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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운 Mar 15. 2023

슬릭 부스트로 보는 UX - 고객 이해하기

그로스도 하고 글도 쓰는 스티븐입니다.

오랜만의 ‘UX 물어뜯기’ 시리즈입니다. UX는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이라는 뜻입니다. 이 시리즈는 제가 사용자, 소비자로서 경험한 인상적인 순간을 곱씹으며 무엇이 좋았고, 무엇이 별로였는지를 공유하는 연재물입니다. 이 글은 당신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관점을 제시하고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도와줄 겁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지 않아도 좋습니다. 다음 단락까지는 꼭 읽어보시고 그래도 도움이 안 될 것 같다면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당신이 이 글을 읽어야 하는 이유; 똑똑한 소비자/생산자가 되기 위해

알고 계셨나요? 우리는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무언가를 구매하는 소비자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여기서 ‘구매’는 돈을 내고 물건이나 서비스를 얻는 것뿐 아니라, 여러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행위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주말에 낮잠을 더 자는 대신 산책을 하기로 결정하는 것, 라면을 먹는 대신 밥을 해 먹기로 결정하는 것, 출근길에 운동화 대신 구두를 신기로 결정하는 것도 넓은 의미에서의 구매이지요. 각 예시에서는 돈을 지불하지는 않지만 ‘산책에 쏟는 시간’, ‘식사를 준비하는 노력’, ‘운동화를 신는 편안함’을 지불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 말은 이 글을 읽는 이 순간에도 당신은 브런치라는 서비스를 구매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보는 대신 유튜브를 하거나 치킨을 먹거나 쉴 수 있는 다른 선택지들을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읽으면서도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된다면 정상입니다. 일반적으로는 본인의 행동에 대해서 깊게 생각 안 하니까요.


우리는 매 순간 구매 결정을 하면서도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습니다. 우리가 소비자일 때 어떤 기준으로 구매 결정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가 공급자일 때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겠지요.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면 사회적 효용은 늘어나고 우리는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지 않고 계속 읽고 계신 당신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이번 글에서 UX를 살펴볼 서비스는 슬릭 부스트입니다.


슬릭 부스트가 뭔데요?

사진 출처: 슬릭 부스트 공식 홈페이지


슬릭 부스트는 단체 운동(Group Exercise) 프로그램입니다. 헬스는 근육량 증가를 통해 아름다운 몸을 만드는 데에 비해 슬릭 부스트의 운동 프로그램은 지구력, 유연성, 민첩성 등 다양한 신체 기능을 균형 있게 발달시킬 수 있게 도와줍니다. 크로스핏 하고 비슷하면서도 다양한 차별점이 있습니다.

서비스의 외적으로는 6년 차 스타트업 슬릭 코퍼레이션에서 출시한 프랜차이즈 형식의 단체 운동 브랜드더군요. 프랜차이즈 형태이기 때문에 다양한 지점에서 비슷한 사용자 경험을 유지할 수 있게 기획되었을 겁니다.


사용자 여정, 내가 슬릭 부스트를 이용한 과정

사용자 여정은 소비자가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며 경험하게 되는 일들을 순서대로 기록한 것입니다. 제가 슬릭 부스트를 어떻게 알게 되었고, 어떻게 사용하였으며, 마지막에는 어떤 의사 결정을 내렸는지를 제 시선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지(Awareness), 슬릭 부스트를 알게 되다

프리랜서인 저는 집 근처 카페에서 일하거나 글을 쓰곤 합니다. 지나가던 길에 평소에 못 보던 입간판이 보여 살펴보았죠. 건장한 남녀들이 운동복을 입고 포즈를 취한 사진이 보였습니다. 더 자세히 보지는 않았고 새로 생긴 크로스핏 체육관이라고 판단하고 지나갔습니다. 저는 운동을 좋아하지만 크로스핏은 가격도 비싸고 부상의 위험이 크다고 생각해서 관심이 없었거든요.

며칠에 걸쳐 같은 거리를 몇 번 더 지나게 되었고 이전에는 주의 깊게 보지 않았던 입간판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게 됩니다. 1주일간의 무료 체험을 제공한다는 문구가 눈에 띄었습니다. 공짜는 못 참죠. 그제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고려(Consideration), 체험을 결정하다

이때부터 머릿속으로 비교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무료 체험이라고는 해도 제 시간과 에너지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무료 체험에 참가할 여건이 될지, 체험이 충분히 매력적 일지 따져봤습니다.

   

일주일간 체험 수업을 빠짐없이 참가할 수 있을 만큼 컨디션이 좋은지?

일주일간 매일 한 시간씩 운동할 시간을 낼 수 있는지?

집에서 슬릭 부스트 지점까지의 거리가 적당한지?

부상의 위험은 없는지?


부상의 위험이 어느 정도나 될지는 체험 수업을 들어보기 전에는 알 수 없었고, 나머지 항목들은 괜찮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체험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상태로 입간판을 더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체험 수업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입간판에 인쇄된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스캔하고 체험 신청을 해야 했습니다.

여기서 좀 귀찮다고 느껴졌고, 신청을 마무리하지 않은 상태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체험 신청을 위해서는 연락처를 남겨야 했는데,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체험 신청을 완료하는 게 계속 귀찮게 느껴져서 다음날 저녁이 되어서야 신청을 완료했습니다. 체험을 완료하는 순간까지 연락처를 전달하는 게 조금 찜찜했죠.


스마트폰으로 입간판의 QR코드를 스캔하는 사람들은 보통 지나가는 길에 호기심에 해본 걸 텐데, 길 위에 선채로 빠르게 신청을 완료할 수 있을 정도로 응답 문항의 수를 줄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기서 신청 절차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뒤에 슬릭 부스트에서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체험 신청을 완료하기 위해서는 전용 앱을 설치한 후 원하는 수업 시간을 선택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이것 또한 꽤나 번거로운 과정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쨌거나 이번에는 정말 체험을 위해 필요한 모든 과정을 마쳤습니다.


경험(Experience), 본격적인 체험 시작

약간은 걱정되는 마음으로 예약된 시간에 맞춰 센터에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깜짝 놀랐죠. 대기하고 계시던 직원분들이 반갑게 인사를 하고 제 이름을 불러주시더군요. 기존 회원들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한다는 뜻이기도 해서 신기했습니다. 수업은 아찔할 만큼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운동은 배우기 쉽게 구성되었고, 강도는 높으면서도 부상의 위험은 적게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슬릭 부스트를 짧게 요약하면 ‘다양한 소도구를 이용한 서킷 트레이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운동 자체는 꽤나 즐겁고 만족스러웠습니다. 일주일 내내 비슷한 만족감을 줬기 때문에 더 설명할 내용이 없을 정도로요.

아쉬운 경험은 운동 이후에 찾아왔습니다.


첫날 운동이 끝난 후에 바로 가격 안내를 받았습니다. 슬릭 부스트의 운동 프로그램이 수강료의 값어치를 하는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3일 정도는 체험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소 성급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이해할 수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둘째 날에도 다른 분에게 가격 안내를 반복해서 받았고 첫날에 안내받은 가격하고 미묘하게 다른 내용을 전달받았습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체험을 그만둘 만큼 불만이 있던 것도 아니라 남은 체험을 즐겁게 마쳤습니다. 토요일을 포함한 총 6일간의 체험이 모두 종료된 이후 유료 결제를 권하는 본격적인 프로그램 안내를 받았습니다.


결정의 순간(Moment of truth), 구매는 하지 않은 이유

센터 내부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준비된 인쇄물을 보며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사실 이 순간이 꽤나 실망스러웠고 서비스를 유료 구매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세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요.


첫째, 제가 일주일간 체험을 하며 느낀 만족도가 어땠는지 전혀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둘째, 가격 설명이 계속 바뀌는 것 같았고 그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도 아쉬웠습니다. 예컨대 할인 가격을 제시하실 때 말을 하는 대신 계산기에 숫자를 찍어서 보여줬는데 예전 용산 전자상가에서나 볼법한 방식에 깜짝 놀랐습니다.

셋째,  제가 유료 결제를 하겠다는 대답을 하지 않은 채 장단점을 따져보고 있을 때 저에게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은 장점들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니까 6개월치 수업료를 하루 기준으로 나눠보면 매일매일의 운동 비용은 저렴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저에게는 수업료보다 얼마나 안전하게 꾸준히 운동할 수 있을지가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슬릭 부스트의 수업료는 대충 크로스핏 체육관의 수업료와 비슷했고, 6개월 요금을 기준으로 쉽게 결정할 수 없을 만큼 큰 금액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상담을 받는 때에 제가 운동을 하며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결제하기 전에 걱정되는 점은 무엇인지 알려고 하기보다는 일단 판매를 이뤄내기 위해 할인 혜택을 제시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나요?

슬릭 부스트의 운동 경험은 꽤나 좋았습니다. 다만 사용자 입장에서 경험하게 되는 그 앞뒤 단계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체험 신청 과정은 꽤나 성가셨고, 체험 이후의 안내는 좀 더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슬릭 부스트의 사례를 통해서 우리는 공급자가 생각하는 서비스의 범위와 소비자가 인식하는 서비스의 범위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개념이기 때문에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식당은 음식만 맛있게 만들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은 종합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인테리어와 서비스 등 모든 면에서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죠. 저는 여기서 무조건 두 번째 관점이 옳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맛있는 음식을 저렴하게 만드는 것에 집중한 식당과 그런 음식을 원하는 손님들이 잘 만나면 그 식당은 가성비 맛집으로 자리 잡을 것입니다. 반대로 경험을 제공하는 것에 집중한 식당과 그런 경험을 원하는 손님들이 잘 만나면 인스타 맛집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손님의 기대와 식당의 의도가 엇나갈 때 발생합니다. 저렴한 음식을 원했던 손님은 멋진 인테리어의 식당의 음식 가격이 쓸데없이 비싸다고 말할 겁니다. 멋진 경험을 원했던 손님은 빠르고 효율적으로 준비되는 음식을 받아보고 형편없이 초라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다이소에서 고객맞춤 서비스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명품 매장에서 셀프서비스를 예상하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우리는 공급자 관점에서 우리가 제공하는 상품과 서비스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고객들이 기대하는 서비스의  범위에 대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혹시 우리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 개선하고 있는 서비스의 일부가 고객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 부분은 아니었을까요? 또는 우리가 생각도 못했던 영역에서 고객들이 실망하고 이탈이 일어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고객의 입장에서 고객 여정을 그려보면 우리 노력의 일부가 쓸데없는 헛수고는 아닌지, 혹은 생각지도 못한 영역에서 고객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좀 더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치며

그런 의미에서 만약 제가 슬릭 코퍼레이션의 직원이라면 수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어떤 단계에서 이탈하는지를 분석하여 병목이 생기는 부분을 개선하고, 결제로 이어지지 않는 고객들과 인터뷰를 통해 어떤 점을 더 개선할지 분석하는 업무를 했을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주변에 공유해 주세요. 글을 쓰는데 큰 힘이 됩니다. 다시 저를 소개하면 저는 그로스도 하고 글도 쓰는 스티븐입니다. 혹시 당신의 서비스의 UX를 개선하고 싶거나 그로스 컨설팅이 필요하시다면 연락 주세요.


마지막으로, 이 글은 슬릭 부스트가 만족스럽지 않았다는 말을 하는 리뷰 글이 아닙니다. 아쉬운 점이 있었고 저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았지만 운동 자체는 매우 즐거웠고 운동을 좋아하는 다른 분들에게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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