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 될 때』
유난히 바깥에서 맛있는 것을 먹고 마시고 (방탈출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정신없이 보내던 12월이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책이 진도가 안 나갔다. 바빠서 책도 잘 못 읽겠는데, 왜 누군가가 사막에서 거미를 만나는 이야기를 읽고 있나, 몰입이 되지 않았다. 그가 인용하는 영미 작가와 작품들에 대해 무지하므로 공감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 책의 문장이 그리 아름답다던데, 이 또한 번역의 한계로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의사로서의 삶을 선택하는 부분부터 조금씩 이야기가 재미있어졌다. 삶과 죽음을 나란히 놓았을 때 나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90퍼센트 정도는 삶을 추구'해야 한다'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뇌 수술을 앞둔 환자와의 대화를 보면서 ‘삶의 의미’를 조금 더 생생하게 고민해 볼 수 있었다. 이 종양을 치료한다면 기대 수명은 늘어나겠지만, 부작용 내지는 수술상 실수로 인해 영원히 남의 말을 이해할 수도, 남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밖에 말할 수 없게 된대도 과연 삶을 추구하는 게 맞을까? 너무나 사랑스럽던 내 아이가 수술 이후 욕망을 통제할 수 없어 난폭하고 이해 불가능한 아이로 변해버렸을 때, 난 그래도 수술하길 잘했다고 생각할까? 단순하고 납작했던 내 생각의 폭이 조금은 넓어지는 경험이었다.
작가 자신이 말기 암에 걸려 직접 자신의 연명과 죽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부분부터는 생각으로 머리가 부푸는 듯했다.
* 연명을 최우선으로 모든 치료를 다 하면 10년 이상 살 수도 있지만, 판단과 손이 무뎌져 내가 평생 꿈꾸었던 신경외과 의사로서의 삶은 지속할 수 없다면 어떡해야 할까? (사람들에게 직업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언제 죽을지 모르더라도 어쨌든 내 삶에 의미가 있는 성취를 먼저 추구해야 할까, 모든 것을 버리고 요양에 집중해야 할까?
* 내 기대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고, 내게 암 인자도 있는 상황에서, 남겨질 아내(혹은 남편)를 위해 우리는 아기를 가져야 할까? 아니면 말아야 할까?
* 나의 죽음에 대해 충분히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가족들을 위해, 스스로 숨 쉴 수도 없는 내가 기계의 도움이라도 받아서 생명을 연장해야 할까? 등등.
내가 말기 암에 걸렸다면 아마 무조건 직장을 그만두고 산골에 가서 살든 세계여행을 가든,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 같았다. 그래서 말기암 환자인 폴에게 레지던트 수련 복귀를 전제하거나 염두하는 의사의 말이 허황하고 위선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로 폴은 항암치료를 마치고 그 힘든 레지던트 생활에 복귀해 또다시 삶을 갈아 넣으며 자신의 능력을 발휘했다. (솔직히 조금은, 충분히 쉬고 회복했으면 좋았을 텐데 생각하기도 했지만.) 삶에서 의미 있는 것을 목숨 걸고 추구하며 더 의미 있는 생을 살다니, 놀라웠다. (재발하는 장면에서 탄식을 멈출 수 없었다)
그리고 하나 더, 아픔과 고통을 이겨내며, 시간을 쪼개서 죽기 직전까지 열심히 글을 쓴 그의 시간의 무게를 떠올렸다. 한 줄 한 줄 귀한 책이었다. ‘습관적으로 속독을 하지만, 이 책만은 도저히 빨리 읽을 수 없었다’라는 책 뒤편 추천사와 달리, 나는 그야말로 참을 수 없도록 가볍게 이 책을 읽었기에 책 속에 담긴 성찰과 삶의 무게에 잘 공감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읽는 독자가 ‘딴생각’을 해야 그 글이 좋은 글이라는 얘기를 최근 들었는데, 나 또한 이 글(책)을 읽으면서 나에 대입해서 이러저러한 생각과 고민을 한 것 같다. ‘내가 그라면,’하는 생각부터, 지금 나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지금 추구하는 그 많은 것 중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아이는 낳을 것인가? 나는 어느 상황정도까지에서는 삶을 바라고, 어느 이후에는 차라리 죽음을 바라게 될까? 이럴 바에는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죽음이라는 것은 너무도 두려워서, 막상 폴처럼 용기 있게 죽음을 선택할 수 없지 않을까?(이 부분에서는, 정소현 소설가의 <품위 있는 삶> 단편 안에 있는 「품위 있는 삶, 110세 보험」의 내용이 스쳐 지나갔다. 치매에 걸려 의식도 자아도 없는 상태에서 살아가고 싶지 않았던 주인공이 젊은 시절 가입해 둔 ‘치매 안락사 보험’ 때문에, 그때의 기억을 잃은 현재의 노인 주인공이 다가오는 죽음으로부터 필사적으로 벗어나고 싶어 절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폴의 죽음은 의학계에도 문학계에도 너무나 큰 손실이지만, 죽음 앞에서도 어렵고 무거운 사명을 선택해 끝까지 노력하는 모습, 평생 재능이 있었던 문학에서도 죽을힘을 다해 작품을 남겨 성취를 이룬 모습(아내가 자기 없이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길 바라며), 어쩌면 죽음이 더 사무치게 슬퍼질 줄 알면서도 아이를 가지는 모습, 얼마 안에 세상을 떠날 줄 알면서도 호흡 장치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세계의 수많은 사람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는 모습이 놀랍고 감동적이었다. (그의 행보를 지지하고 응원해 주고, 마지막까지 함께 해 준 가족들이 있어 그것이 가능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나에게 남은 게 5년뿐이라면? 난 무엇을 하고 싶은가, 와 같이 극단적인 상황을 상정해 놓고 보면 하고 싶은 게 명쾌할 것 같은데, 막상 삶이 유한하다고 가정을 해 봐도 와닿지 않는 건지, 생각보다 마음이 명쾌해지지 않고, 이런저런 욕심이나 걱정이 안개처럼 껴 있다. 책을 읽고, 그럼 나는 어떤 걸 놓고 어떤 걸 잡아야 하는가 생각해 보아도, 내 미래도 안개가 낀 느낌이다. 나를 명확히 보고, 자신을 갖고, 폴처럼 자신 있게 묵묵하게 그러나 전력을 다해 원하는 것을 추구하고 성취하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
올해는 일단, 머릿속 잡생각과 가벼움과 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나서, 고민하고 생각하고, 폴처럼 멋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읽어보고 싶다. 내 숨결이 바람 될 때, 후회하거나 미안해하지 않도록, 삶을 소중하게 대해주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