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벗이라는 이름의 포기

(3) 전세계 커뮤니티를 위한 플랫폼, 디스코드 (Discord)

by 똘똘이스머펫

수백억 원이 들어간 게임은 실패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잔해 속에서 의외의 데이터 하나가 발견됐다.

유저들은 게임을 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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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유저들은 개발자 중 누군가가 보조기능으로 만들어 놓은 음성 채팅 채널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별것 아닌 기능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2014년 당시 게이머들에게 음성 채팅은 생각보다 큰 문제였다. 대부분의 게이머들은 스카이프나 팀스피크 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했다. 문제는 이 도구들이 꽤 불편했다는 점이다. 스카이프는 무거웠다. 게임을 하면서 켜 두면 컴퓨터 성능이 떨어지기도 했다. 팀스피크는 또 다른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친구들과 대화를 하려면 서버를 직접 만들거나 서버 IP 주소를 알아야 했다. 그리고 그 주소를 서로 입력해야 했다. 단순히 친구들과 이야기하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절차가 필요했다.반면 페이츠 포에버 안에 있던 음성 채팅은 달랐다. 게임에 접속하면 바로 연결됐다. 설정도 필요 없었고 프로그램을 따로 실행할 필요도 없었다. 무엇보다 빠르고 가벼웠다. 스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이슨.”

“유저들이 좋아하는 건 게임이 아니야.”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덧붙였다.

“우리가 만든 이 음성 채팅 시스템이야.”


비즈니스 세계에는 매몰 비용의 오류라는 개념이 있다. 이미 지불해 버려 되돌릴 수 없는 시간과 돈, 노력을 포기하지 못해 실패가 분명한 선택을 계속 붙잡는 인간의 심리다. 특히 창업자나 개발자처럼 자신의 작품에 애정을 가진 사람일수록 이 함정에 빠지기 쉽다. 지금 제이슨 시트론이 바로 그 갈림길에 서 있었다.

한쪽에는 수십 명의 개발자가 2년 동안 매달려 만든 게임이 있었다. 수백억 원이 투입된 프로젝트였다.

화려한 그래픽, 웅장한 세계관, 수많은 밤샘 작업...그의 야심작이었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게임 구석에 붙어 있던 작은 기능 하나가 있었다. 음성 채팅. 창업자로서의 자존심이 속삭였다. '넌 게임을 만들려고 회사를 차렸잖아. 사람들 수다를 연결해 주는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온 게 아니야.'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회사는 빠르게 돈을 소모하고 있었고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몇 달 안에 회사가 문을 닫을 수도 있었다.

생존하기 위해서, 사업의 목적을 바꿔야했다. 스타트업 세계에서 이런 결정을 피벗이라고 부른다. 사업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것. 하지만 실제로 피벗을 결정하는 과정은 단순히 전략을 수정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만든 제품을 포기하는 결정이다. 구성원들이 왜 모였는지를 재정의하고 구심점을 새롭게 세우는 일이다.


며칠 뒤 아침 - 제이슨은 모든 직원을 회의실로 불러 모았다. 회의실에는 수십 명의 개발자들이 앉아 있었다.

아티스트, 엔지니어, 디자이너.

많은 사람들이 안정적인 회사를 떠나 이 스타트업에 합류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모바일에서 역사에 남을 게임을 만들겠다. 제이슨은 잠시 말을 고르더니 입을 열었다.

“여러분.”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그는 천천히 말했다.

“페이츠 포에버는 실패했습니다.”

회의실 여기저기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제이슨이 다시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방향을 바꾸겠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오늘부로 3D 그래픽 팀과 스토리 팀 프로젝트는 중단합니다.”

잠시 멈췄다. 그리고 말했다.

“대신 우리는 게임 안에 있던 음성 채팅 기능을 분리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겠습니다.”

순간 회의실 공기가 얼어붙었다. 몇 초 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한 개발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잠깐만요.”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지금… 채팅 앱을 만들겠다는 겁니까?”

누군가가 덧붙였다.

“우리가 스카이프 짝퉁을 만들려고 여기 온 겁니까?”

회의실 분위기가 빠르게 식어 갔다. 한 개발자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통신 프로그램 만들려고 이 회사에 온 게 아닙니다.”

또 다른 사람이 고개를 저었다.

“이건 우리가 하려고 했던 일이 아니에요.”

몇몇 직원들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떤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회의실을 나갔다.

그 이후 몇 주 동안 회사는 빠르게 변했다. 분노와 허탈감이 섞인 퇴사가 이어졌다. 수십 명의 직원 중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회사를 떠났다. 한때 아티스트와 엔지니어로 가득했던 사무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벽에는 여전히 거대한 세계관 콘셉트 아트가 붙어 있었지만 그 그림을 그렸던 사람들은 이미 회사를 떠나고 있었다.


스튜디오는 마치 전쟁이 지나간 뒤의 세트장처럼 변해 있었다. 하지만 제이슨 시트론과 스탄 비슈네프스키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떠나는 사람들을 붙잡지 않았다. 대신 남아 있는 소수의 엔지니어들과 함께 완전히 다른 작업을 시작했다. 그들은 페이츠 포에버라는 거대한 게임 프로젝트의 코드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단 하나의 기능만을 찾아냈다 - 음성 채팅. 거대한 게임 코드 덩어리 속에서 그 작은 기능을 하나씩 떼어내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기계에서 작지만 가장 중요한 부품 하나를 분리하는 작업 같았다. 제이슨은 하나의 목표를 세웠다. 마찰력 제로.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할 필요도 없다. 복잡한 설정도 없다. IP 주소를 입력할 필요도 없다. 친구가 보낸 링크 하나를 누르면 바로 연결된다. 0.1초 만에 친구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것이 그가 만들고 싶었던 제품이었다.


2015년 봄, 몇 달 동안 이어진 개발 끝에 그 작은 기능은 하나의 독립된 앱이 되었다.

이름은 Discord.

게이머들이 서로 소통할 때 겪던 불화와 혼란을 끝내겠다는 의미였다. 제품은 놀라울 정도로 잘 작동했다.

연결은 빠르고 음성은 깨끗했고 사용법은 단순했다. 문제는 단 하나였다. 사용자가 없었다. 디스코드 서버에 접속해 있는 사람은 제이슨과 스탄, 그리고 몇 명의 직원뿐이었다. 서버는 기술적으로 완벽했다. 하지만

그 안은 텅 비어 있었다. 한때 1,300억 원짜리 회사를 만든 창업자의 두 번째 스타트업.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디스코드는 아무도 없는 채팅방이었다.


제이슨 시트론은 잠시 모니터를 바라봤다. 아무도 없는 서버. 아무도 없는 채팅방. 수백억 원짜리 게임이 실패한 뒤에 남은 것은 작은 음성 채팅 프로그램 하나뿐이었다. 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이제…” 잠시 멈췄다.

“사용자를 찾아야겠네.”

그때 디스코드 서버에 접속해 있는 사람은 단 다섯 명이었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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