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버블티, 마라탕, 그리고 911
지금 생각해도 남편이 옆구리를 잡고 쓰러진 게 너무 당연하다. 옆구리가 아플 수밖에 없는 모든 조건을 갖춘 것을 그때는 몰랐다. 때는 땡볕이 작열하는 8월이었으며 그는 30대 남성이고 고용량 비타민 C와 D를 매일 섭취했다. 캐나다에 와서 짠 음식과 육류를 주야장천 먹고 있었고. 게다가 미국에서 14시간 운전하고 온 친구(앞으로는 “1”이라 칭하겠다)와 이틀째 야외활동을 했고. 그가 고통을 호소했을 때 우리는 운동 안 하다 갑자기 해서 근육통이 세게 온 줄 알았다. ‘이 질병’을 떠올리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설마’ 했지.
어제 남편과 1과 비비큐치킨을 뜯으며 꽤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를 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이자 나와도 동갑이며 나와 친해지고자 친절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친구. 1이라면 껌뻑 죽는 그의 모습을 보며 ‘뭐가 그렇게까지 좋을까’ 생각했는데. 하루 같이 지내보고 나 또한 1이라면 껌뻑 죽는 또 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는 다른 일정이 없으니 끝내주게 늦잠을 자고 잘 일어나서 어제 먹다 남은 비비큐치킨을 마저 뜯었다. 어째 비비큐치킨이 캐나다 버전이 더 맛있는 것 같냐. 향긋하고 바삭한 튀김옷과 잘 어우러지는 부드러운 속살. 음~하루 지났어도 참을 수 있다. 한국 비비큐보다 좀 더 매콤하다. 치킨무가 없어 아쉽다 생각했는데 에어비앤비 베란다 유리를 통해 비비큐 치킨무가 보였다. 무 색깔로 봐서 누군가 한참 전에 놓고 간 것 같았다. 절대 뜯고 싶지 않은 낯선 한국인의 흔적을 뒤로하고 지난번 브런치 맛집 데얼데얼에서 사 온 모찌도넛도 하나 마저 뜯었다. 음. 오늘 먹으니까 또 괜찮네. 일어나 얼마 되지 않아 새벽 골프를 끝내고 돌아오고 있는 그의 연락이 왔다. 1층에서 합류하기로 하여 대충 준비하여 바로 내려갔다.
그의 학창 시절 방앗간 같은 곳이라 했다. 그렇게 맛있다고 몇 번을 강조하던 것에 비해서서 가게 인테리어가 소박해 보였고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그는 능숙하게 여러 메뉴를 골랐다. 나는 어쩐지 국물이 먹고 싶어 만두와 국수가 나오는 메뉴를 하나 더 골랐다. 나한테 버블티는 식후 디저트인데, 그는 메뉴를 먹으면서 버블티를 같이 먹겠다고 주문을 했고 친구도 뒤따라 주문을 했다. 나도 신나서 타로밀크티 슬러시를 주문했다. 직원분이 친절해서 기분이 좋았다.
크게 기대 안 했는데, 음식 생긴 것도 그렇게 특별하지 않은데 맛이 좋았다. 고기로 만든 참치같이 생긴 무언가가 왜 이렇게 맛있는지. 밥과 같이 먹으니 너무 잘 어울렸다. 치킨도 빠삭빠삭하고 부위도 내가 좋아하는 부드러운 부위여서 좋았다. (생각해 보면 캐나다에서 먹은 튀김들이 대체로 참 맛있었다.) 소시지볶음은 쏘쏘. 심심하게 생긴 샌드위치도 생긴 것보다 꽤 괜찮고. 굳이 주문한 국수는 국물과 만두는 괜찮았지만 면이 맛이 없었다.
음식과 버블티를 곁들여 먹는 맛?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워낙 타로밀크티를 좋아해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아쉬웠던 건 타로밀크티를 슬러시로 선택한 것. 버블티의 펄마저 단단해지는 느낌이 들뿐 아니라 너무 차가워서 미각을 잃는 기분이라 식사와는 맞지 않다고 느꼈다. 다시 먹는다면 슬러시 말고 그냥 타로밀크티를 먹으리!
기분 좋게 밥까지 먹고 에어비앤비에 돌아와 통유리로 햇살을 한껏 맞으며 배를 두들기며 노닥거렸다. 평온하고 완벽한 하루. 오후에는 뭘 하고 놀까 고민을 하다, 일단 둘은 어제 세 시간도 못 잤으니 좀 자야겠다며 낮잠을 청했다. 나도 평온하게 좀 더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소리가 들렸다. 옆에서 그가 허리 한쪽을 움켜쥐고 있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아픈지 엄청나게 아픈 소리를 냈다. 얼떨떨해서 엄살인가 아주 잠시 생각했더랬다. 그런데 목소리가 심상치가 않았다. 나는 일단 증상을 검색하면서 필요하면 911을 부르려 했다. 그는 1을 깨워달라고 했다. 도움 줄 사람이 하나보단 둘인게 낫겠지만 그 당시에는 굳이 자는 사람까지 깨워야겠냐고 생각했다는 점도 고백한다. 어쨌든 몇 시간 눈을 붙이지 못한 1을 깨웠다. 그는 거실 소파에 나와 누웠다. 내가 증상을 검색하면서 결석 아니냐, 뭐 아니냐, 병명을 말해 한껏 예민해지던 그였는데, 1은 그 상황에서 웃으면서 그를 진정시켰다. 운동 안 하다가 갑자기 이틀 연속 골프 쳐서 근육이 놀란 것일 거라고, 나도 그거 겪어봤는데, 엄청나게 아팠다고 했다. 그는 막상 이 상황이 별 게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안정이 된 것 같았다. 그러나 통증이 잦아들지 않았다. 1이 119에 전화를 걸었다. 이 여행, 꽤 다이내믹하네.
10분-20분 정도 지났을까. 911에서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1과 함께 출입구를 열러 1층으로 갔다. 두 분이 와 계셨다.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그동안 한 번도 못 봤던 안내문을 봤다.
“이 건물은 에어비앤비 금지입니다.”
어, 몰랐네.
현관 앞에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은 동양인 셋과 달리 두 명은 거침없이 신발을 신고 그가 누워있는 거실로 직행했다. 그 와중에 내가 키칠라노 비치에서 산 부츠(a.k.a. 캐나다 국민 부츠)를 한 분이 진짜 신고 계신 걸 보면서 반가움이 밀려왔다.
“아파트 멋진데요.”
아픈 사람이 있는 상황이지만 심각하지만은 않게, 스몰톡을 걸어오셨다.
“에어비앤비로 빌렸어요.”
“오우, 좋네요.”
한 분은 소파 옆 식탁 의자에 노트북을 펴고 자리에 앉아 다른 한 분과 그의 대화를 기록하는 듯했다. 중간에 그의 여권을 가져가 이것저것 신상정보를 적기도 했다. 다른 한 분은 남편에게 증상을 물었다. 남편은 설명은 하지만 통증으로 괴로워하던 차. 1이 아마 오랜만에 무리해서 온 근육통 같다,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도 그렇게 받아들인 것 같았다. 옆에서 내가 혹시 결석은 아닐까 물었는데 혹시 등을 두드려서 아픈지, 토할 것 같은지 몇 가지를 물어보더니 웃으면서 아닐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에 이동하면 비용이 꽤 들 텐데, 보험이 있냐고 물었다.
헉.
보험 안 들었는데….
너무 당황스러웠다.
기억이 안 난다고 말하며 나는 재빨리 휴대폰으로 여행자보험 가입을 시작했다. 조마조마했다. 그의 신상정보를 하나하나 입력하고 났더니 아뿔싸. 외국인은 보험 가입이 안 된다네(그는 캐나다사람이다). 그래, 이제 와 어쩔 수 없다. 휴대폰 화면을 껐다.
다행히 그는 앰뷸런스 타고 이동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아마도 주변에서 근육통이라고 말해줘서 그랬겠지. 솔직히 안도했다.
이것저것 열심히 타자를 치던 분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듯한지 그의 여권을 돌려주었고, 메딕은 남편에게 강한 진통제를 주겠다고 했다. 먹고 한숨 자 보기로 한 것이다. 어찌 보면 앰뷸런스 타고 병원 갈 정도가 아닌 일로 911에 전화를 건 셈이 되어 그들에게 일종의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들은 활짝 웃으면서 문제없다고 말하고 밝게 에어비앤비를 떠났다.
강한 수면제를 먹고 그는 푹 잠들었고, 1도 비로소 조금 더 눈을 붙이고 일어났다. 그들이 잘 동안 착한 나는 메트로타운에 걸어가서 진통제와 근육통 약을 잔뜩 사 왔다. 밤의 메트로타운은 아름다웠지만 겁쟁이인 나에겐 조금 무서웠다.
아직 자고 있는 그를 두고 1과 나는 메뉴를 정했다. 오늘 원래 캐나다 마라탕인 핫팟을 먹으러 가자고 갈 참이었는데. 다행히 우버이츠에 가고 싶던 그 가게가 있었다. 재료 이름이 다 영어라 약간의 어려움은 있었지만 무난하게 주문을 성공했다. 뭐 엄청나게 재료를 넣은 게 아닌데 8만 원이 나오긴 했지만.
마라탕 맵기를 보통으로 해서 주문했는데 한국에서 먹던 것보다 더 얼얼했다. 신라면보다 조금 더 매운 정도. 한국 마라탕은 마라향이 확 나고 동시에 땅콩맛이나 육수맛이 같이 난다면, 이 마라탕은 뭔가 재료 맛에서 우러난 맛들이 더 잘 느껴지는 더 깔끔한 느낌. 핫팟이라 불리는 마라탕이 캐나다에서 인기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마라탕은 한국보다 캐나다가 맛있다”라고 호기롭게 말한 캐나다인을 두 명 만났음). 느끼한 음식을 주로 먹다 보면 우리 한국인들은 이렇게 매콤한 걸 딱 먹어줘야 속이 풀리지. 8만 원 치고 양은 좀 적었지만 어차피 매워서 셋 다 많이 못 먹어서 다행이라면 다행.
무엇보다 그가 괜찮아져서 매우 다행인 하루였다. 타지에서 아프면 더욱더 당황스러운 것. 이런 상황을 대비해 여러분들께서는 꼭 여행자보험에 가입하시고, 일행 중 최소 한 명은 현지에서도 통화가 가능한 유심이나 이심을 마련하시길 강력 추천드린다. 의사소통이 어렵다면 파파고라도 설치하셔서 수화기 너머로 내용을 들려주셔도 좋겠다.
여행이라는 이유로 매일매일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어 하던 나였지만. 아무 데도 안 간 날이 있으면 뭐 어떠리. 안 아프고 무탈하게 여행할 수만 있다면 하루 이틀 정도는 여유 있게 쉬어도 더 바랄 게 없다(물론 짧은 일정인데 그러면 아니 되오). 다행히 그의 좌측 뒤쪽 허리 통증은 진통제와 함께 점점 사그라들었고 나머지 캐나다 여행 일정도 무탈하게 흘러갔다. 나는 그 당시 그가 조금 엄살을 부렸나 보다, 오해했으나 귀국 후 얼마 안 가 같은 증세가 찾아와 찾아간 응급실에서 ‘요로 결석’ 진단을 받았다. 엄살이라고 생각해 왔던 마음 한편을 미안함과 안쓰러움으로 채웠다.
30대 남성 여러분, 여름에 야외활동을 하시거든 꼭 물을 많이 보충하시고, 여름에만 이라도 비타민 C, D 메가도스 같은 건 하지도 마시고, 고기만 많이 드시지도 마시고, 시금치 드시지 마세요. 당 많이 들었다고 옆에서 구박해도 꿋꿋이 오렌지 주스를 많이 마셔주세요. 그리고 왼쪽 옆구리 뒤쪽이 아프면 기타 증상 없어도 결석일 수 있으니까 비뇨기과 가보시고요. 여러분 모두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