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좋은 사람들과 일 외적으로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했었는데, 그 때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글쓰기 사내동호회인 ‘문집’ 이라는 걸 만들어 2주에 한 번씩 가볍게 글쓰기를 했더랬지.
‘그러려니’를 하려고 하니 그 때의 것들이 생각나서 찾아보았고, 다행히 아직 데이터가 남아 있어 다른 사람들의 글까지 하나하나 읽어보았다. 그때 함께한 사람들별로 각자의 취향과 그 시절이 잘 녹아 있어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어 기분이 묘했다.
그 중 내가 쓴 글을 보며 느낀 점을 ‘그러려니’ 첫 출사표를 던지고 싶어 긁어왔다. 바야흐로 2012년 6월 2일 9시 56분의 글을 옮겨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그 시간을 곱씹어본다.
윤시영.
달리는 7호선에 몸을 싣고 글을 쓰고 싶어 늘 그렇듯 이어플러그를 꼽고 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든 생각이 문집이라는 이 집단의 시작은 사실 우리 모두에게 존재하는 어떠한 갈증에서 비롯된 것이지 아닐까 싶었다.
그리곤 일전에 싸이월드 다이어리란 곳에 이런저런 생각을 끄적이던 때가 기억났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는 글이라는 매체에 나의 생각을 녹여내는 행위에 겁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제는 여러 집단에 속해서, 어떠한 역할들을 맡아나가며 그에 따른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 말 그대로 ‘사회적’ 존재가 되어버렸으니 이제는 그러하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내 생각을 표현하는 창구들은 제한되었지만 나는 얼마만큼은 성장하였고, 사고 또한 얼마만큼 심화하였다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문제는 그만큼 그러한 것들을 풀어내고 싶은 -요즈음의 내 용어로는 싸지르고 싶은- 그러한 갈증은 깊어졌을 터. 이것이 내게, 우리가 문집이란 창구를 트게 된 이유일 것이라 느꼈다.
그렇게 소중한 공간인 문집을 채워나가려는데 문득 나의 예전의 공간들이 궁금해졌다. 그리곤 자연스레 들어간 싸이월드 다이어리. 그 공간에는 많은 글이 놓여있었고, 열심히 읽어나가던 중 흥미로운 글을 발견했다. 바야흐로 2006년 8월 16일 오전 1시 51분의 글. 아래에 옮겨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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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호등에 서 있었다. 초록 불이 됐다. 초록빛이 나자마자 깜박거렸다. 나는 걸음을 빨리해야 했다.
2. 식사를 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나보다 식사를 빨리하고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식사를 빨리해야 했다.
3. 길을 걷고 있었다. 같이 가는 친구들이 어딘가에 쫓기는 듯하게 걸어서 나와는 약간 거리가 생겼다. 나는 그들과 거리를 맞추기 위해 서둘러야 했다. 아니, 그들을 쫓아가야 했다.
모든 것이 급하다. 나는 조금 더 여유롭고 싶고, 한 번 더 뒤를 돌아보고 싶고, 천천히 음식을 느끼고 싶고, 조금 더 숨을 들이쉬고 싶고, 거리를 느끼고 싶다. -이곳은 아주 숨 막히는 곳이다-
뭐가그리급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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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 때 쓴 이 글을 보고 허세 돋는다며 마냥 오그라들지만은 않았다. 그때의 나를 진정성 있게 담았다고 느꼈기 때문. 지금의 나는 너무나도 급하고 복잡하고 바쁘지만, 이 삶이 전혀 싫거나 하지 않다. 좁은 독서실 책상에 앉아 나라는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던 그때의 수험생 윤시영은 지금의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납득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인 걸까?
지금의 표면적으로 누가 봐도 정신없고 바쁜 나라는 남자에겐 그때의 그러한 고민들이 그저 어렸던 생각들이 아니라 지금의 삶을 가능케 하는 뿌리 같은 것이라 느꼈다.예전엔 온라인 상의 유일한 창구였던 싸이월드 다이어리. 그곳엔 먼지 쌓인 기록들이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이 또한 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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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뭔가 글의 구조가 인셉션 같아지는 기분이 드는데… 사실 저 글을 다시 보는 순간 데자뷰deja vu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반복되는 기분이랄까.
해당 동호회의 구성원들이 달아준 댓글까지도 묘한 감동을 불러온다. 참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었구나 싶기도 하고.
스무살. 야망과 야욕이 넘쳐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느라 남에게 마음쓰는 것이 어려웠던 나의 이십 대. 너무 빠르고 급하게 움직이느라 주변은 물론 나 자신조차 추스리지 못한 채 달렸었지. 아마 흔히 말하는 ‘성공’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 덕에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 ‘빠른 속도’ 는 나에겐 맞지 않았던 것 같다. 맞았다면 그 때 행복 했었겠고, 지금도 아마 달리고 있었겠지.
오늘의 나는 여러 일을 하고는 있지만 무엇보다 ‘느리게’ 가자고 매일 스스로에게 되뇌인다. 그리고 2012년에 나의 글을 쓸 때 처럼 그보다 예전에 썼던 이야기를 들춰보며 다음을 그려나가는 것 같다. 누군가가 보면 그때 그때의 다른 내가 모순이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다.
심지어 실제로 모순이 있어 힘들었던 시기도 있긴했었다. 그 때의 모순은 조직 안에서 나 스스로 여러 역할을 할 때 몇 개의 역할에서 각각 해야했던 입장이 서로 상충하여 생긴 모순이었지. 그것이 나를 잡아먹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그 조직을 나올 수 밖에 없었고.
하지만 이건 조금 느낌이 다른데, 스스로 각 시절별 다른 나를 보는 과정에서 나 자신은 그다지 ‘모순’을 느끼진 않는듯 하다. 2012년의 나, 2006년의 나 2018년의 나. 모두 하나를 관통하는 ‘결’이 있으니까. 자격지심이 있어 끝없는 자기 부정을 통해 다음 스텝으로 넘어 왔지만, 결국은 나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생기는 일이라는 것. 나를 지키고 싶은 것. 빠르면 느려지고 느리면 빨라지고 싶어하며 내 속도를 알아가는 일이란 것.
돌이켜보면 내가 속한 환경과 나 자신의 속도나 가고자하는 목적지가 차이가 있을 때 나는 늘 다리가 터져라 뛰기만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2006년의 나는 원하지 않았겠지만, 가끔 뛰지 못하는 나 자신을 원망하며 힘들어 했던 때도 있었고. 간혹 심각한 번아웃이 될 정도로 뛰어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몇 번의 지침과 쓰러짐 덕에 이제는 그런 일을 억지로 쥐려하는 것이 결국은 내가 행복해질 수 없는 일이란 걸 안다. 그건 되려 나를 잃어가는 일일테니까.
남들처럼 되기 위해, 혹은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다양한 속도 속에 몸을 던져보며 살아보았다. 결국은 상황과 환경이 잘못된 것들을 인정하고, 혹은 그것이 나와 다른 거나 맞지 않은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깨달아 가고 있다.
우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만의 속도를 인정해주는 것. 그것이 내가 2018년에 앞으로 인생을 걸어가는 방식임을 덕분에 깨닫는 아침.
목적지가 있다면 단연 ‘행복’이겠지!
물론 궁극의 행복에 닿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나의 속도를 아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니까. 그정도는 ‘그러려니’ 할 수 있을 일이지. 상쾌한 화요일 아침, 천천히 오래가자고 작게 외쳐본다. 사랑하는 나의 파편들에게.
Written by 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