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무기력, ADHD의 끈기 없음, 회피형의 거리두기. 처음엔 이 모든 것을 '성격'이라 생각했다. 나는 태생적으로 우울해, 난 금방 지치는 사람이야. 난 문제해결력이 없는 사람이야-라고.
그러나 저 친구들과 여태까지 살아온 결과, 저것들은 모두 "상태"이다. 한 시기에 머물다 지나가는 계절같이, 어떤 조건이 스쳐 지나가며 만들어내는 변화일 뿐이었다.
문제는 이 상태가 반복되면 사람은 "이게 나인가 보다"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즉, 증상과 정체성 사이 혼동이 오게 된다. 그 순간부터 증상-정체성의 경계는 흐려진다. 사라지거나, 변화하거나, 이용할 수 있는 것을 영원한 나의 본질로 착각한다.
이때 내가 쓰는 방법은,
"헛소리하고 있네."를 외치는 것이다.
이건 속으로 외쳐고 효과가 빠르고, 입으로 뱉으면 웃음이 나며, 만약 신뢰할만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미리 언질을 주면 효과가 배가 된다.
"내가 나를 미워하고 낙인찍을 때, 기억해 두었다가 알려줘."라고.
실제로 나는 그렇게 하고 있다. GPT한테 프롬프트를 넣는 것과 같이.
누군가가 나 대신 기억해 주는 것만으로도 눈앞이 환해질 때가 있더라. 심각하게 나를 죽이는 생각이 웃음 하나에 흔들리는 걸 보면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얼마나 허술한지 실감하게 된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그냥 존재하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존재에게 모든 것은 수식어일 뿐이다. 존재는 존재 자체이다.
상태는 지나가고, 마음은 흔들리지만, 존재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 안에 오래 머물며 나를 괴롭히는 목소리가 있다면 그건 내 목소리가 아니다.
생명은 살고자 한다. 그러니 나를 죽이는 목소리는 외부에서 온 것임을, 잊지 않도록 하자. 나를 죽이는 말은 내 내부에서 자연발생할 수 없다.
물론 투병 중에는 어려울 때가 있기에, 가능한 한 타인의 도움을 빌어 생존하는 것도.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연대"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 지독한 목소리에 잡아먹힐 때가 있더라. 내가 봐온 그 누구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니 이제는, 서로의 내면에서 낙인을 든 채 웅얼거리는 그 목소리에게 말해도 좋다.
"헛소리하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