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특히 사람 속을 그렇게 잘 아는 편이 아니다. 은근히 무뎌서 꽤나 혼쭐이 나고 나서야 상대의 부적응적 행동 내지는 악의를 깨달을 때도 있고, 때로는 지나치게 과민하여 상대의 한마디 말이나 작은 행동에 의미를 부여해 의도를 지레짐작할 때도 있다. 그럼 누군가의 속을 보았을 때는 어떤가? 나는 다른 사람들의 속을 보았을 때, ‘나와 다르다’는 생각보다는 ‘옳다’, ‘그르다’라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왜 저렇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왜 필요할 때만 찾는 거지? 왜 다른 사람 기분이 상하게 저렇게 말하지? 저건 옳지 않아. 왜 자신이 저런 대접을 받는데도 그저 웃고 있지? 왜 자신이 선택해 놓고 남 탓만 하지? 저건 좀 이상해. 내 기준 ‘옳지 않은’ 사람을 볼 때, 이해해 줄 수 있는 선 안에 있는 사람은 이해를 하지만(‘나랑 다르구나’가 아니라 ‘이해를 한다’고 생각하는 게 포인트) 그 선을 넘었을 땐 교류를 하지 않거나 실망에 빠져 그 사람 자체를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내가 옳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에 대해서는 존중을 하지 못한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상하다. 요조를 내가 직접 겪었더라면 분명히 ‘옳지 않아서 교류를 하고 싶지도 않은’ 사람의 범주에 들어갔을 텐데, 책을 덮을 때까진 그를 판단하고자 하는 마음 없이 그저 그의 생각과 행동 서술과 같은 편에 서서 따라가게 되었다. 아마도 그의 어릴 적 귀엽고 안쓰러운 모습부터 (자칭) 광대짓을 하며 거짓되게 지내왔던 모습들이 일종의 맥락이 되었던 듯하다. 다 읽고 잘 생각해 보면 결국 행동은 한량이며 뭇사람들을 곤란하게 하면서 우유부단함 때문에 해야 할 것들도 하지 못한 채 살아온 사람이 아닌가, 결국 한심한 남자가 아닌가. 그런데도 묘하게 짠하고 묘하게 안타까운 이 느낌은 뭘까(오직 마담만이 그를 진정 보듬어 준 걸까? 그 포인트도 괜히 짠했다). 누군가는 진짜로 표현하는 게, 행동하는 게, 자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그렇게도 어려울 수 있다는 것, 사람의 어떤 부분은 틀린 게 아니라 그저 나랑 다를 뿐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동안 의뭉스러워 보여서, 답답해서 이해가 가지 않았던 두어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그들이 납작한 사람이 아니라 다양성과 가능성을 가진 사람으로 다시금 보이는 것이다(그렇다고 내가 그들과 엄청 잘 교류할 것 같진 않지만). 어쨌든 요조를 보면서 유약하고 감성이 충만한 사람의 시니컬하고도 유리 같은 영혼을 엿보며 그들의 묘한 매력을 찰나나마 느꼈기에. 그리고 신기하게도 맥락이 주어지자 이해가 가지 않던 행동도 약간은 덜 호되게 판단하게 되었기에. 들어가는 말부터 시니컬했고 기묘했으며 내용 또한 그러해서 흥미롭게 읽은 작품이었고, 그 와중에 일본 문화에 대한 회의 내지는 강한 의문이 들기도 했으나, 어쨌든 나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겠지만) 여기저기 꼬인듯한 화초 같은 주인공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잘도 읽었다(그래도 아마, 내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었다면 나도 그의 깊은 속은 아마 절대 몰랐을 것 같다. 이상한 한량!! 정도로 생각했겠지). 아무튼, 책을 읽고 내가 얻은 점을 생각해 보자면, 내가 가진 옳고 그름 내지는 판단의 틀을 좀 느슨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지 않아도 될 많은 부분을 고려하고 사람의 행동 내면에 있을 고뇌와 사정과 맥락을 조금 더 고려해 보자는 것, 그리고 역시 고전은 고전, 어떤 메시지라도 얻을 수 있을 테니 앞으로도 꾸준히 읽을 것.
** 다자이 오사무의 원 버전(쉼표가 엄청난 요설체)를 느껴 보고 싶으시다면 '소와 나무' 출판사 버전이 그러하다고 하니 참고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