직 비어 있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바로, ‘소셜 기능’이었다.


PC 게임에서는 이미 친구와 점수를 비교하거나 함께 플레이하는 기능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모바일 게임 개발자들이 그런 소셜 기능을 직접 구현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친구 목록을 관리하는 시스템, 점수 랭킹, 업적 시스템, 초대 기능 같은 개발 공수가 많이 들어가는 기능들을 게임마다 새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게임의 메인 기능이 아니면서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작업. 게임의 재미요소를 누구보다 잘 알고있었기에, 제이슨 시트론은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들었다. 오픈페인트(OpenFeint)의 탄생이었다.


오픈페인트는 모바일 게임 개발자들을 위한 일종의 플랫폼이었다. 개발자가 자신의 게임에 오픈페인트를 붙이기만 하면, 친구 초대, 점수 랭킹, 업적 시스템 같은 소셜 기능을 빠르게 구현할 수 있었다. 쉽게 말해 모바일 게임을 “혼자 하는 게임”에서 “사람들과 경쟁하는 게임”으로 바꿔 주는 인프라였다. 이 아이디어는 빠르게 퍼졌다.


모바일 게임 시장은 이미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고, 개발자들은 빠르게 게임을 만들고 싶어 했다. 오픈페인트는 그런 환경에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수많은 게임들이 이 플랫폼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사용자 수 역시 빠르게 늘어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천만 명의 플레이어가 오픈페인트 네트워크 안에서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 시점에서, 이 작은 스타트업은 이미 하나의 중요한 인프라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을 일본 기업 GREE가 주목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모바일 소셜 게임 산업이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믹시(Mixi), 디엔에이(DeNA), GREE 같은 회사들이 수천만 명의 사용자를 기반으로 거대한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 시장은 상황이 달랐다. 수많은 독립 게임 개발자들이 등장하고 있었고, 그들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을 플랫폼이 아직 명확하게 자리 잡지 못한 상태였다. GREE에게 오픈페인트는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이미 수천만 명의 게이머 네트워크가 있었고, 수많은 개발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플랫폼이었다. 미국 시장에 진입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직접 움직였다. 어느 날, 이 일본의 대기업이 태평양 건너의 젋은 창업자 제이슨 시트론에게 제안을 건넸다. 자그마치 1억 400만 달러였다. 당시 환율로 약 1,300억 원. 26세 창업자에게는 현실감이 사라질 정도로 큰 금액이었다. 실리콘밸리에서도 대부분의 창업자가 평생 한 번 경험할까 말까 한 규모의 엑시트였다.


며칠간의 고민 끝에 제이슨은 결국 회사를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 순간, 제이슨 시트론은 수백억 원대 자산을 가진 영앤리치가 되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그를 성공한 창업자의 사례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서비스의 폭발적인 성장과 빠른 엑싯, 수백억의 자산 - 스타트업 세계에서 누구나 선망할만한 결과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마음속에는 조금 다른 감정이 남았다. 그가 만들었던 플랫폼은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었다. 대기업의 구조 안으로 들어간 서비스는 점점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의사결정은 느려졌고, 새로운 실험은 줄어들었다. 결국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그 플랫폼은 조용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사용자들이 열광했던 그 제품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제이슨 시트론에게 묘한 감정을 남겼다. 창업자에게 엑시트가 목적이었다면, 여기서 이야기는 끝나야 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분명, 엑시트는 또 다른 시작이다.


오픈페인트 매각 이후, 제이슨은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정말 만들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오픈페인트는 훌륭한 비즈니스였다. 모바일 게임 생태계를 연결하는 플랫폼이었고,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제품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도구’였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사랑했던 것은 플랫폼이 아니라 게임 그 자체였다. 사람들이 몰입하고, 감탄하고, 밤을 새워 플레이하는 세계-.


그래서 그는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플랫폼이 아니라, 게임을 만들기로. 그리고 2012년, 그는 새로운 회사를 창업한다.

<해머 앤 치즐(Hammer & Chisel)>

이번에는 단순히 사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릴 때부터 만들고 싶었던 위대한 작품을 만들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순수하고 본능적인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직 아무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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