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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루 Dec 24. 2024

밴쿠버에서 배 타고 5분, 예술가들의 섬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쇼핑하는 법 - 그랜빌아일랜드

 앰뷸런스 소동 다음 날. 그의 요양이 절대적이었기에 모든 운동 일정을 취소하고 여유로운 하루를 맞았다. 알람도 켜지 않고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일어났다. 다행히 어제 진통제를 세게 먹고 잔 그가 컨디션이 괜찮아졌다고 했다. 어디 조금씩 움직일 만은 하다고, 가고 싶은 곳을 말해보라고 했다. 사실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은 BC주의 수도인 빅토리아였지만 그가 그곳이 싫다고 두 번 말했던 점을 존중해 주기로 하며, 두 번째로 떠오른 그랜빌 아일랜드에 가자고 했다. 뭘 하는 곳인지 뭐가 좋은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한 번쯤 갈만 한 곳이라고 공통적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달리는 차에서 그랜빌 아일랜드에서 무엇을 놓쳐서는 안 되는지 급하게 검색했다. 그랜빌 아일랜드는 단어 그대로 섬이지만 밴쿠버 다운타운 바로 옆에 강을 하나 두고 가까이 위치해 있다. 차로 쉽게 다리를 하나만 건너거나 페리를 5분 정도만 타면 바로 도착할 수 있다.



 휴양지(?) 답게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그래서 버스나 배를 많이 타는 걸까). 어느 미술 관련 기관 주차장에서 5분 정도의 눈치싸움 끝에 운 좋게 나가는 차를 찾아 주차에 성공했다. 이렇게 힘들게 주차하고 나니 몇 만 원을 내고라도 그저 주차할 수 있음에 감사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랜빌 아일랜드는 꽤 작고 귀여운 섬이었다. 크기만 두고 본다면 맘 잡고 걸으면 금세 한 바퀴 빙 도는데 정말 얼마 걸릴 것 같지 않은 느낌(제부도보다 작을 것 같은데). 하지만 크기에 비해 구경할 것이 넘치는, 과연 밴쿠버 여행 왔을 때 한 번쯤 꼭 올 만한 곳이었다.



갑자기 시멘트 공장?



 인기 있는 나들이 장소이자 밴쿠버 시내와 딱 붙어있는 곳에 떡하니 시멘트 공장이 있는 것도 재밌고, 재치 있는 그림을 그려놔서 공장을 명물로 승화시켜 놓은 것 또한 재밌다. 마을 곳곳에 낙서와 그림들이 보이지만 시멘트공장의 큰 사람 네 명은 일단 크기로 관광객을 압도한다. 그랜빌아일랜드에 찾아와 만나면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는 반가운 존재. 반가웠지만 무심한 척 사진 몇 장을 툭 찍고 다음 장소로 씩씩하게 걸었다.


* 그랜빌 아일랜드가 원래는 시멘트 공장 지대였다고 한다. 지금은 예술인들과 관광객이 매우 사랑하는 근사한 곳으로 탈바꿈했다.




그랜빌아일랜드 퍼블릭 마켓(Granville Public Market)   


매일 오전 9시 ~ 오후 6시 영업(공휴일 제외)



 가건물같이 생긴 빨간 건물에 들어가자마자 알록달록하니 생기가 가득했다. 싱싱해 보이는 각종 농산물과 앙증맞고 예쁜 과일들이 먼저 보였고 주위에 가게들이 잔뜩 늘어서 있었다. 말 그대로 ‘있어야 할 건 다 있고 없을 건 없는’ 진풍경이었다. 이국적인 느낌이 가득해 사진 찍을 맛이 나는 공간! 어디에 먼저 눈을 둬야 할지 고민했다. 이런, 과자가게까지 있다니. 내가 찾아 헤매던 ‘진짜 맛있는 메이플 쿠키’도 찾아 왕창 구매하면서 여행을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내가 피하고 싶었던 달디달디달고 단 메이플 쿠키였다. 흑흑!)



 비누도 사고 싶고(비싸서 내려놓음), 과일도 먹어보고 싶고(안 씻은 것 같아서 내려놓음), 농산품들도 참 신기하고(요리해 먹을 거 아니어서 내려놓음).... 생각보다 큰 지출 없이 수월하게 시장 구경이 끝나가고 있었다. 밥, 간식, 디저트, 식료품 등 워낙 파는 먹거리도 다양하고 푸드코트도 따로 있는 데다가 바깥에도 안에도 음식 먹을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니 여기 음식을 사서 맛봤으면 더 좋았을 텐데. 오기 전에 중식으로 배를 빵빵하게 채워버려서 뭘 먹을 수가 없었다(배를 조금 비우고 가셔도 좋을 듯하옵니다). 그 와중에도 먹보 그루는 지난번 지인에게 추천받았던 까눌레 가게를 매의 눈으로 찾아 야무지게 포장하고, 옆쪽에 사람들이 줄 서 있길래 반사적으로 줄을 서서 만 원짜리 맛없는 당근주스를 먹었다.   


간식 추천

- La Bise Bakery: 지인이 먹는 용으로도 선물용으로도 강력 추천한 까눌레집. 까눌레만 사 와서 다음날 숙모와 같이 먹어봤는데 맛이 괜찮았다.
- Siegel’s Bagels(베이글샌드위치 등): 유명
- Lee’s doughnut(망고도넛 등): 유명. 다른 지점도 있음.





펄스 강(False Creek)의 정취 감상하기



 한참 시장을 구경하고 나니 강이 보이는 바깥 풍경이 있는 곳 쪽 출구로 자연스레 나왔다. 탁 트인 강이 그리 푸를 수가 없었다. 하늘도 파랗고 강도 파랗고, 내 마음도 한껏 파랗게 물들었다. 여행 중 가끔씩 찾아오는 순간이 또 찾아왔다. 만족과 기쁨과 해방의 감탄사.


“하~~~~~~~~~~”



 강과 페리, 도시와 이곳을 잇는 다리의 모습이 조화로웠다. 여행에서 가끔 느끼는 찡하도록 행복한 순간. 오래도록 어딘가에 앉아 강을 오래도록 쳐다보는 특권을 누리고 싶었다. 다만 피부가 타는 데 다소 민감한 사람 중 하나로서 그늘이 있는 의자를 찾아 헤매었으나, 응달이다 하면 묘하게 우리 동포와 아시안이 모두 앉아있었다(같은 마음이었을까). 굳이 땡볕에 앉아 있는 것도, 오랜 시간 마냥 혼자 멍을 때리기엔 일행도 있었으므로, 짙은 아쉬움을 털어내고 마저 구경을 하러 이동했다.


 밴쿠버에서 페리를 타고 그랜빌 아일랜드를 다녀가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 될 듯하다. 밴쿠버 시내에서 5분이면 그랜빌 아일랜드에 올 수 있다고 하고, 페리가 내리는 곳이 다양하여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에도 좋을 듯했다.



기념품 구경/쇼핑


 

이 작은 섬은 모든 공간이 구경거리로 가득 차 있다. 길거리에서 누군가가 노래를 부르고 건물이란 건물은 매력적인 곳들-테마가 있는 기념품 가게, 미술용구, 갤러리, 식당-이었다. 마음 같아선 한 군데도 빼놓지 않고 구경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내 친구들과 이곳에 와있지 않다는 점을 의식했다. 세 명중 이런 것에 관심 있는 게 나 하나라는 것이 그들의 동태 같은 눈을 보니 여실히 느껴졌다.



 몇 군데 잡화점을 구경하고 나자 그가 드디어 잠깐 쉬고 있어도 되겠냐고 했다. 원하는 만큼 천천히 구경하고 오라고 하며 그와 1은 벤치를 하나씩 차지하고 쉬기로 했다. 아쉬웠냐고? 아니! 너무 좋았다. 아까도 두 명 눈치 보느라 가게를 세 개나 건너뛰고 온 참이거든. 그들이 쉰다고 자리 잡은 공간 바로 옆이 여러 가게가 모인 공간이었는데, 그들은 쉬고 나는 구경할 시간이 생긴 덕분에 모든 공간을 놓치지 않고 다 구경하고 올 수 있었다. 헤헤.


  

     우리나라에서 재미로 타로를 보는 건 애교로 느껴질 만큼 그들의 미신 코너(죄송합니다)는 방대하고도 다양했다. 정말 마녀들이 사는 것 아니냐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기독교이지만 친구가 타로카드를 펼쳐 고르라고 하면 신나서 고르는 열린 마음 그루도(죄송합니다) 너무 진심이 느껴지는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사지 않고 고이 나왔다. 여기서 뭔가 사면 미신을 진짜 믿는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느낌?



  

     다른 나라 사람들의 감성을 카드를 보며 엿봤다. 이 친구들 동물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뒤에 거창한 말 쓰지 않아도 앞면만 줘도 의미가 전달되겠다, 싶었던 귀여운 카드들. 그리고 어느 나라 가도 있는 친구 놀리는 카드를 보는 재미도 좋았다. 메이플 시럽과 아이스와인으로 만든 각종 기념품과 앞에서도 한참을 고민했다.   



     그랜빌 아일랜드에 유난히 캐나다 원주민들의 개성이 드러나는 물품들이 많았지만, 그중 가장 나를 설레게 했던 것은 바로 Inukshuk(이눅슈크)였다.



 원주민들이 방향을 알려주거나 식량 저장고등을 나타내는데 쓰였던 돌무지라 했다. 쌓아놓은 모양이 사람을 닮아 일단 귀여운 데다, 이것이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 올바른 길을 선택하는 것을 도와줄 거라고 써 놓은 탓에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다. 캐나다의 상징적인 조형물이라 기념품으로서의 의미도 대단한 데다, 귀엽고, 선택을 어려워하는 나에게 더없이 좋은 친구가 아닌가. 사고 싶은 마음을 애써 단념해도, 어느 가게를 가든 이눅슈크는 계속해서 내 눈앞에 나타났다. 몇 번의 여행 후 소중했던 기념품이 집에 와서 갈 곳 없이 방치되며 먼지 쌓이는 모습을 보았던지라, 그리고 너무 작은데 삼만 원은 비싼 것 아닌가 하는, 현실적 이유 때문에 끝까지 구매를 망설였다. 결국 이눅슈크는 자석의 형태로 나와 함께하게 되었다. 아쉬운 마음을 담아 장식품 이눅슈크를 사진에 담아왔는데, 사진을 보니 도대체 왜 안 사 왔는지 후회가 된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내 책상 한쪽에 올려놓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어떤 글을 쓸지, 어떤 제목을 고를지 고민할 때 한 번씩 쳐다봤을 텐데.




장난감 구경



 산게 별로 없는 척 혼자 사온 기념품들을 봉투 하나에 모은 후 자연스럽게 그들과 합류했다. 1은 아예 벤치에 누워서 편히 쉬고 있었다. 다 같이 안 걸었던 길목을 마저 걷고, 자석을 좀 산 후 마지막으로 무지개장식이 인상적인 장난감 가게에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같이 좀 다녀볼까 했는데 역시, 들어가자마자 나는 인형으로 그는 피규어로 관심이 나뉘었다. 약 1초 만에 서로 동의하는 눈빛을 나누곤 따로 구경을 시작했다.


 귀여운 인형들이 정말 너무 많았다. 젤리캣에 아기들 선물용 말고도 이렇게나 인형 종류가 많은 줄 몰랐다. 밴쿠버 다운타운에서 예쁜 화분 모양 젤리캣을 사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이곳에서도 같은 아이를 찾아 헤매었지만 찾을 수 없었다. 물론 사 왔어도 한쪽 구석에 놓은 채 방치했을 것은 맞지만. 인형은 다르다. 인형은 항상 웃는다. 그리고 항상 귀엽다. 보는 것만으로도 안정을 준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 사 오지 않은 게 후회가 된다.


 아직 구경하지 않은 예술가들의 가게가 무척 많았지만, 이렇게만 구경해도 이미 시간이 두세 시간은 훌쩍 지나 있었고, 이곳은 유난히 나 한정 취향저격의 공간이었기에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밥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더 늦기 전에 1에게도 낮의 메트로타운을 보여주고자 좀 일찍 떠난 것도 있다. (그는 나와 같이 음료수를 사면서 어두컴컴하고 미로 같은 메트로타운밖에 보질 못했다.) 마지막으로 마녀의 빗자루를 파는 가게를 사진에 담으며 유쾌하고 행복하게 그랜빌아일랜드를 떠나 왔다.



 아기자기한 것들, 그 나라만의 특별한 공예품이나 기념품 구경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오랜 시간을 쓸 재밌는 곳이었다. 배를 비우고 온다면 마켓에서 푸드코트도 이용하고 집에 와서 먹을 과일이나 햄 등을 살 수도 있겠다. 캐나다 전통이 담긴 이눅슈크를 데리고 오실 분도 있겠고. 흰 피부를 포기하고 따스한 햇살을 온몸으로 맞으며 아름다운 강을 오래도록 감상하거나 예술가들의 연주를 맛있는 음료를 한 잔 하며 들을 수도 있겠다. 관광지 느낌이 물씬 나지만 아름다운 강과 개성 있는 물건들이 있어 뻔하거나 불쾌하거나 전형적이진 않은, 즐거운 공간이었다.



** 행복한 여행을 위한 팁: 당신의 배우자(또는 아이, 친구)가 충분히 기념품을 구경할 수 있도록 시간을 여유롭게 계획하세요. 행복한 모습으로 같이 구경을 하시면 좋겠지만, 정 체력이 달리거든 최대한 편안한 자리를 잡고 상대의 짐을 들고 앉아 편하게 기다려주세요. 이곳은 구경을 대충 하고 떠나기에는 너무 아쉽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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