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과 공간의 범위가 팽창한 귀중한 경험
일단 지르거나 남에게 이야기해 놔야 그걸 실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렇다.
남편 살던 곳에 가 보고 싶다는 명분과 함께 가족과 지인들에게 여행을 간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물론 진짜로 여행을 갈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면서.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여행이 주변 사람들에게 기정사실화 되었다. 우리도 비로소 현실로 다가온 여행을 실감하고 받아들였다. 야호! 드디어, 진짜, 캐나다 여행을 가게 되었다.
여행 전부터 머릿속에서 도깨비 BGM을 들으면서 도깨비 언덕에 앉아 여유를 즐겼다. 시공간을 이동하는 도깨비 문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광활한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우의를 쓴 채 물을 맞으며 놀라 소리 지르고,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네 시간 동안 미술관을 실컷 누비기까지. 상상은 달콤했다.
다만 달콤한 망상을 현실로 실현하려니 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하는 일정을 짜고 말았다. 남편 살던 곳은 서부고, 내가 가고 싶은 곳들은 죄다 동부였기에.
‘서부 밴쿠버와 밴프국립공원을 보고 미국 동부 뉴욕으로 가서 며칠 놀고, 그리곤 다시 캐나다 동부 나이아가라 폭포부터 퀘벡까지 도시들을 경유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여행사 여행 싫어하는 사람이 만든, 여행사보다 더 여행사 같은 스케줄이 준비됐다. 설레는 마음으로 남편에게 여행 일정을 말했다.
눈물과 분노와 실망의 시간들은 상술하지 않도록 하겠다.
여행을 그냥 가지 말자는 말도 오갔고
캐나다 서부만 갈 바엔 재미가 없어서 안 가고 싶다는 진심도 튀어나왔으며
차라리 유럽 여행을 가자고 하는 사심도 튀어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그럼에도 여행 다녀온 것이 기적이고 감사할 일이다. 아직도 와닿지 않은 미대륙의
규모를 최대한 설명해 준 남편과 그 말을 들은 내가 참 고맙다. 덕분에 충만했고 충실하고 여유 있는 시간이었다. 4년 만에 밴쿠버에 가는 남편에게 3일만 자유시간을 주겠다는 고행의 계획을 실행했다면 인성 논란이 생겼을 것은 물론이고 지금쯤에는 그와 다른 공간에 거주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내 여행 위시리스트에 없었던 캐나다, 그중에서도 가고 싶은 곳이 딱히 없었던 그 서부에서 새로운 도시를 한껏 경험하며 경험의 크게 넓어졌고
열두 시간 로드트립을 하며 하늘까지 닿을 것만 같은 산 병풍을 만나고,
빙하 위를 걸으며 빙하 녹은 물을 맛보고,
말 그대로 파란색, 하늘색, 에메랄드색으로 눈이 시린 호수를 보고
비버 꼬리와 엄마 버거, 갈비 스테이크, 치킨과 와플을 먹었고,
캐리어를 하나 추가해 가득 담아 돌아올 정도로 많은 물건들을 샀다.
해외여행을 다닐 땐 당연하지만 항상 외부인으로서 관광을 했는데 이번 여행은 이전의 여행과는 성질도 느낌도 사뭇 달랐다. 3주 동안만큼은, 나름 캐나다인으로서(정확하게는 캐나다인 ‘들과’ 이지만) 여행하고 왔다고 생각하며 과감하게 브런치북 이름을 지어 보았다.
어느 여행에서보다 더 많은 생각과 경험과 풍경과 추억을 남겨왔기에
이제 글과 사진으로 그 추억을 남겨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