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호랑이라고?
정말 휘발되어 버리기 전에 남기는 tci분석결과.
내 검사결과지를 상담선생님이 한마디로 정리해 주셨다.
"야생 호랑이".
그것도 야생성 100의, 흥 많고 멋도 많은 호랑이.
태생적으로 워낙 호기심이 왕성한 기질이기에, 활동반경이 넓을 거라 하셨다. 그래서 한 영역에 오래 머물지 못했던 거라고. 또한 직관이 남다르게 발달해서, 일단 눈앞에 보이면 움켜쥐고, 끝을 예감하면 미련 없이 털고 떠났을 거라고.
상담선생님 말씀으론 나의 기질은 예술이나 창조에 아주 적합하다고 했는데, 나는 그 말이 익숙하면서도 묘하게 불편했다. 아마 오랫동안 날 따라다닌 컴플렉스 때문이겠지. "너는 평범하지 않아. 넌 이상해."라는.
늘, ‘왜 나는 금방 질리는가’ 혹은 ‘왜 나는 오래 머물지 못할까’ 물으며 나쁜 성향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래서 스스로를 훈육하려 애썼다. 더 오래 버티고, 더 오래 한 우물만 파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생각들. 상담 선생님은 그걸 단점으로 보지 않았다. 굳이 바꿀 필요가 있느냐고도 하셨다. 선생님은 내 지능이 높을 거라고 추측하셨는데, 그 이유는 이랬다. "지능이 높을수록, 하나의 문제를 여러 관점에서 빠르게 꿰뚫어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머무르지 못함"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러운 결과일 수 있다고.
"이미 끝을 보았기 때문에, 더 이상 거기서 배울 것이 없다고 느낄 때 빠르게 다음으로 이동하는 것". 그건 집중력의 결핍이 아니라 감각이 예민하고, 판단이 빠른 사람에게서 자주 나오는 패턴이라고 말씀하셨다.
호랑이는 한 영역에 틀어박혀 있지 않는다. 숲을 돌아다니고, 영역을 넓히고, 자기 감각을 따라 이동하는 존재다.선생님은, “해파리씨는 원래 넓은 곳을 헤엄치는 타입인데 예전에는 그걸 ‘끈기 없음’이라고 오해했던 것뿐”이라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내게 "호랑이가 굳이 거북이처럼 걸을 필요는 없죠"라고 말했지만, 동시에 이렇게 덧붙이기도 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해파리씨는 이미 충분한 구슬을 가지고 있으니, 그걸 꿰어나가 보자고.
그러니까 구슬을 꿰지 않아도 살아갈 순 있지만, 꿰어낼 수 있다면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말인 걸까. 나는 그 말이 좋았다. 내 성향을 고쳐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어차피 불가능할 것을 경험으로 알기에) 내가 모아 온 것들 사이의 미세한 결을 내 방식대로 이어볼 수 있다면, 그게 곧 나만의 언어와 길이 될 수 있을까?
내 안에서 조용히 무언가가 정리되어 갔다. 억지로 뾰족한 한 점을 파지 못하는 내가 게으르거나, 부족한 게 아니었구나. 나는 그저 원래 그런 길을 걷는 생물이었던 것이다. 하나의 길을 따라 멀리 가는 사람도 있고, 숲 전체를 보며 움직이는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였다.
그리고 선생님은 덧붙여 말했다. “이 호랑이는 원래 혼자 잘 다니는 성향인데, 살면서 ‘연대’라는 감각을 새롭게 익힌 것 같아요.”
그 말이 재미있었다. 나는 스스로를 관계에 서툴고, 사람 사이에서 오래 머물지 못하는 유형이라고 여겨왔지만, 검사에서는 오히려 연대감이 매우 높게 나왔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사람에게 기대는 법을 어른이 되고 나서야 배운 것 같다.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필요한 순간들을 만나고, 그 가운데서 서서히 “함께 살아도 괜찮다”는 감각을 익혀온 것인지도. 선생님은 그래서 내가 지금처럼 조금씩 관계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건 어찌 보면 아주 자연스러운 성장이라 하셨다.
세상에 단 한 명쯤은,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겠지. 그리고 어쩌면, 이 글을 볼 수도 있겠지.
“사람마다 배우는 방식이 다르잖아요. 어떤 사람은 한 지점을 파고, 어떤 사람은 지점을 옮겨 다니며 연결해요. 해파리씨는 후자인 거예요."
청년이라는 이유로, 아직 미숙하다는 이유로 좋은 상담사님을 만날 기회를 잡았으니, 아직 그렇지 못한 또 다른 나들에게, 나를 살릴 말들을 건네본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구슬들을 꼴 보기 싫다, 버리지 말고 소중히 모아서 엮어보자. 흥 많은 호랑이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