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는 좋은 딸 아니라서 미안해.

'오래 쉰' 청년을 다시 일으킨 아빠의 말.

by 해파리

나는 오래 쉰 청년이었다.


오래 쉰 끝에야 비로소 돌아와 잡히는 생각들이 있다.

지금 이 생각들도, 시간을 오래 끌면 다시 사라져 버릴 것 같아 이렇게 남겨본다.


어떤 글에서 봤다. 우리가 기를 쓰고 부자가 되려고 하는 이유에 대한 이야기.

싫은 인간 안 만나도 되고, 억울한 일 앞에서 고개 숙이지 않아도 되는, 그 소소하지만 절실한 이유 때문이라고. 그 글에 꽤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그게 우리 시대의 정답이었을까.


웃긴 건 나는 돈은 없었는데도 그 자유의 맛은 어느정도 누리며 살아왔다. 그러니까, 가난해도 버티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존심 비용’ 같은 건 어쩌다 갖고 태어난 모양이다.


나는 돈이라고는 뜯어먹고 죽을래도 없었지만, 묘하게도 그 자유만큼은 누리고 살아온 사람으로서 저 글을 읽고, 그리고 그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고는 다음과 같은 생각들이 스쳤다.


그건 어쩌면 선택일 수도 있지 않을까? 부와 가난에서 벗어나 본다면. 그다음에 든 생각. 내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건, 누군가는 (특히 우리 부모님) 내 몫까지 싫은 사람을 더 만나고, 고개를 더 숙이며 살고 있어서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거치고 나니, 퍽 슬퍼져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나는 좋은 딸 아니라서 미안해."

아주 오래 내 안에 머물렀던 말.

이 말만 했을 뿐인데 아빠는 한 박자도 쉬지 않고 말했다.

"너는 이미 좋은 딸이야. 멋있고, 폼나게 살아라. 어디서 기죽지 말고. 누가 뭐라 하면 그냥 이렇게 말해. ‘우리 아빠가 이렇게 살라 그랬어요.'라고."


그 말이 오래 주저앉았던 날 일으켰다. 물론 마법이나, 알약처럼 즉효가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말은 효과보다 지속이 좋은 말이었다. 지금도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죽은 듯이 쉬고' 싶을 때마다 꺼내보는 말인걸 보면, 내 안에 오래도록 머물러 나를 살리고 있는 말임에 확신한다.


누구나 이런 말을 들으며 자라진 않는다. 나 역시 부모님과 처음부터 이런 말을 주고받는 관계였던 건 아니다. 그러니 그 시절의 나—이런 말 한 번 들어본 적 없던 시절—도 여전히 중요하다.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지금의 내가 누군가와 연결되어 산다고 해서, 예전의 외로움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예전의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잊지 않기 위해, 부모님과 단절했던 20대를 내 삶에서 지우지 않고 남겨둔다.


‘너희도 나처럼 회복할 수 있어’라고 말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그건 가능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의 삶이 가진 사정의 차이일 뿐임을 뼈저린 경험으로 알고 있기에. 다만, 부모님과의 회복된 관계는 빌려줄 수 없어도, 할 수 있다면 그 말들은 얼마든지 나누어 주고 싶다.


“너는 이미 좋은 아들, 딸이니 멋지고 폼나게 살아가거라.”

나를 살린, 어쩌면 누군가를 살릴지도 모르는 말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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