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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로윤 Sep 20. 2023

내 아이에게 쓰는 편지

눈물이 났다.

아이를 낳고 찍은 아이사진들을 어떻게 할까 하다가 일기를 쓰면 책을 출판해 주는 사이트에서 매일 일기를 쓰기로 했다. 사진도 넣을 수 있어서 사진 앨범도 되고 그날의 일기도 되어 1석 2조였다. 하지만 큰 문제가 있었다. 평생을 학교에서 숙제로 내주는 일기 말고는 꾸준히 일기를 써본 적이 없던 나였다. 그나마도 미뤄뒀다가 제출 전에 한 번에 몰아서 쓰는 일이 다반사였다. 매번 오늘 할 일을 내일의 나 혹은 더 미래의 나에게 맡겨버리는 사람이 나였다. 요즘 유행인 MBTI에서 나는 완전히 P인 것이다. 매일 일기 쓸 결심을 한 자체만으로도 아이 한 명이 나에게 정말 많은 변화를 가져왔구나 싶다.

역시나 매일 일기 쓰기는 힘든 일이었다. 일기를 깜박하거나 미룰 때마다 그럼 그렇지 나란 인간은 변하지 않는구나 싶었다. 그럼에도 어찌 되었든 간에 매일 쓰기는 실패했지만 꾸준히 적어 일기를 5권이나 출판했다. 지금도 꾸준히(매일 쓰기는 매번 실패하지만. 심지어 몰아 쓰지만.) 쓰고 있다. 이것만 해도 나에게는 참 대단한 일이다.


일기를 출판할 때마다 들어가는 말에 아이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그런데 이 편지를 쓸 때마다 눈물이 난다. 부모님에게 나도 이런 말들을 비슷한 말들이라도 들어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게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나도 유년시절을 행복한 시절로 기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밀려들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는 것이다.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적는다고 했지만, 어쩌면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썼던 편지의 일부는 아래와 같다.


엄마는 어렸을 때 신기한 마법을 부릴 수 있는 마법사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물론 마법사가 될 수는 없었지. 그런데 지금 마법에 걸리고 말았어. 하루하루 순간순간 아주 사소한 것도 특별해지는 마법. 너만 보면 웃음이 나오는 마법에 말이야. 가족들도 다 마법에 걸려서 아빠도 엄마도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웃음이 넘치게 되었단다.

앞으로 네가 세상밖으로 나가려면 힘들고 두려운 일들이 가득할 거란다. 그때마다 엄마 아빠가 너의 뒤에 항상 있다는 것을 네가 알고 있으면 좋겠어. 분명 힘든 일도, 슬픈 일도, 화나는 일도 짜증 나는 일도 있을 거야. 엄마 아빠는 단지 너이기 때문에, 오로지 너이기 때문에, 엄마아빠의 소중한 아이이기 때문에 항상 너를 사랑한단다. 너는 그 존재만으로도 소중한 사람이란다. 그걸 잊지 말고 항상 씩씩하고 밝게 살아가면 좋겠어.

엄마아빠가 때로는 욕심을 낼지도 몰라. 하지만 잘하지 않아도 너는 너의 존재 하나로 충분하단다. 우리는 네가 건강하고 행복하면 그걸로 되었단다. 가끔은 우리에게 서운해도, 때로는 혼내는 엄마아빠가 미워져도 네가 잊지 않았으면 해. 우리의 진심은 오로지 너의 행복이란다.


지금 편지를 옮기면서도 코끝이 시큰해진다. 평생 그 비슷한 말도 들어보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나에 대한 연민일까. 그저 사랑받고 싶었던 나의 내면아이의 서러움일까.




얼마 전 남편과 대화를 나누다가 또 하나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결혼준비 때 우리 부모님이 당시엔 예비사위였던 남편에게 나에 대해 험담(단점을 부풀려 쟤는 이런 애라던지 쟤는 그런 게 문제라던지)을 했다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너무 평범한 일이라 그랬구나 싶었다. 그런데 남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장인 장모님은 왜 자식 험담을 그렇게나 나에게 했을까?"


당시 내 결혼을 탐탁잖아 했으니 내 결혼을 방해하려고 그랬을까?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평생을 그래왔다. 겸손을 가장한 험담. 본인들의 친구들에게도 남들에게도 언제나 나를 까내렸다. 항상 자랑을 하고 다니셨던 시부모님 그러니까 남편의 부모님과는 상반된 모습이라 남편입장에서는 의아했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자주 그랬어. 남들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더라구"


"전부터 느꼈지만 장인 장모님에게는 네가 마치 짐짝이었던 것 같이 느껴지네..."


남편을 만난 후로는 자꾸만 진실을 눈앞에 마주하게 된다. 회피형 불안을 갖고 있던 내가 매번 도망치고 회피했던 진실들 말이다. 이미 나쁜 딸이 되기로 하고 보고 있지도 않은 마당에 더 이상 상처받을 것도 없지만, 그럼에도 마주하게 되는 진실은 가슴을 후벼 판다.


우리에게 아이는 선물 그 이상이다. 육아는 힘든 일이지만 그 힘듦을 뛰어넘어서 아이가 주는 행복과 기쁨이 있다. 나이 먹을수록 웃을 일이 줄어든다고 느꼈는데 하루에도 몇 번을 웃는지 모르겠다. 주변사람들에게 아이는 꼭 낳아야 한다고 낳아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말하고 다니는 편이다.(물론 강요는 하지 않는다)

반면에 나는 부모님께 그저 짐짝이었으니 미안해야 하나 싶다. 이런 아이로 태어나서 죄송하다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욕심에 발맞출 수 있는 아이로 태어나지 않아 죄송하다고. 무조건 부모님 말씀에 토 달지 않고 네 하는 애가 아니라 죄송하다고 말이다. 그럼에도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안 되는 수동적인 인간인데 심지어는 고집도 세서 그조차도 예비남편에게 험담거리가 되어버리는 어른이 되어서 죄송하다고 말이다. 그 성격조차 부모님을 닮아 그런 것이니 그저 헛웃음만 나온다.


아이가 기질이 예민해 까다롭고 쉽지 않은 육아를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울고불고 발버둥을 치고 소리를 질러도 그럼에도 내게 웃어주면 미치도록 이쁜 게 내 아이이더라. 그렇게 나는 또 내면의 나를 향한 눈물 한 바가지를 삼키고, 나의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활짝 웃으며 말한다.


"사랑해"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아이로 자라서 남들도 많이 사랑해 주렴. 사랑받으려고 너무 애쓰며 살지 말고 철없이 해맑게 웃으면서 자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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