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한껏 샘이 났다 - 로키포인트 공원 & 벨카라 공원
미국에서 일하는 그의 영혼의 단짝이 그를 만나러 1,400km를 자동차를 타고 오기로 했다. 매드맥스 맞먹는 무지막지함이 아닐 수 없었다. 둘의 상봉과 라운딩을 응원하면서 나는 삼촌, 숙모와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알고 보니 삼촌은 가이드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계셨다. 여러 장소를 보여주어야겠다는 사명감, 만족하는 모습을 보는 설렘, 목표한 곳을 다 볼 때까지 멈추지 않는 기동력까지. 덕분에 ‘밴쿠버 왔는데 여기 안 보고 가면 되겠냐?’라고 하셨던 곳 중 두 군데나 하루에 보고 왔다. 이날도 캐나다의 자연환경에 한 바가지 샘이 났다.
이곳은 진작부터 꼭 가봐야 한다고 추천을 받았던 곳인데 '작은 해프닝'으로 가지 못했다. 이번 관광의 첫 번째 코스로 낙점. 차로 공원 주차장에 들어서자마자 휴양하는 기분을 한껏 느꼈지만 안타깝게도 주차장에 자리가 하나도 없었다. 어쩌겠는가. 결국 삼촌은 나를 입구 쪽에 내려주신 후 차를 가지고 어딘가로 떠나셨다. 충분히 구경하고 연락 달라는 말씀을 남기고. 이럴 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여유 있게 공원을 구경해도 좋을 텐데, 나는 다른 사람의 감사한 진심을 잘 못 받아들이고 혼자 상대의 불편함을 과대평가하면서 초조해하는 안타까운 성질이 있다.
눈앞에 보이는 나무로 된 잔교를 빠르게 걸었다. 아름다운 풍경과 넘치는 여유에 초조한 마음조차 녹아버렸다. 한가로이 정박해 있는 요트, 편안하게 의자에 앉아 풍경을 즐기는 사람, 산책하는 사람,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 날은 또 어찌나 좋은지. 나도 빈 의자에 앉아서 두어 시간 정도 비타민 합성도 하고 넋 놓고 물 구경을 하고 싶었지만, 잔교 끝까지 걷고 미련 없이 뒤를 돌아 삼촌께 전화를 걸었다. 내가 언젠가 밴쿠버에서 더 오래 지낼 수 있다면, 이곳은 더 긴 시간을 할애해 즐기고 싶다고 생각했다. 바비큐도 하고, 산책도 하고, 카약도 타고 말이다. 근처에는 유명한 맥주 양조장이 많으므로 수제 맥주를 실컷 사서 곁들일 수도 있겠다.
삼촌과 절묘한 타이밍으로 접선에 성공한 후 다음 장소로 떠났다. 떠나는 길에 넓은 잔디에서 사람들이 친구들과 앉아 한적한 오후를 보내며 노래를 듣는 걸 봤다. 참으로 풍요로운 모습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집 주변에 놓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놀 수 있다면, 크게 더 바랄 게 없지 않을까? 이러니까 사람들이 여유로운가?
** 갯벌이 있다는 건 아이들 입장에서는 놀이터가 생기는 거지만 풍경을 보러 간 입장에서는 황량한 펄을 보는 타이밍이 있다는 소리.
'지난 해프닝'이야기는 여기에 - 비 오는 날 내비게이션 없이 공원 찾아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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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느끼는 거지만 캐나다에는 울창한 원시림이 참 많고 또 삼촌은 차를 빠르게 잘 운전하신다. 원시림이 우거진 곳에 우리의 원래 목적지 ‘번츤 레이크(Buntzen Lake)’가 있었다. 삼촌의 ‘밴쿠버 왔으면 꼭 가봐야 할 곳’ 중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곳임은 삼촌의 목소리가 십분 말해주고 있었다. 아름다운 강도 보고 산책도 하고. 기대가 됐다. 그런데 주차장으로 올라가야 하는 그 길을 누군가 통제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예약을 했냐고 물었다.
기존에 예약 안 하고 잘 다니시던 곳이라는데. 성수기에는 예약제를 도입했다고 한다. 차를 옆으로 잠시 옮기시라고 말씀드리면서 바로 예약하려고 사이트에 들어갔으나 오늘의 표는 매진. 아쉬움이 우리를 스쳐 가는 것도 잠시, 삼촌께서 짧은 깨달음의 외침과 함께 다시 어딘가로 쏜살같이 운전을 시작하셨다. 그리고 우리는 아주 많이 멀지는 않은 ‘벨카라 공원’에 도착했다.
주차장부터 수영복 복장인 사람들과 패들 보트에 신나게 바람을 넣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주 익숙한 풍경이다. 그들을 옆으로 하고 공원으로 걸어갔다. 저 멀리 바다가 보였고 바다까지 가는 길에 잔디 들판이 있었다. 캐나다구스는 여유롭게 머리를 왔다 갔다 춤을 추며 단체로 놀고 있었고, 저 멀리 바닷가에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그동안 봤던 물들보다 이끼가 꽤 잘 보이는 곳이었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 가 보니, 게잡이를 하고 있었다. 정말 신기했다. 자그마한 게였다. 한 입 거리 같은데 잡아서 어떻게 요리해 먹을지 궁금했다. 어떤 사람은 게를 잡으려고 귀한 닭다리를 미끼로 쓰고 있었다. 나 같으면 게 안 잡고 닭을 튀겨먹을 텐데, 생각하며 신난 아이들의 목소리를 노래 삼아 공원 안에 스스로를 녹였다. 역시나 평화롭고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일과 스트레스에 치여 살던 나의 불과 몇 주 전의 번뇌와 고통이 싹 사라지는 듯한 평온함. 행복이 별 게 있나 싶었다. 생각보다 나 자연을 좋아할지도.
먼 바닷가에는 배 몇 척이 평화롭게 돌아다니고, 가까운 바닷가에는 사람들이 패들 보트를 타거나 고무보트를 타며 유유자적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노부부가 평화롭게 고무보트에 앉아 노를 젓는 모습이 퍽 좋아 보였다. 저런 건 얼마나 하나? 어느 브랜드가 좋으려나? 하나 정도는 사놔도 좋겠다, 고 삼촌께서 말씀하셨다. 다음 기회에 캐나다에 오게 되면 그 보트를 빌려서 드디어 물속에 들어가서 놀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두 군데를 구경하고 나니 시간이 꽤 많이 흘렀다. 이 날도 어쩐지 햄버거가 먹고 싶어서 A&W에 방문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A & W에서 맛있게 먹은 그 버거 이름이 기억이 안 나는 상태여서, 나는 자신 있게 지난번 먹은 버거를 주문했다가 처음 보는 요상한 버거를 먹게 되었다. 맛이 아주 별로였던 건 아니지만, 기대한 모차렐라가 안 들어있으니, 실망감에 원래 맛만큼 맛을 못 느꼈을 거다.
평소 삼촌 기동력이라면 한 군데 더 갔을 수도 있지만, 이날은 삼촌과 조카가 같이 테니스를 치는 날이라고 했다. 도시 곳곳에 깔끔한 테니스장이 꽤 많았다. 물론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재미있게 테니스를 치고, 다른 사람이 와서 기다리면 적당히 치다가 자리를 양보해 주면서 평화롭고 여유롭게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삼촌은 능숙한 솜씨와 교수 능력으로 아들의 자세를 지도해 주셨다.
여가로 끝내주는 바다에서 놀고, 바비큐와 맥주를 먹고, 친구와 춤추고 수영하고 테니스를 치는 삶. 누군가는 이 삶을 지루하다고 할까? 내가 생각하기에는 최고인데. 한국처럼 놀거리나 대형 카페는 많지 않지만, 어찌 보면 그런 게 따로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삼촌께서 한국에 계시다가 다시 캐나다로 돌아오셨구나, 납득이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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