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는 멈췄어도 인터넷은 멈추지 않는다 : 에어월렉스

Airwallex 스토리 5

by 똘똘이스머펫

2020년 4월, 멜버른 에어월렉스(Airwallex) 본사 상황실. 창업자 잭 장(Jack Zhang)과 루시 류(Lucy Liu)는 말없이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화면 속 결제량(Transaction Volume) 그래프는 절벽을 만난 듯 가파르게 추락하고 있었다.


지난 몇 년간 그들이 공들여 쌓아온 것은 '글로벌 결제 인프라'였다. 빠르고 확장 가능한 디지털 시스템. 하지만 그 위를 흐르던 본질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아날로그적인 '물리적 이동'이었다. 여행사 항공권, 호텔 정산, 유학생 학비, 오프라인 가맹점의 매출.


팬데믹은 그 기반 자체를 지워버렸다. 시스템에는 아무런 결함이 없었지만, 매출은 단숨에 50%가 증발했다. 12억 달러라는 거액의 인수 제안을 거절하며 '독립적인 성장'을 선택했던 과거의 결단이 틀렸던 것은 아닐까, 의구심이 스칠 법한 순간이었다.


"비행기는 멈췄다. 하지만 인터넷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물리적 국경이 닫히는 현상 너머, 디지털 거래가 팽창할 미래를 직시했다. 에어월렉스는 즉각적으로, 그리고 파괴적으로 방향을 틀었다. 단순히 기존 고객을 지키는 '방어'가 아니라, 고객 구조 자체를 통째로 바꾸는 '재편'을 선택한 것이다.


여행과 유학 등 물리적 이동에 의존하던 산업 비중을 과감히 줄이고, 이커머스, SaaS, 온라인 게임, 크리에이터 플랫폼 같은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기업들로 중심축을 옮겼다. 이는 타겟의 변경을 넘어, 회사가 올라타고 있는 '거래의 성격' 자체를 바꾼 결정이었다.


성장 방식도 완전히 달라졌다. 대형 고객 위주의 전통적인 세일즈 대신, API 기반의 '셀프서브(Self-serve)' 구조를 전면에 내세웠다.


기업들은 단 몇 줄의 코드만으로 글로벌 결제와 환전 기능을 자신들의 시스템에 이식할 수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편의성 개선이 아니었다.

영업 인력 없이도 고객이 스스로 유입되고,

국가 경계 없이 글로벌 확장이 가속화되며,

소규모 기업까지 품을 수 있는 '확장적 구조'


제품이 바뀐 것이 아니라, '성장하는 원리' 자체가 바뀐 것이었다. 에어월렉스는 결제 처리를 넘어 법인카드, 멀티커런시 계좌, 경비 관리 시스템을 아우르는 통합 금융 인프라로 진화했다.


전통 은행들이 레거시 시스템의 한계에 부딪혀 머뭇거릴 때, 에어월렉스는 그 공백을 파고들었다. 셰인(Shein) 같은 글로벌 거물들이 이들의 API를 채택했고, 추락했던 그래프는 1년 만에 이전 수준을 넘어 100억 달러 가치의 데카콘으로 솟구쳤다.


우리는 흔히 위기를 '외부 변수'로 이해한다. 시장이 나빠져서 우리도 어려워졌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에어월렉스의 사례는 말해준다. 위기는 기업을 바꾸는 사건이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구조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사건이라는 것을.


비즈니스는 결국 두 가지로 나뉜다.


특정 거래를 처리하는 '기능 기업'인가, 아니면 거래가 일어나는 방식 자체를 정의하는 '인프라 기업'인가.


평상시에는 이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시장의 판이 바뀌는 순간 격차는 벌어진다. 기능 기업은 기존 거래가 사라지면 함께 사라지지만, 인프라 기업은 새롭게 생성되는 거래의 흐름 위로 영리하게 이동한다. 에어월렉스는 후자였다.


많은 창업자가 현재의 매출, 이미 확보한 고객, 잘 작동하는 채널을 지키는 데 에너지를 쏟는다. 그러나 에어월렉스는 현재가 아닌, '앞으로 생성될 거래의 흐름'을 기준으로 움직였다. 이것은 전략의 차이라기보다 '회사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의 문제다.


이 사례는 우리에게 질문 하나를 던진다.


지금 당신이 만드는 사업은 특정 시장에 최적화된 '기능'인가, 아니면 시장이 바뀌어도 올라탈 수 있는 '구조'인가?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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