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비 메트로타운에서의 캐나다 기념품 하울
이번 캐나다 여행에서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혼자의 시간. 두세 시간 정도의 자유시간에 나는 버나비에 있는 메트로타운에 갔다. 그가 학창 시절 땡땡이를 치면 가곤 했다는 추억의 장소. 예전에 유튜브로 열심히 설명하면서 보여줄 때는 귓등으로도 안 들었던 곳인데 막상 유튜브로 보던 추억에 장소에 왔다고 생각하니 들뜨고 신기했다. 의도치 않게 메트로타운에 총 네 번 정도는 가게 되면서 조금은 지리가 익숙해졌지만, 규모가 엄청나게 큰 곳이라 실제로 같은 곳을 뺑뺑 돌거나 출구를 몰라 맘속으로 울기도 했다. 특히 저녁에는 여기저기 출입구를 막는 통에 농담이 아니라 진심 방탈출하는 심정으로 원하는 장소에 가고 밖으로 나오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써야 했다. 밤에는 한두 개 마트를 빼고 모든 가게가 닫아 재미도 없고 출입구도 닫을 뿐 아니라 메트로타운 바깥 주변에 인적도 드물어지니 가급적 햇빛 쨍쨍한 낮에 방문하면 좋을 곳이다. 그루의 몇 시간의 행적을 여러분께도 소개한다.
지난번 그의 친구들과 차를 타고 가다가 보라색 공장을 본 적이 있다. 그때 친구가 저곳이 캐나다에서 사 갈 만한 초콜릿 가게라고 말해주었는데 메트로타운에 진입하자마자 바로 같은 가게를 발견한 것이다.
이건 거의 운명이라고 봐야 했다.
매장은 작은 편이었지만 여기저기 초콜릿 제품이 빼곡했다. 친절한 점원은 아무것도 모르고 방문한 나를 위해 친절하게 이것저것 설명을 해 주었다.
이 가게의 시그니처는 귀여운 고슴도치 초콜릿이고, 안에는 헤이즐넛이 들어있다고 했다. (난 견과류 헤이즐넛이 들어있다고 착각했는데 헤이즐넛 반죽(?)이었다.. 흑흑). 큰 고슴도치, 작은 고슴도치가 있고 무설탕 고슴도치도 있었다. 그 외에 여러 가지 맛이 혼합된 어소티드 초콜릿, 캠핑하러 가서 먹는 초콜릿 바, 사탕 등…….
유혹이 강렬했다.
지금 생각하면 초콜릿을 고르는 당시에도 초콜릿이 저렴한 가격대가 아니라는 걸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한국에 돌아가서 선물을 줘야 하는 사람들, 미처 잊어서 선물 못 주면 서운해할 사람들까지 생각하면서 초콜릿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이런 것 잔뜩 담으면 가격이 천문학적으로 올라간다는 당연한 이치를 잊은 채) 난 캠핑을 가지도 좋아하지도 않지만 설명해 준 성의를 생각해서 캠핑용 초콜릿바도 세 개, 바 초콜릿은 세 개 사면 조금 할인되니까 세 개. 와, 공정무역 초콜릿이었구나, 세 개 더. 이거 베이킹할 때 넣으면 맛있을 것 같은데, 나중에 아쉽겠다, 하면서 세 개 더. 아빠가 초콜릿 여러 가지 맛 드시는 거 좋아하시니까 아빠는 어소티드로 하나……. 담다 보니 그냥 들기에 부담이 갈 정도로 무거워졌다.
계산대에 가서 물건들을 포스기에 찍고 나서 총액을 보니 진심으로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초콜릿에 근 30만 원을 쓰게 생겼다. 이 사실을 그에게 들킨다면 나의 합리성에 대한 의심이 짙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라도 없던 일로 하고 다 취소하고 집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열심히 설명해 준 정성도 있고 초콜릿도 나중에 가면 요긴하게 쓰일 것이며(?), 이제 와서 무르기에는 매우 오랜 시간 고심해서 초콜릿을 골랐기 때문에 떨리는 손으로 카드를 내밀었다. 다음 달의 나야, 미안하다, 잘 부탁한다. 계산하고 나서야 내가 메트로타운 곳곳을 돌아다녀야 한다는 걸 깨닫고 잠시 당황하였으나, 잠시 초콜릿을 맡아줄 수 있겠냐 물었더니 흔쾌히 그리 해 준다고 하여 잔고도 마음도 가볍게 다음 장소로 향했다.
후기: 고슴도치 초콜릿은 아직 이 초콜릿을 안 먹어봤다는 캐나다인들을 비롯해, 소중한 사람들에게 잘 분양되었다(작은 분배 실수로 소중한 친구에게 못 주기도 했지만). 캠핑용 초콜릿은 내가 먹어본 초콜릿 바 중에서 맛있는 것 탑 2에 든다. 바 초콜릿은 친구들에게 하나씩 나누어주기도 하고 내가 조금씩 뜯어먹기도 했다. 나는 그동안 내가 초콜릿을 좋아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바 초콜릿을 먹어 치웠다. 배고픔에 못 이겨 밤늦게 카카오 70퍼센트가 들어있는 초콜릿을 두어 조각 떼어먹으면서는 몸에 좋은 걸 먹는다고 스스로를 속이기도 했다. 제빵에 쓰기 전에 다 먹어버릴 것 같다. 어소티드 초콜릿도 아주 맛있었다고 했다. 이곳의 초콜릿은 맛있다. 필시 초콜릿을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사 준다면 행복해할 것이다.
메트로타운의 여러 갈래 중 한 갈래 끝을 차지하고 있던 Indigo. 입구를 보는 순간부터 내가 좋아하는 곳일 거라는 느낌이 삭 돌면서 도파민이 분비되었다. 내가 한국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장소인 서점과 문구점이 합쳐져 있는 형태. 가장 바람직한 형태다. 초콜릿 가게에서 이미 한도 초과 쇼핑을 해서 여기에서는 최대한 뇌에 힘을 주어 소비를 참았다.
첫 번째로 눈을 사로잡은 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여러 가지 물품을 파는 코너. 이때까지만 해도 휴대전화 중독이라 책을 통 읽지 않아서 이 코너를 예사로 지나쳐 버렸는데, 에코백 하나라도 사 올걸 그랬나, 문득 아쉽다. 책벌레를 위한 책벌레 젤리, 책 사랑이 드러나는 머그잔과 에코백, 책 모양 화병, 책을 읽다 무심하게 툭 올려놓으면 되는 집 모양 책 거치대까지. 책을 좋아하는 것이 유쾌하고 멋지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코너여서 재미있게 구경하고 왔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책을 보면 괜히 반가웠고, 대부분의 책은 우리나라랑 커버 디자인이 완전히 달라서 모든 책이 낯설게 느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들어봄 직한 책도 한두 개는 보였지만. 책을 열면 머리만 아플 것이 뻔하여 이곳은 사진만 찍고 빠르게 이동했다.
아, 갖고 싶은 게 어찌나 많은지. 대마 줄기로 만든 자랑스러운 내 백팩이 여행 내내 놀림당하고 있으므로 새 가방을 사고 싶기도 했고, 집에 지구본도 없고 핑크색 지구본은 더더욱 본 적도 없으므로 그것도 가지고 싶고, 토트백도, 인형도…. 곤란한 시간이었다. 캐나다 팬케이크 가루는 우리나라 팬케이크 가루랑 맛이 무엇이 다를까 너무 궁금했고, 외국 감성 물씬 담긴 카드도 하나쯤은 가지고 싶었지만, 나의 멋진 자제력으로 모두 사지 않았다.
다이어리만 빼고.
나와 같은 뒤늦은 결심러를 위해 8월부터 시작해 내년까지 쓸 수 있는 18개월짜리 다이어리를 만들어 놓다니. 그것도 한 달 한 달 성의 있게 인덱스 페이지까지 만들고 배열까지 다 마쳐놨다니. 이것은 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나중에 다이어리 디자이너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그리고 이걸 산 다음부터 쭉 일기를 남긴다면 얼마나 유익하겠는가. 한참을 다이어리 판매대에서 이것저것 뒤적이다 결국 한 친구를 집어 왔고 여행기를 쓰는 지금 내 오른쪽 곁에 소중하게 놓여 있다. 물론 그 다이어리를 소중하게 아끼지만, 너무 아낀 나머지 8월부터 11월까지의 기억은 거의 쓰여 있지 않다.
외국 서점에 오면 그 나라 책을 한 권쯤은 꼭 사야지. 캐나다에 대한 설명이 들어있는 작고 귀여운 책을 골랐다. 작고 귀엽길래 내부도 그림이 가득하고 설명이 적을 줄 알았는데 활자가 많아 실망하긴 했다. 그래도 은근히 한국에서 다른 나라 소개 책을 찾으려면 마땅한 게 없을 때가 많다. 소중히 집어 왔다.
물건을 사러 온 사람들이 많아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줄 서서 기다리는 그 줄을 따라 또 여러 물건이 나를 유혹했다. 저 귀여운 스펀지를 사 오지 않은 것은 지금도 후회가 된다. 저 주사위 게임도 한국 가서 해 봐도 좋았을 텐데. 머그잔도. (인제 그만!)
메트로타운 안에는 마트가 최소 세 개 있다. 가장 아래층에는 아시안 마켓, 그 위에는 리얼 캐나디안 슈퍼스토어, 그리고 월마트. 처음 월마트에 가려고 할 때는 메트로타운 안에서 입구를 찾다 찾다 못 찾아서 포기하고 다른 마트에 갔었고, 다음에는 바깥에서 들어가는 입구를 찾아 들어갔다. 마트 규모가 크고, 마트 안에서 술은 팔지 않지만 약은 잔뜩 살 수 있는 것이 흥미로웠다. 다른 마트는 주로 급하게 용건이 있을 때 들렀던 터라(한 번은 물 사러, 한 번은 약 사러) 사진은 많이 찍지 못했지만, 그 와중에도 종종 인스타에서 봤던 분홍색 참치를 샀다. 한국에서부터 가끔 눈독 들이던 정수기 가격이 싸서 그 앞에서도 5분 넘게 고민했는데…. 그래도 잘 참았다. 출국 전날에 다른 월마트와 코스트코에서 많은 것을 사긴 했지만.
메트로타운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때 내 눈을 사로잡던 그것. 어쩌면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니었을까. 쭈뼛쭈뼛 판매원에게 다가갔다. 복권을 사고 싶다 했다. 얼마짜리를 살 거냐고 물었다. 복권이 가격대가 다 달랐다. 삼천 원, 오천 원, 만 원, 이만 오천 원, …. 당첨금이 높으려면 비싼 걸 사야 하는 게 맞지만, 나는 당첨금을 받을 희박한 확률보다 지금 현재 내 지출이 더 중요한 과소비인이었다. 분명 여러 종류를 다 사 와야겠다고 생각하고 갔는데 막상 사러 가서는 오천 원짜리 두 개를 소심하게 사 오는 것으로 만족했다. 나는 이럴 때 진심으로 복권 당첨이 될 거라는 상상을 한다. 그 돈을 어떻게 쓸지 열심히 고민했다. 직장은 그만두려나? 어디서 살아야 하지?
-그거 캐나다 사람만 받을 수 있는데, 하고 그가 말했다.
그래도 캐나다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어 다행이다, 그런 의미에서 당첨되면 내가 30퍼센트를 주겠노라고 말했다.
초등학생 때 방과후학교 컴퓨터 수업이 끝나면 굉장히 단순한 형태의 놀이동산 만들기 게임을 했다. 나는 주로 손님의 좌, 우, 위, 아래를 노점으로 막았다. 그럼 손님은 좌, 우, 위, 아래로 시선만 돌릴 수 있으니, 사방에서 자신의 지갑을 탈탈 털어 우리의 지갑을 채워 줄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낄낄거리며 그 게임을 했는데. 메트로타운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니 내가 바로 그 손님과 매한가지 같다고 생각했다. 물론 메트로타운은 길을 잃을 정도로 너무 넓고, 누군가가 나보고 물건을 사라고 강요하거나 가둬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메트로타운에는 푸드코트도 있고 음료를 파는 곳도 많고, 장난감을 파는 곳도 있고 옷을 파는 곳도 많고, 정말 많은 브랜드가 입점해 있어 구경하러 오면 두어 시간은 그냥 훌쩍 보낼 수 있는 흥미로운 곳이다. 밴쿠버 여행을 짧게 잡은 경우는 오기 힘들지만, 밴쿠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다면 버나비에 놀러 와서 메트로타운에서 쇼핑해도 즐거울 것 같다. 물론, 나같이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치는 참새를 메트로타운에 홀로 풀어두는 실수는 저지르지 않기를 바란다. 아니면, 좌, 우, 위, 아래 열심히 쇼핑하고 미래의 참새한테 잘 부탁하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