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시킨 건 해물파전인데요
광활하고 아름다운 자연, 여유가 있는 멋진 나라 캐나다. 아직도 못 가본 곳이 많아 아쉬움이 남고, 언젠가 꼭 다시 가고 싶은 나라.
집 가까운 곳에서 맛있는 것을 사 먹고 카페에 갔다 돌아와 글을 쓰는 지금, 나는 한국에서 살고 있음에 큰 만족과 일종의 안도를 느낀다. 캐나다의 좋은 기억이 강렬한 만큼 집에 돌아가고 싶다 생각했던 순간 또한 기억 속에 깊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연재 중반을 맞아, 캐나다에서 ‘나 돌아갈래~~’를 외치던 순간을 떠올려본다.
가볍게 밥은 먹어야겠고 메뉴는 생각이 안 나서(정확히 말하면 메뉴 잘못 골랐다가 또 한 끼에 10만 원 쓸까 봐) 한식당을 찾았다. 간단하게 떡볶이나 먹어야지, 생각했는데.
엽기떡볶이 먹는 것도 아니고, 자존심 상해서 주문할 수 없었다. 그럼 다른 메뉴를 찾아 볼까.
짬뽕 당긴다.
흑백요리사에 나온 요리사네 식당도 아니면서. 탈락.
돌…. 짜장…?
뭘 어떻게 어떤 돌에다가 짜장을 부어주는지는 모르겠지만 짜장이라는 말과 사만 원은 어울리지 않는다.
탈락.
결국 메뉴판을 한참 구경하다 만 원 언저리 대 비빔밥을 시켰다.
비빔밥이 맛있었냐고?
솔직히 비빔밥은 참기름만 끝내주는 것 들어가도 맛있을 수 있는데. 그런 참기름이 여기에 있기를 기대하는 것도 웃기다. 물론 그렇다고 남길 정도였던 건 아니고.
그냥…
그 돈이면…
하는 아쉬움이 나왔다는 것이다(해외에서 파는 우리나라 음식에 한껏 인색하고 까탈스러워진 모습). 그는 제육볶음, 친구도 적당한 냉면을 고르고(맛있었냐고요? 알려드려야 아시겠어요? 하하), 그래도 이 정도 주문까지면 외식비 선방했다고 생각했더니, 돈 아까워 보였던 해물파전도 같이 시키자는 그.
원망은 그에게 돌리고 해물파전의 야들야들한 파와 부들부들한 해물을 입에 한껏 먹고 싶은 욕심에 불퉁한 설렘을 가지고 기다렸는데, 역시. 이곳은 나의 기대를 모두 저버린 점에서는 매우 신선한 곳이었다. 그리고 그 화룡점정은 해물파전이었다. 이곳의 해물파전은 해물파전이 아니었다. 굳이 명명하자면 맛살밀가루지지미(?)였다. 결국 한식당의 탈을 쓴 묘한 식당에서도 10만 원 넘게 식사비를 지출하게 되었다.
씁쓸하게 밥을 먹으면서 '우리 엄마가 캐나다에서 한식집을 차리면 대박 나겠다', 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실현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고, 포기했다. 하긴 한식은 손이 많이 가서 이렇게 타국에서 판매하는데 돈을 많이 받을 만하지, 가게의 입장을 이해해보려 한다…, 그래도 메뉴 중에 가격 나쁘지 않은 게 있잖아…, 쌀국수도 원래 현지는 싼데 외국은 비싸잖아….
… 아니 그래도 그렇지…
팁도 받을 거잖아….
와 같은 내면의 혼란을 반복하며,
텁텁해진 입맛을 다시며 가게를 나섰다.
그래도 가게에 있는 외국인들의 표정은 밝았다.
캐나다에 왔으면 캐나다 법을 따라야지. 나도 그 정도 매너는 있는 사람이다.
다만 이곳에서는 계산하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팁을 만나게 되고, 팁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최종 영수증을 받고 놀라게 되는 일이 많았다. 놀라는 건 내가 어떻게 숨기거나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팁을 내는 데 매우 관대한 그에게 묻자, 보통 음식 값의 20퍼센트 정도는 팁으로 줘야 한다고 했다.
팁의 나라답게 계산할 때 카드 리더기를 들고 오든 매장에서 카드를 내고 나든, 액정에는 얼마만큼 팁을 할 거냐고 묻는 창이 친절하게 나온다. 큼지막한 화면에는 두세 개 정도의 네모 박스가 있고, 그중에 하나를 보통 누르게 된다. 가장 큰 네모에는 보통 15~20%가 쓰여 있고, 나머지 칸에는 25%나, 아까 안 나왔던 15% 또는 20% 중 하나가 마저 쓰여 있다. 사실 그 화면에서 당황하지 않고 아주 조그만 버튼을 찾으면, 내가 직접 원하는 팁 퍼센트를 입력할 수 있다. 가령 5~10% 정도(0이라고 입력하면 0이 되긴 하겠지만)?
여행하면서 여러 캐나다인들이 계산하는 걸 지켜보았는데(100% 한국계 캐나다인) 보통 서버들에게는 20퍼센트, 적어도 15퍼센트 정도는 주는 것 같고, 그냥 가게에서 무언갈 간단히 계산하거나 할 때는 직접 입력 버튼으로 팁을 적게 주는 것도 몇 번 봤다. 나 또한 팁이 그리 부담되었다면 가끔은 조금 적게 팁을 주었어도 좋았겠지만. 문제는 나에게 서비스를 제공한 사람이 바로 옆에 있는 상황에서 내가 팁을 눌러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시선에 민감하고 타인의 시선을 중시하는 나로서는 나의 실속을 차리고 적정한(?) 팁을 입력하기란 어려운 것이었다. '너 나 팁 얼마 줄거야? 내가 그렇게 형편없었어?'라고 외칠것만 같은 기분. '역시 동양인들이란 팁에 인색해'라고 생각할 것만 같은 생각. 그래서 결국 넉넉한 팁을 클릭하고 지출을 늘렸다. 분명히 오늘은 밥값이 좀 괜찮네, 하던 날에도 총액을 보면 눈이 튀어나왔다.
그럴 때 나는 팁을 달라고 하지도 않으며 주지 않아도 되는 우리나라 가게가 그리워졌다. 물론 우리나라 사장님들과 서비스업 종사자들에 대한 고마움이나 걱정도 들었고(어떻게 그 합리적인 가격에 모든 서비스와 음식을 제공해 주시는 거죠). 노동에 대한 대가를 고용주가 아닌 손님들이 내고 있고 모두가 그것을 합의한 이 상황이 이곳에서는 보통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물론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불만은 많다고). 그리고 팁을 모두 서버나 계산원에게 주는지도 궁금했다(가게마다 점원 모두가 나눠 가질 수도 있다고). 물론 환대와 끝내주는 서비스를 해 준 스테이크집 서버에게는 25퍼센트의 팁을 줘도 아까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한국이 다른 많은 나라에 비해 자영업 하는 사람의 수가 많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 때문인지 서비스가 좋고 맛있는 곳이 얼마나 많은가. 9천 원이면 뜨끈한 국밥에 밥을 말아 영혼을 채울 수 있고 마음 먹으면 0천 원~2만 원 내에서도 먹을 수 있는 선택지가 매우 많다. 한국인들은 디저트를 팔면 디저트 원산지보다 더 ‘알잘딱깔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게 센스 있게)’으로 맛있고 예쁘고 소중한 K-디저트를 만들어내 버린다. 진한 땅콩 크림과 밀도 있는 크림이 조화로운 너티라테를 비싸지 않은 가격에 쪼르릅 먹을 수 있는 한국이 좋다.
더 어렸을 때 여행을 갔을 때는 4주 동안 외국에 나가 있어도 한국 음식 한 번 안 찾았는데. 연락과 숙소의 불편함, 맛없는 음식마저도 낭만으로 느끼고 한국에 돌아오고 싶지 않아 했는데. 언제부턴가 여행의 중반만 지나가도 캐리어에 컵라면을 더 담아 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불편한 잠자리가 신경 쓰이고, 집에 슬슬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도 그렇게 한식이 그립고 편안한 집이 그리운 순간이 몇 번 세게 찾아왔고, 특히 이 글에 쓴 부분처럼 가성비가 맞지 않는 지출에 민감해져 더더욱 한국을 그리워했다. 즉 한식을 갈망하지만 막상 한식을 먹으면 한국에서의 한식 가격과 맛을 그리워하며 실망하는, 결국 한국의 갈망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이었다.
그리던 고국에 돌아와 그렇게 그리던 맛있는 한식을 싸게 먹고(팁도 내지 않고) 맛있는 후식과 디저트를 먹으면서도, 한 2~3년쯤 지나면 또 외국에서의 낯설고 불편한 경험이 사무치게 그리울 것이다. 그 때가 되어 또 잠시 현실을 잊고 마음껏 즐기고, 한식만큼은 웬만하면 밖에서 먹지 않도록 노력하며, 팁 때문에 집에 가고 싶지 않게 느끼도록 여행자금을 좀 모아놔야 할텐데. 한국엔 또 싸고 좋은 물건이 얼마나 많은지 어쩐지 한국에 와서도 지갑이 술술 새는 기분이다. 어쨌든 지금은 한국의 소중함을 잊지 않은 신선한(?) 마음상태. 그런 의미에서 얼른 라면 하나 달걀 하나 넣고 폭 끓여서 열무김치 갓김치를 듬뿍 꺼내서 호로록 싸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