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방탈출을 왜 가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생각하는 '방탈출'에 대해 이야기해 보기로 했다. 역시 글은 자기가 좋아하는 내용을 써야 하나 보다. 평소에도 시도 때도 없이 '방탈출 갈래?'를 남발하는 나(방탈출 미팅까지 기획해 봤다면 믿으시겠는가) 답게 글 또한 술술, 번호까지 매겨가며 쓰고 있다. 글쓰기를 두고 한 숱한 고민이 무색하게.
1. 방탈출이 뭐길래?
방탈출이란 몇 년 전부터 급작스레 생겨 금방 없어질 줄 알았는데 나름 아직까지 성행하고 있는 테마 카페(음료수는 없음)이다. 테마와 스토리가 있는 방 안에서 약 60분간 퀴즈를 풀고, 방을 탈출하고 나면 뿌듯함을 느끼며(탈출 못 하면 아쉬움 또는 분노를 느끼며) 기념사진을 찍고 퇴장하는 곳이다. 어느 집에 잠입해서 원하는 걸 찾고 탈출해야 하는 상황, 잡혀 와서(!) 나쁜 녀석이 돌아오기 전에 얼른 탈출해야 하는 상황부터 시작해서 아마존 탐사, 탄광 탈출, 시간 여행 등 다양한 상황과 장소와 이야기가 있다.
방탈출을 해 본 사람들 중에서는 1인당 2만 원에서 3만 원까지도 하는 꽤 비싼 금액을 내고 고작 한 시간 동안, 게다가 스스로 방에 갇혀 문제를 풀다니? 하고 방탈출 자체에 회의를 가진 사람도 있고, 조금 재밌긴 하지만 가성비 최악인 놀잇거리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나같이 중독이 된 사람도 많다.
2. 당신이 방탈출에서 실망했던 이유
- 일단 방탈출 카페를 잘 골라야 한다. 방탈출을 하게 된 초반에는 잘 모르고 아무 곳에나 가서 방탈출을 시도했는데, 방도 작고 인테리어도 별로인데 스토리 연관도 없고 문제까지 엉망인 곳에서 화룡점정으로 탈출까지 하지 못하자 엄청난 허탈감+분노+원망+돈 아까운 감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별로든 재밌는 곳이든 기본 2만 원은 넘게 써야 하니까 잘 알아보고 가야 한다.
- 친한 사람 또는 문제를 잘 푸는 사람과 가길 추천. 친한 사람이랑 가길 추천하는 이유는 문제가 잘 안 풀렸을 때도 하하하 웃으면서 추억거리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아서이다(문제가 잘 안 풀릴 때 인터폰으로 최대한 힌트를 짜 내는 구질구질한 모습을 보여줘야 할 수도, 춤을 춰서 힌트를 얻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어보신 분은 없지만, 이 포인트에서 내가 기획한 방탈출 미팅은 대실패였다. 두 번째로 같이 가길 추천하는 사람은 바로 잘 푸는 사람. 부연할 것도 없다. 방탈출은 탈출을 해야 재밌기 때문이다! 방탈출의 퀴즈는 수리 퀴즈, 추리나 논리 퀴즈, 시각적 퀴즈 등 다양한데, 퀴즈가 나올 때마다 누군가가 착착 풀어낼 때의 그 쾌감이란! 가장 좋은 건 친한데 문제도 잘 푸는 사람이랑 가는 것인데, 사실상 그게 어려우므로 둘 중 하나만 충족해도 재미있게 다녀오도록 하자. 탈출 확률을 높이려면 인원수를 늘려서 가는 방법도 있다. 누군가는 풀어 주겠지….
3. 방탈출의 효능/위험성
- 짧은 시간에 큰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다양한 장소를 재현해 놓은 방에서 직접 움직이고, 찾고, 푸는 재미가 쏠쏠하다. 방탈출 카페마다 테마마다 테마를 방에 구현한 정도가 다르긴 하지만, 안대를 쓰고 입장해 새로운 방에서 눈을 뜨며 몰입감을 느끼게 도와준다. 그리고 방마다 단순 퀴즈가 많은 곳도 있고, 직접 무언가를 누르거나 밟아서 문제를 푸는 곳도 있다. 신기한 장치가 있는 곳도 많다. 그래서 탈출하고 나면 '비쌀 만하다'라고 납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내가 가고 나면 내가 파헤친 방을 다시 처음처럼 세팅해야 하는 수고로움도 같이 떠오르므로. 탈출을 하고 나서 즐거움에 가득 차 기념사진을 찍고 나면 마음 한 곳이 헛헛해지거나 다음에 또 해보고 싶은 작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나와 친구는 그래서 하루에 두 군데씩 탈출을 하기도 한다.). 텅장(텅 빈 통장)을 조심해야 한다.
- 같이 간 사람과, 같이 간 사람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같이 낯선 공간에 들어와서 탈출을 위해 이것저것 만지고 푸는 과정 속에 친밀감이 쌓이기도 하고, 탈출을 하고 나서 인상 깊었던 내용에 대해 두고두고 회자하기도 한다. 공통의 작고 짧은 추억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또, 같이 간 사람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하기도 한다. 문제를 풀기 위해 적극적으로 돌아다니는 모습, 내가 풀지 못하는 퀴즈를 멋지게 푸는 모습 등 같이 간 사람들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도 작은 재미이다. 물론 씁쓸한 기억도 있다. 만나기로 한 지 얼마 안 된 사람과 방탈출에 같이 갔을 때 느꼈던 답답함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60분 중 40분 넘게 한 개의 방에서 낑낑대다 더 크고 더 많은 문제가 넘치는 두 번째 방을 발견한 절망 속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한 개라도 더 풀겠다고 발악하는 나와 어차피 못 나간다며 냉소적인 태도로 체념하던 사람. 나중에 이때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그때 진작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쓰다 보니 씁쓸한 추억이 다소 길어졌지만, 저 날과 방탈출 미팅, 그리고 심하게 불친절했던 한 군데의 테마를 갔을 때 빼고는 모든 방탈출이 즐거웠다. 탈출할 때도 탈출하지 못할 때도 많았지만, 친구와 방 안에 같이 있는 상황 자체가 웃기고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4. 추천 대상
- 문제 푸는 것을 좋아하거나, 평소 게임을 좋아하거나, 익스트림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나의 경우는 게임을 좋아하기도 하고, 테마를 잘 구현해 놓은 방에서 스토리에 따라 문제를 푸는 것이 정말 재미있다. 문제를 잘 풀진 못하지만, 방 이곳저곳을 수색하며 풀어야 할 문제를 찾고, 힌트를 찾고, 물건을 찾는 역할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친구들이 풀어 준 암호를 가지고 자물쇠나 금고에 입력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추천 대상의 마지막 부분(익스트림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은 근거가 부족하긴 하지만, 뭔가 활동적이고 흥미로운 걸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것보다 방탈출이 훨씬 즐거울 것 같아서 넣어 보았다.
- 방탈출을 아직 안 해 본 사람에게 추천한다. 왜냐면, 지금까지 열심히 이 긴 글을 다 읽었기 때문이고, 그러니 직접 가 봐야 재미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별 것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는 건 진짜 재미있을 수도 있는 것이므로, 한 번쯤 가 보고 어땠는지 댓글을 달아주셨으면 좋겠다('올로의 취미 백서'를 통해 나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다양한 취미를 '일단' 해 보길 바라고 있다). 친구, 친척, 연인 누구와 가도 재미있을 것이다. 아마도….
5. 추천 카페와 테마
가 본 곳 중심으로 몇 군데만 추천해 보겠다.
- 키이스케이프: 최근에 생긴 방탈출 카페로 감성 넘치는 인테리어가 인상 깊었던 곳이다. 나는 강남에 있는 키이스케이프만 가 봤는데, 인테리어도 괜찮고 문제도 괜찮고 스토리도 괜찮았다. 꾸준히 악플을 달던 악플러가 경고를 무시했다가 탄광에 끌려가는 내용이 담긴 '그카지말라캤자나ㅋ' 테마가 내 인생 테마이다. 인테리어가 아주 아주 마음에 들고, 장치도 신박했으며 문제들도 괜찮았다. 기타 '살랑살랑 연구소'는 난이도는 크게 어렵지 않은 편이었고, 억지 문제가 없었고 흥미로웠다.
-서울 이스케이프 룸: '방탈출' 하면 여기가 최고라고 생각했던 곳이다. 강남, 홍대, 인천 부평 등 다양한 지점이 있고 지점마다 체험할 수 있는 테마가 다르다. 홍대역에 있는 곳 중에 한 곳에 가면 아마존을 재현해 놓은 테마, CIA 본부, 베니스 저택 등 스케일이 꽤 큰 테마를 해 볼 수 있다. 문제 스타일이 퀴즈들이 많은 편이 아니고 특정 표식들을 대응해서 푸는 부분이 많은 느낌이라고 친구들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나는 인테리어 때문에 좋아하는 곳이다. 강남에 있는 '응답하라 1988'테마는 쉽지만 테마가 뭔가 따뜻해서 추천하고 싶다. 강남에 새로운 테마(주차장, 엘리베이터, 고문실 등)를 열었는데 아직 못 가봤다. 조만간 가 봐야지.
-코드 케이: 방탈출 덕후 친구에게 추천받았던 곳이다. 강남점은 강남 9번 출구 대로변에서 한 블록 뒤에 있다. 대기실이 꽤나 넓고 방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가서 음료수랑 과자를 먹고 보드게임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60분에 2만 원 돈이 날아가는 슬픔을 조금 어루만질 수 있는 곳이다. 세 개의 테마를 해 봤는데 두 테마는 방이 좁고 평범한 편이었고, '거울의 방' 테마는 독보적으로 무섭고 신박했다. 무서운 테마 싫어하는 데 별로 안 무섭겠지 하고 갔다가 발을 너무 동동 굴러서 종아리가 아팠다. 그래도 여기서 해 본 테마 중에선 제일 재밌었다. 추가로 이순신 관련 테마를 하고 오면 나라 사랑이 가득 찬다는 후문이 있는데 아직 못 가봤다. 문제는 방마다 다르겠지만 수학적인 퀴즈나 논리 퀴즈 등 진짜 '퀴즈'가 많이 있는 편이라고 느꼈다.
6. 가기 전 참고할 만한 것들
- 방탈출 덕후들은 도처에 있다. 가고 싶은 테마가 생겼다면 인터넷에 테마 이름을 쳐 보면 후기가 이것저것 많이 뜨니 참고해 보고 가면 된다. 친구가 알려 줬던 곳 중에 유익했던 곳의 링크를 첨부한다. 방탈출 대가가 쓴 방탈출 순위표로, 이 표를 알게 된 이후에는 방탈출하러 어디 가야 하나 고민될 때마다 여기 랭킹을 참고해서 간다. 도움이 많이 되었지만 어쨌든 모든 테마는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르니 참고 정도만 하면 좋을 듯하다.
https://blog.naver.com/sangeplus/221236954761
- 방탈출이 뭔지 감이 잘 안 잡힌다면, 방탈출 게임을 해 보고 가도 좋다. 내가 실제로 그렇게 했다. 가서 문제를 푸는 데 직접적인 도움은 되지 않지만, 방탈출의 느낌과 퀴즈 유형들을 몇 가지라도 경험하고 간다는 데 의의가 있었다.
* Escape the ghost town 시리즈 - 무료 게임으로 무난하고 재미있게 해 볼 수 있다. 각종 퍼즐이 많다.
* Rusty Lake 시리즈 - 처음엔 다소 기괴해서 심적 장벽이 있었지만 막상 쭉 플레이 해 보니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개인적으로 Case23과 Birthday, Four Seasons를 먼저 플레이하길 추천한다.
* 더 룸 시리즈 - 고퀄리티 3D 영상으로 직접 장치를
돌리고 보는 등 신박한 게임. 나는 머리가 아파서 다 해 보진 않았다.
* All New 방탈출 시리즈 - 방탈출 게임에 대해 알고 처음 다운로드하였던 게임인데 나름 해 볼만 하다.
순간의 유행으로 끝날 줄 알았던 방탈출 카페가 인테리어와 스토리, 문제들에 신경을 쓰면서 점점 발전하고 있다. 재미있다는 테마들을 하나하나 가 보기 전까지 부디 유행이 계속되길. 그나저나 나는 언제까지 방탈출하러 다닐 수 있을까? 언제까지 탈출을 하고 싶을까? 궁금해지는 낮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