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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루 Dec 28. 2024

3000km 밴프행 로드트립 매드맥스의 서막

고생은 미리 하는 게 최고라네요


 이번 밴쿠버 여행의 하이라이트! 드디어 밴프로 떠난다. 밴프는 캐나다 서부 여행할 때 빼놓으면 섭한 멋진 국립공원인데, 밴쿠버에서 800km가 넘기 때문에 차로 가면 편도만 13시간도 넘는 무리한 일정이 된다. 그래서 보통은 밴프 인근 도시 캘거리까지 비행기를 타고 거기서 렌터카로 이동하며 여행을 많이 하는데….


‘차를 타고 밴프 가는 길 경치를 보는 게 밴프 여행의 정수’라는 그. 나야 옆자리에 타서 가는데 안 될게 뭐가 있나.


 감사한 마음으로 그리하기로 하고, 아무래도 이동에 2일은 소요될 것 같으니 계획보다 하루 일찍 더 출발하기로 했다.


구글양반이 하는 말을 믿으면 안 됨. 7시간은 무슨 ㅠㅠ

 

 밴프와 중간 여행지의 여행 날짜를 모두 픽스했던 터라 예상 밖의 골든에서 2박을 지내게 되었다. 밴프 여행을 여러 번 다녀온 사람과의 여행이니 대충 묻어가야겠다 싶다가도, 그랬다가 나중에 좋은 곳 놓치고 오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 후기와 유튜브, 구글지도, 여행사 홈페이지를 열심히 찾았다. 구글 지도에 별이 가득 떴다.


앞부분에 번호판이 없어요. 신기하죠?

 

 전날 렌터카를 잘 빌려 두고, 너무 서두르지 않고 여유 있게. 해가 중천에 뜨지는 않았을 때 여행길에 올랐다.


 오늘의 목적지는 ‘골든’이라는 곳. 삼촌댁에서 691km나 떨어진 먼 곳. 삼촌과 숙모께서는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쉬는 것을 추천하셨지만, 그는 그래야 다음 날 다른 곳을 편하게 구경할 수 있다고 했다. 일리 있는 주장이었다. 캐나다에 온 이래로 그가 이렇게 듬직하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었다. 고생을 사서 해 주겠다는 그의 의지에 존경을 표하며 여행을 시작했다.



 한 시간 반 넘게 운전을 해도 여전히 밴쿠버와 같은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였다. 차원이 다른 대륙의 스케일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어쩐지 동서부 여행을 한 번에 한다고 할 때 그렇게 말리더라니.




“진짜 여기 멋있는 데 맞아?”


 브라이덜 베일 폭포를 목적지로 두고 가며 그가 물었다. 솔직히 나도 직접 가 보지 않았던 곳. 우리와 같은 경로로 밴프 여행을 가는 여행사 코스에서 따 온 장소라 나도 반신반의하던 참이다.


 별로여도 그마저 의도였던 양, 나는 자신감 있는 말투를 썼다.


“여행사에서 구색 맞추려고 넣은 코스인지 진짜 멋진 덴 지 일단 가 봐야지.”



 출발지에서 브라이들 폴스까지 나름 100km 정도 운전했지만, 체감상 이 정도는 ‘껌’이었다. 주차장에 여유롭게 차를 대고 걷기 시작했다.


 주차장 바로 옆에 폭포가 있을 줄 알았는데, 10분여를 쭉 걸어야 했다. 걸어가는 길 나무에 초록 이끼들이 잔뜩 껴 있었다. 세월의 흔적을 한껏 느꼈다. 아름답고 신비로운 원시림을 걷는 특별한 기분. 그냥 온 곳인데 제법 좋다.


 좋긴 한데, 얼마나 더 걸어야 할까, 더 먼 산길이면 어떡하지, 걱정하던 즈음. 다행히 폭포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캐나다인 특: 올라가지 말라는 데 은근 올라가 있음


 사진으로는 느낄 수 없었던 광활한 폭포. 물줄기가 넓게 퍼지면서 내려오는 모습이 우아하고도 아름다웠다. 신부의 베일이라니, 이름도 참 찰떡같이 지었다. 큰 기대를 안 하고 왔는데 예상보다 예뻐서 기분이 무척 좋았다. 여행 출발부터 예감이 좋았다.


아름다움이 사진에 다 안 담겨서 정말 아쉽다.


 마냥 앉아서 폭포 구경을 하고 싶었지만, 다음 목적지까지 591km나 더 남았으므로 적당히 구경을 하고 차로 돌아왔다.



 다음 여정은 밥 먹기. 나에게는 여행 중 가장 중요한 여정이 되겠다. 가기로 찜해 둔 가게 이름은 ‘홈 레스토랑(Home Restaurant)’. 밴프 가는 길목에 몇 군데 있는 밥집으로 구글지도를 구경하다 우연히 발견했다. 한국인에게도 현지인들에게도 후기가 너무 좋아서 기대했던 곳이다.


 브라이덜 폭포에서 가까운 ‘호프’라는 동네에도, 조금 더 먼 ‘메릿’이라는 동네에도 가게가 있었는데, 가능하면 조금이라도 더 이동하자는 생각에 155km를 더 달려 메릿의 홈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현재까지 총 255/691km 이동.)



 나는 분명 한국 사람이지만 낯선 이곳이 어쩐지 푸근하고 정감이 갔다. 동양인은 우리가 유일했던 것 같고. 두 시가 넘어 도착했지만 사람들이 꽤 있었다. 쾌활한 분위기의 서버가 메뉴판을 전해주었다.



 먹고 싶은 게 많아 고민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돈가스의 추억을 자극하는 슈니첼을 주문하기로 했다. 그는 치즈 버거를 주문했다.



 푸짐한 돈가스(슈니첼). 비록 샐러드도 없고 동그란 밥도 없지만 튀김옷이 맛있고 오독오독 바삭한 식감이 마음에 들었다. 그레이비소스도 낯설었지만 짭조름하고 구수한 것이 튀김과 잘 어우러져 첫 입부터 맘에 들었다. 바삭하고 풍미 있는 돈가스(?)를 먹고 있자니 기분이 또 한 번 좋아졌다.


 이곳이 디저트가 그렇게 맛있다고 들었지만 밥을 먹고 나니 배가 너무 불러서 도저히 먹을 공간이 남아 있지 않아 아쉽게도 다음 장소로 이동하게 되었다. 매우 푸근하고 양도 푸짐했으며 몹시 만족스러운 한 끼였지만 한 끼에 육만 원 넘게 지출을 하고 떠났다.



 이후는 계속해서 차 안에 앉아있는 일정. 풍경 느낌이 또 달라졌다. 달리고 달리고 달려도 여전히 목적지까지 400km가 넘게 남았다.


 메릿을 지나면서부터 산세가 조금씩 험해지기 시작했고 인터넷 신호도 더 안 잡히기 시작했다. 그의 내비게이션이 멈추어버렸다. 당황스러운 순간.



하지만!


 그럴 줄 알고 내가 휴대폰에 구글 오프라인 지도를 저장해 놨지. 하하!



 휴대폰 거치대에 내 휴대폰을 끼우고 목적지를 입력했다. 조수석에 앉은 옆자리 사람의 덕목을 지키기 위해 자지 않고 가끔씩 아름다운 산세에 감탄을 보내며 사진을 찍었다.


 운전을 하지 않고 그냥 앉아만 있는 것도 충분히 엉덩이가 아프고 힘들 수 있다는 걸 느낀 하루였다. 나는 그에게 힘들지 않냐, 쉬면서 가야 한다, 화장실도 안 들르냐며 자기가 원하는 걸 대신 남에게 권유하는 화법을 시전 했지만 그는 사양하고 운전을 계속했다. 별로 안 괜찮아 보였는데….



 다행히 기름이 떨어진 덕에  ‘래블스토크’라는 곳에서 쉴 수 있었다. 웬만한 동네에서 꼭 만날 수 있는, 고마운 팀홀튼에서 아이스캡 한 잔도 하고, 잠시 밖에 나와 숨을 돌렸다. 하지만 오래 쉴 순 없었다. 500km 넘게 다 왔고 이제 147km밖에(?) 안 남았는데, 빨리 가서 누워서 쉬어야지.




 밴프까지의 매드맥스 여행에서 다행이었던 점은, 창 밖 풍경이 과연 정말 예쁘다는 거였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치유되는 기분.



 이 맛에 우리가 차로 여행을 왔구나.


 

 정신없이 사진을 찍다 보니 결국 해가 지기 전에 691km를 달려 골든에 도착했다.



 성수기라 방 컨디션에 비해 높은 가격을 지불했지만 내 한 몸 누일 곳이 있다는 것 자체가 그저 감사했다. 찻길 옆에 덩그러니 놓인 숙소에 짐을 푼 우리는 밖에 나갈 힘도 없어 사발면 두 개를 사이좋게 끓여 먹고는 스페인어 드라마를 짧게 구경하고 깊은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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