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스레드 영구정지 소동으로 등골의 땀을 좀 뺐다.
그동안은 1시간 정도면 금방 복구가 되었기에, 영구정지는 생각지도 못해 백업을 해놓지 않았거든.
그래서 복구 후 가장 먼저 한 것은 글 저장이었다. 다는 못했지만 기억에 남기고 싶은 오고 간 답글들도 캡쳐해 두었고. 그렇게 하나씩 흔적들을 훑다 이전에 써둔 우리 가족에 대한 글을 한번 더 읽어보며 새삼 신기하다 싶더라.
방금 전 심리상담을 마쳤는데 끝나갈 때쯤 선생님이 그러시는 거다. 그러고 보니 우린 가족 얘기를 못했다며. 선생님은 매우 조심스럽게 여쭤보셨는데, 원래 그러신 건지 아니면 내 기색을 읽은 건지 모르겠다. 사실 말하는 건 어렵진 않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가족에 대해선 말하고 싶은 욕구가 올라오지 않는다. 아마 기대가 없기 때문이겠지. 말해도 바뀔 것 없어ㅡ라는 오랜 습관.
이전에 내가 올린 글들과 같이, 지금 우리 가족은 꽤나(?) 전에 비해서는 많이 안정된 상태이다. 부모님에 대한 동생의 원망도 그대로이고, 막내의 대인기피도 앞으로 넘어야 할 문제로 남아있지만, 그래도 이전에 비하면 참 신기할 정도로 좋아졌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엄마와 여동생 손을 이끌고 아빠와 이혼소송을 하라며 내가 직접 알아본 변호사에게 찾아갔던 우린데.
자세한 이야기를 남길 생각은 없다.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그럴 필요가 없어서. 지금 나에게 울컥 토해내지 않으면 안 될 만큼의 크지 않다. 아직도 그때의 습관은 남아있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여전하지만 '생존'을 위해 싸우지 않는 것만 해도, 퍽 살만하다.
어떤 스친님이 나와 아빠의 관계를 적은 글에서, 우리 아빠가 스윗하다고, 나의 섬세함이 보인다고 하셨다. 잘 보신 것 같다. 우리 아빠는 스윗하고, 사랑도 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8살의 내가 엄마에게 "아빠랑 이혼해. 동생들은 내가 잘 돌볼 테니까."라고 말하게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엄마가 선량한 피해자는 아니더라. 커보니 알게 된 것들도 있고. 내가 만약 결혼을 한다면 또 새로운 게 보이려나 모르겠다.
뭐랄까.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또 없기도 하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문장은 참이다. 각자의 이유로 질퍽대며 진흙탕을 뒹굴던 때도 우리의 모습. 그 모든 불행의 이유들 사이에 행복할 수 있었던 한 가지 이유 역시 우리 안에 있었다.
마침내 찾아내어서 참 다행이야. 그래서, 더 이상 "생존 모드"로 싸우지 않아도 "그냥 살아갈 수" 있어서 말이야. 내가 가장 사랑하는 부모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 더 이상 아니라서. 더 이상 고백에, 치유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어서.
친구는 내게 물었다. 어떻게 그런 관계도 회복할 수가 있느냐고. 부모를 용서할 수가 있냐고.
나는 답했다. "그들이 바뀌었기 때문이지."
그리고 덧붙였다. "물론 바뀐다고 용서가 보장되진 않아. 그리고 변화도, 용서도 100프로는 아니지. 그렇지만 내 경험으론, 상처 준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용서는 없더라. 내 경험은 그래."
용서에, 고백과 치유에 매달리지 않는 삶만 해도 한결 살만하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던 때에는, 늘 타인이 필요했다. 그건 지금 생각해도 당연한 거라 생각한다. 안에서 만들지 못하면 누가 채워줘야 하는 거 아닌가. 인공호흡이 마음에는 왜 없을 거라 생각하나.
그래서 가끔 살만한 때에는 최대한 나누려고 한다. 나도 누군가의 인공호흡들로 순간만을 살아간 사람이었고, 그렇게 버텨 지금은 미약하게나마 스스로 호흡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폐를 떼어줄 수는 없어도, 그 사람의 생을 보장하진 못해도, 지금 내 호흡이 누군가의 아주 잠깐의 '응급상황'을 버티게 하는 데 쓰인다면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