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SF 소설이라면 한 트럭도 읽겠어요

앤디 위어의 『프로젝트 헤일메리』

by 정그루

책을 꽤나 많이 읽는 친구가 꽤 자신 있는 끄덕임과 함께 추천한 책이라 장바구니도 거치지 않고 구매했던 책. 그리고 꽤 오랜 기간 책꽂이에 박제되어 있던 책.

그런데, 읽고 나니 너무나도 재미있는 인생 책.

영화가 곧 개봉하므로 서둘러 읽어보시면 좋을 듯한 책,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소개한다.




SF 장르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우주의 '우'자도 사실 관심이 없고, 과학과도 그다지 친하지 못한 문과인 나. 장르가 대놓고 우주인 이 SF 소설과 맞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웬걸. 책 첫 장부터 무시무시한 필력에 빨려 들어간다. 아무 기억이 없는 상태로 낯선 공간에서, 줄이 주렁주렁 달린 채로, 말도 안 통하는 로봇 팔의 감시를 받고 있는 어리바리한 주인공과 로봇팔의 우스운 티키타카와 추격전을 보다 보면, 중간중간 등장하는 살벌한 과학적 설명은 흐린 눈을 하고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갈 수 있게 된다. 주인공의 어이없는 대사와 티키타카를 보다 보면 번역 책을 읽을 때의 어색함과 아쉬움은 찾아볼 수 없다. 충격적인 전개에서 조금 익숙해져 갈 때쯤 또 다른 사건이, 좀 익숙해지려 하면 또 다른 사건이, 이젠 큰일 났다 하면 또 다른 방법이, 이제 다 읽었다 할 때쯤 다른 문제들이 터지면서 책 끝까지 너무나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스포가 되어 말할 수 없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의 등장부터 그 '요소'의 특징까지, 클리셰를 비튼 설정도 재미있고, 주인공과의 케미도 이루 말할 수 없다. 교보문고 책 소개 속 카드뉴스만 가지고 이 책을 판단하면 안 된다. 정말 중요한 요소와 중요한 스토리는 카드뉴스에 거의 담기지도 않았다.


image.png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스틸컷


기억을 모두 잃은 주인공은 자신이 왜 이 허허벌판 우주에 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무슨 임무를 가지고 왔는지도, 자기 이름도. 순간순간 돌아오는 기억 속의 그는 평범한 과학 교사이다. 물론, 그냥 과학 교사는 아니고 세계적인 학자가 될 수도 있었지만 쓴 물을 마시고 교사를 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야기 속에서 누군가는 그에게 말한다. 당신은 학교로 도피를 한 것이라고. 학생들의 추앙을 받으며 살고 싶었던 거라고. 하지만 자신이 지구의 마지막 희망으로서 이 지구에 온 것이고, 자신은 임무를 마치고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는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극심한 고독과 두려움, 자살임무라는 좌절의 상황에서 임무를 성공해서 지구를 구할 때쯤 제자들이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라 상상하며,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살아갈 수 있도록 이 임무를 반드시 성공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누군가에게는 히어로 수준의 과학 천재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재능 낭비이자 도피이겠지만, 그에게는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아이들을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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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 둔 독후감을 참고하면서 다음 챕터를 쓰려고 보니, 이야기 중간에 등장하는 가장 흥미로운 부분을 대형 스포하는 셈이 되어버리는 것을 발견하고, 고민하다 여기까지만 책 소개를 하려고 한다. 히어로가 되어야만 하는 소시민, 왜 히어로가 되어야 했는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기억이 안 나는, 그러나 사람 냄새와 천재 냄새가 나는 주인공이 역경을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 영겁의 고독 속 그를 위로해 줄 '윌슨'은 어떤 존재였는지 알고 싶으시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시길 바란다. 책을 반쯤 읽다가, 매일 조금씩 읽다가 자려고 마음먹었는데, 300페이지 넘은 시점의 밤에 책을 펴 버렸다가 새벽까지 바로 완독을 하고 잠들어 버릴 정도로, 스토리 자체가 흡인력 넘치는 탄탄한 책이다. 초반에 읽다가 멈췄다고? 안 된다. 중반까지는 꼭 읽어야 한다. 중반을 보다 보니 결말이 눈에 뻔하다고? 아니다, 더 봐야 된다. 나는 여러분이 이 책을 읽고 너무나도 재밌었다고 말해주기를 기다리고, 우리가 주인공이었다면 마지막에 어떤 선택을 할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다. 나라면 이 임무를 달성할 수 있었을지, 나라면 어떤 삶을 살기로 결정했을지. 읽고 나면 재미있다는 감정뿐 아니라, 따뜻한 감동과 위로, 희망까지 차오르는 육각형 책이라 생각한다. 영화 예고편에는 대형 스포가 대놓고 나오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책 먼저 읽으시기를 강력 추천한다. 물론 모두 나를 잘 모르시겠지만, 나는 책을 이렇게 강하게 추천하는 편이 아니다. 다 읽었는데 재미없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나랑은 결이 좀 다른 것 같다.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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