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고 없는 도시에서 '나의 사람'들을 찾아낸 방법
친구.
나는 수원에서 나고 자라, 서울을 중심으로 생활하다가 울산에 2년 전에 이사를 내려왔다.
울산에는 친구가 한 명도 있지 않았다. 외향적인 성격인, 나는 친구를 정말 사귀고 싶었고, 지난 2년 간 꽤나 다양한 친구를 사귀었다. 이곳에서 사귄 친구들과 2년간 친구들과의 관계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2년 전 이 즈음(정확히 결혼기념일 전 날, 2024년 3월 31일에 이사를 왔다.) 곰곰이 생각했다.
'과연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 한 사람들은 친구를 어떻게 사귈까? 일단, 어린이들과 학생들은 학교를 가니 친구가 생기겠지? 직장을 이유로 이사 온 사람들은 직장에서 인간관계가 생길 것이고, 그 관계에서 파생되는 관계들이 많겠지? 그리고 20대 대학생들은 새로운 지역이라 하더라도 대학교를 다니니까 친구가 있을 거야. 기혼 여성인 경우, 직장이 없더라도 보통 아이를 낳고, 키우며 산후조리원, 어린이집을 거치며 친구가 생기는 것 같네.'
그리고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그럼 나는?? 나는 직장에 안 다니고 있는데? 나는 지금 아이가 없는데? 나는 어디서 친구 만나?????'
그 이후로 나는 친구 사귀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친구를 사귀기 위해 아이를 낳을 수는 없으니까
1. 산책을 열심히 했다. 집 근처 여천천까지 걸으며, 내가 단지의 내 또래 분들(나의 친구가 될 가능성이 있는)은 단지 정문 앞에서 오전 8시 30분쯤에 아이와 함께 어린이집 차를 기다린다는 것을 관찰했다. 친구를 만들기 위해 아이를 낳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당시 약을 열심히 먹던 차라 아이 생각을 할 수도 없었다.
2. 걷다 보면 여천천 주변, 여천천으로 가는 주변에 비슷한 시간대에 나와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계셨다. 그분들과 친구 하기에는, 아직 말 걸기가 망설여졌다.
요가, 난타, 그리고 풋살 사이의 어딘가
3. 천을 따라 걷다 보니 요가학원을 발견했다. 그곳에서 1달 정도 주 3회 나가다가, 늘 꾸준히 오는 분께 온갖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 그렇게 H 언니와 친구가 되었다. 언니는 울산 사람이었고, 운동에서 누군가를 친구로 사귀어 본 것은 처음이라고 하셨다! 괜스레 뿌듯했다! 언니와 요가를 끝내고 난 후 종종 차를 마셨고, 밥도 먹었다. 언니는 초등학생, 중학생 여자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다. 울산에서 나고 자라, 부모님을 포함한 모든 친척들이 울산에 살고 계셨다. 요가학원이 대단지 아파트 앞에 있어서, 단지 내 분들과도 잘 아시는 듯했다. 하루는, 언니와 요가 끝나고 커피를 마시고 싶었는데, 용기 내어 제안하려던 찰나에 언니가 언니의 친구들과 단지 내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인 것을 알게 되었다. 애매한 상황이라, 나는 총총 혼자 단지 밖으로 걸어가는데, 무척 아쉬웠다.
4. 그런데 요가학원에서 회 당 90분의 수업을 길다고 느껴 참지 못했던 나는, 여러 궁리를 하다가, 집 앞 '신정4동 주민센터'의 난타 수업을 갔다. 기분 전환이 될 수 있을 것 같고, 내 속내에는 친구를 사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난타 수업의 소리는 정말 우렁찼고, 그곳에는 어르신들이 정말 많았다. 가장 대장이신 분이 약 80세인 것 같았고, 활기차고 나를 잘 챙겨주셨지만, 약 10분의 어르신들이 다 나이차이가 많다고 느꼈다. 2주 만에 그만두었고, 이번 친구 사귀기는 실패였다.
친구와 소속된 곳(학교, 직장)이 없다 보니, 내가 소소하게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어떤 상황에서, 어떤 사람과 친구가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을 품고 있던 지라, 생활권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도끼눈을 뜨고 관찰하고, 친절하게 대하곤 했다. (이렇게 쓰다 보니 먹이를 노리는 독수리 같은 느낌이다.)
5. 이것은 짧은 성공스토리. 나의 얼굴/턱 통증 때문에 울산에서도 대학병원에 갔어야 했고(서울 중앙대병원은 너무 멀었고, 다행히 내 분야를 담당하는 의사 선생님이 울산대학교병원에도 계셨다), 이와 동시에 한의원과 턱치과 등을 다녀야 했다. 자주 가던 한의원의 한의사 선생님과 어쩌다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나와 동갑이셨고, 나와 같은 MBTI인 ESFJ 셨다! 안동이 고향인 선생님이 펜싱을 취미로 다니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선생님의 경청과 진실된 모습이 참 좋았다. 한의원 가는 것이 한편으로 싫으면서도, 선생님을 만나는 것에 마음이 놓였고, 심지어 선생님께 크리스마스 카드까지 드렸다!(24년도 말부터 올해 '아온'의 사람들에게 나만의 어워드로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 있다) 그런데 당시 모종의 이유로 2달 동안 한의원을 못 갔는데, 오랜만에 가보니, 선생님이 강원도로 한의원을 옮기셨다고 하셨다!(그 한의원이 프랜차이즈인지라, 다른 지역으로 가신 것 같았다.) 너무 아쉬웠고, 아무래도 한의원이라는 공간에서 연이 닿은 지라, 개인적으로 연이 닿지 못해 아쉬웠다.
6. 친구를 사귀기에는 체육활동만큼 좋은 곳이 없는 것 같다. 헬스장 PT, 필라테스 PT는 선생님과 나만의 시간이라 친구들을 사귀기에는 조금 아쉽다. 그리고 그룹 필라테스도 소위 '갠플(개인플레이)'가 강한 느낌이 있어서 함께할 수 있는 다른 스포츠가 친구 사귀기에 좋다. 그렇다고 내가 동호회에 들어갈 정도의 실력을 갖추지는 않은지라, 새로운 도전을 했다. 첫 번째는 체육관 스쿼시 클래스. 다른 멤버 8분들과 정말 초급부터 시작해서인지, 서로 얼굴도 알고 조금씩 말도 건넸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녁시간 일과와 맞지 않아 그만두게 되었는데, 제대로 인사하지 못하고 나온 것이 아직도 아쉽다. 두 번째는 여성풋살. 오전에 수업이 있었고, 아예 공을 차 보지 않은 채로 시작했다. 이미 서로 잘 알고 계신 지라, 처음에는 어색했으나 풋살처럼 멤버들과 살을 맞대고 운동하면 가까워지게 된다. 멤버의 결혼을 축하했던 작은 이벤트가, 저녁 모임까지 이어지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풋살도 임신한 줄 알고 혼자 김칫국 마시다가, 그만두고 말았다.
결국, 나다운 언어로 나만의 판을 깔다
7. 그리고 지금부터는 찐 성공스토리. 곰곰이 생각하다가, 나는 영어를 좋아하니 영어를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룹으로 배우고 싶었다. 당시 한 달 정도 1:1 영어 과외를 받았는데, 선생님과의 소통보다 다수의 멤버들과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찾아간 영어회화 학원에서 그룹 회화를 이끄는 리더 자리를 제안받았고, 1년 2개월을 하게 된다. 화/목요일, 11-13시에 그룹 회화를 리더로 이끌었고, 그곳의 자리는 무보수(이 부분이 불만스러웠던 부분이었고, 그곳에서는 회화 시간을 이끄는 대가로 다른 요일의 회화에 멤버로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금의 나의 친구들을 만났다. 20-70대에 이르는 영어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분들을 매주 만나면서, 나는 나이대와 상관없이 친구를 사귀는 방법을 터득했다! 영어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는 지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도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무보수였지만, 그만큼 나는 그곳에서 자유로운지라, 끝나고 점심도 자주 먹었고, 따로 개인적으로 약속을 잡아 카페를 가고, 저녁을 먹었다.
어제 나는 영어커뮤니티에서 만난 J 언니와 1시간 동안 통화했다. 언니는 나보다 11살이 많고, 생활의 지혜가 정말 많고, 꾸밈없이 솔직하며, 사주와 관상을 잘 보고, 부동산에 밝다. 언니와 대화하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알 수가 없다.
오늘 나는 또 그곳에서 연이 닿은 M 언니와 저녁을 먹고 찐한 수다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언니는 나보다 12살이 많고, 나의 뮤즈다. 나는 세상에 태어나 언니처럼 '자신의 일'을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건강한 도파민을 추구하는, 열정이 가득한 사람이다. 그의 직업은 응급의학과 의사인지라,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왜 메디컬 드라마가 많은지 이해가 된다. 응급실 의사로서 촌각을 다투는 일상에, 인생사가 모두 담겨 있는 지라, 도대체 언니는 어떻게 멘탈 관리를 하며 사는 건지 놀라울 뿐이다.
내일은 커뮤니티에서 만난 미국인, C와 하이킹을 할 예정이다. 처음에는 한국어-영어 언어교환 메이트로 만났으나, 한국어 공부는 하지 않고, 수다만 하다가 헤어진다. 미국 남부 조지아 출신인 C와 1년 넘게 친구로 지내며, 미국인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이 많이 깨졌다. 그는 대형 어학원에서 초등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소설을 쓰고, 고양이 두 마리 자매를 키우며(부산에서 구조된 냥이다!), 쿠팡을 사랑하며 살고 있다. 그와 책 이야기와 여러 생각들을 나누다 보면 늘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의 깊은 속 얘기를 할 때면, 더 영어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놀랍게도, 이번 주 토요일에 내 친구 사귀기의 정점을 찍는 행사가 있다.
8. 울산독도로독 4번째 모임. 친구를 사귀고 싶지만, 쉽지 않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 적적한 시간을 채워준 것은 여러 '팟캐스트'들이다. 다양한 팟캐스트를 듣고 있는데, 그중에서 나는 3년간 듣고 있는 '여둘톡'이라는 프로그램의 팬이다. 두 작가님들이 진행하는 팟캐스트다. 그 팟캐스트에서 2026년도의 캠페인처럼, '독도로독'을 제안하셨다. 1년에 1권의 책만 읽어도 우리나라 상위 40%가 되는 마법이 일어난다고 하시면서, 책 읽기를 제안하셨다. 여둘톡을 듣는 청취자들을 '톡토로'라고 하는데, 1권 이상의 책을 읽으면 '독도로'가 된다고 하셨고, 나는 그 '독도로독'이라는 어감이 마음에 쏙 들었다.
작가님들이 서울에서 모임을 연다고 하시길래, 나도 울산에서 모임을 갖고 싶었다. 실제 일상에서 다른 '톡토로'들을 만나본 적이 없던 내가, '실제로 톡토로들을 만나, 함께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눈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판을 깔아보았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 '울산 독도로독'을 개설했고, 작가님들께 사연을 보냈고, 작가님들이 에피소드 마지막에 울산 독도로독을 언급해 주시면서, 오픈채팅방에 톡토로들이 모이게 되었다! 모임을 가지게 되었고, 관심사와 취향이 비슷한 톡토로들과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책을 읽으니 정말 설레고, 기뻤다. '각자 가져온 책'을 '함께' 읽으며 40분간 읽고 나서, 나이, 직장, 성별 등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을 'OO토로'라고 소개하며 책 이야기를 하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지난 2년간 울산에서 만난 친구들, 관계들을 돌이켜보며 흐뭇해졌다. 서울에서 일하고 지내는 친구들이 보고 싶어, 서울 가고 싶은 마음을 숨 참듯이 참다가, 폭발시키며 서울을 갈 때도 있다. 어쩌면 자주 보지 못 해 더 애틋하고, 더 친구가 그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서울에 살았다고 해도, 각자의 일상으로 보는 횟수가 많지 않았을 것인데도 말이다.
직접 만나는 것만큼 좋은 일도 없지만, 이제는 카카오톡, 왓츠앱, 구글미트 등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는 때도 많다. 박사과정을 밟고자 뉴욕에, 시카고에 살고 있는 친구들과는 카카오톡으로, 10년 전 리스본에서 만나 작년에 울산/경주를 함께 여행한, 바르샤바에 살고 있는 폴란드 친구와는 왓츠앱으로, 정말 시간이 안 맞을 때는 서울에 있는 친구들과 구글미트로!
2년 간 물리적으로 친구들과 멀어지면서, 여러 관계의 변화들도 동반되었다. 연락이 뜸해진 친구도 있고, 더 이상 연락이 안 되는 친구도 있고, 의외로 더 가까워진 친구도 있고, 더 깊어진 친구도 있다. 어쩌면 이것은 물리적 변화가 없었어도 일어날 관계의 변화들이었다.
사실 나는, 애석하게도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만난 친구들과는 거의 연락이 닿지 않는다.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우연히 그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도 소중했지만, 당시에 나는 어렸고, 가정환경으로 인해 친구들과 마음을 나누는 것을 조금 어려워했다. 오히려 성인이 되어, 나와 비슷한 결과 색을 지닌 사람들과 더 가까워지고, 더 다채롭고 풍성하게 관계를 맺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의 2년간의 친구 사귀기 프로젝트는 대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