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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그루 Dec 31. 2024

80미터 상공 130미터 걷기, 심장이 떨어지는 순간

캐나다에서 가장 높은 다리 & 세계에서 가장 큰 노가 있는 골든

 아무 생각 없이 줄에 묶여 하염없이 강 아래를 쳐다보며 덜덜 떨던 번지점프가 스쳐가는 순간이었다. 끝도 보이지 않는 다리가 주변 사람들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거리면 내 마음도 같이 흔들렸다. 그 와중에 사진은 남기고 싶고, 그는 그러다 휴대폰 떨어뜨린다고 말리고. 좌우로 보이는 장엄한 협곡에 감탄하다가도, 왜 내가 돈 주고 이렇게 손에 땀을 쥐며 고생하고 있나, 후회가 밀려왔다.


 





 열 시간 넘는 운전 대장정 덕분에 꿀잠을 자고 일어났다. 밴쿠버부터 열 시간 넘게, 700km나 왔는데도 아직 캐나다랑 같은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 있는 것도 혀를 내두른 부분. 마음은 당장 밴프 다운타운으로 달려가고 싶지만 오늘이 기존 계획상 여행 출발일인 탓에 오늘 숙소도 골든에 잡혀 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골든에 있는 것들도 구경을 좀 해 볼까.



 골든에서의 첫 끼는 우동. 뜨끈한 국물이 나의 피로와 느끼함을 다 풀어주겠지. 가게는 금세 서양인 손님들로 가득 찼다. 우동 국물을 한 입 했더니 맛있어서 와! 감탄이 일어났고 면을 한 입 먹자 아쉬움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거 면 이렇게 데우는 것 아니오~ 끓는 물에 데쳐야 한다고 말해 주는 상상만 다섯 번 정도 하고 가게 바로 옆 다리를 보러 갔다.



 

 골든에는 빙원에서 내려온 맹렬한 흰색 물의 강이 있다. 이름은 ‘키킹 호스 강(Kicking Horse River)’. 강을 탐사하던 분이 말에 차인 순간을 강 이름에 두고두고 남기다니 웃긴 건지 악취미인지. 아무튼 이 강 덕분에 지금 가는 키킹 호스 보행자 다리도 구경거리가 되었고, 맹렬한 급류는 사람들의 래프팅 장소가 되어 주기도, 바위를 침식시켜 천연 다리(내추럴 브리지)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골든 키킹호스 보행자 다리

(Golden Kicking Horse Pedestrian Bridge)



 골든 키킹호스 보행자 다리(Golden Kicking Horse Pedestrian Bridge)는 그냥 봐선 특이하게 생긴 평범한 다리다. 특별하게 감상을 남길 정도의 인상은 아니었다. 스위스식 다리 형태라는데, 얼핏 보면 그저 오래된 투박한 다리 같다.



 하지만 막상 이 다리를 만들기 위해 백 명이 넘는 사람과 축구장 24개를 늘어놓은 길이만큼의 전나무가 사용되었고 그 길이가 46미터에 달한다고, 캐나다에서 가장 긴 프리스탠딩 다리라고 하니 새삼 다르게 보인다. 다리가 건설된 게 2001년이라 하니 그전까지는 사람들과 자전거가 먼 길을 돌아서 다녔으려나.



 흔들림도 크게 느껴지지 않는, 사면의 나무 기둥들이 가득한 다리를 건넜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무리가 우리 옆을 지나갔다.



 보기에는 소박하고 당연해 보이는 것도 엄청나게 많은 노고와 재료와 시간이 쓰인 대 공사의 결과일 수도 있음을 알았다.



다리 관련 이야기 출처

: https://www.tourismgolden.com/media-item/kicking-horse-pedestrian-bridge

: https://www.canadiantimberframes.com/projects/kicking-horse-pedestrian-bridge





골든 스카이브리지

(Golden Skybridge)



 캐나다에서 가장 높은 현수교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골든 스카이브리지. 양옆으로 협곡이 펼쳐진 80m 상공을 걸으며 주변 풍광을 보는 기분이 제법 짜릿하다. 사실 짜릿하다 못해 오금이 저리고 손발이 덜덜 떨리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밴쿠버에서 밴프로 로드트립을 하는 사람들에겐 강력 추천하고 싶고, 밴프 여행 일정이 여유로운 사람들도 한 번쯤 와볼 만하다고 말하고 싶다(‘밴프 재스퍼 컬렉션' 홈페이지(https://www.banffjaspercollection.com/)에서 여러 장소를 묶어서 구매하면 훨씬 싸게 여행을 즐길 수 있을 듯했다). 5월에서 10월 초까지만 갈 수 있다.




 별다른 예약을 하지 않고 주차장에 도착했다. 얼핏 보니 입장료가 매우 비싸 보였다. 나도 겁쟁이지만 그도 나 못지않은 겁쟁이이다 보니 각종 기구들을 굳이 타고 싶지 않다는 데 동의하고 다리를 건너는 기본 입장료만 내고 입장하게 되었다. 입장료를 결제하자마자 내 손에 들려있던 휴대폰 속 골든 스카이브리지 구글지도 링크에서 훨씬 싸게 표를 구입할 수 있는 걸 보고 마음속으로 눈물을 훔쳤다.



 들어가자마자 왼쪽에서는 도끼 던지기 체험이 보였고,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는 커다란 나무의자, 캠핑장소같이 꾸며둔 쉬는 공간과 기념품 가게가 보였다. 우리처럼 입장료만 내고 들어온 경우에는 내부 공간을 한 바퀴 쭉 걸으면서 스카이브리지를 두 번 건너 처음 자리로 돌아오는 산책 코스라 볼 수 있고, 사이사이에 집라인, 마운틴 코스터, 자이언트 스윙, 줄을 매달고 높은 곳을 걷는 챌린지가 마련되어 있어 자기가 구입한 표에 맞게 원하는 어트랙션을 즐기면 되는 구조이다.


 

 문경에서 짧은 집라인을 타고 실망했던 기억과 비교한다면, 이런 곳이야말로 집라인을 타기 딱 좋은 멋진 풍경과 긴 체험거리가 있는 거였는데. 집라인이랑 마운틴코스터 정도는 탔으면 엄청나게 재밌었을 것 같은데, 그 당시에는 그렇게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아마 다리를 건너는 것만으로도 진이 다 빠져서일 수 있다.



 특히 자이언트 스윙의 경우에는 보는 사람들마저 심장이 쪼그라들고 아찔해지는 기분. 번지점프를 얼떨결에 했다가 말 그대로 고소공포증이 생겨버린 듯한 내가 하면 말 그대로 심장이 정지할 것 같다. 웬만한 놀이기구나 번지점프가 시시하신 분께 딱 맞는 천혜의 높이! 공포의 끝! 도파민을 끝까지 폭발시키고 싶은 분들께 강력 추천한다. 도끼 던지기의 경우도 캐나다에서 한 번쯤은 해 보고 싶었는데 자꾸 내가 도끼를 잘못 던져서 도끼로 내 발등 찍는 상상이 동시에 펼쳐져서 차마 도전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 휴대폰으로 영상이랑 사진은 남기겠다고 덜덜 떨며 다리를 건너서 사진을 조금은 건질 수 있었다. 다리를 하나 건너고 숨을 고르며 산책을 하고, 집라인과 자이언트 스윙을 타는 사람들을 보며 심장을 한 번 부여잡은 뒤, 다시 한번 다리를 건너야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좌절과 안심(돈값은 하는군!)을 동시에. 다시 한번 미칠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고 다리를 건너 무사히 돌아왔다.


여기서 점프하고 달리는 사람 있으면 호온~난다! ㅠㅠ

 골든이라는 곳을 전혀 알지도 못했을뿐더러 그저 밴프 가는 길에 스쳐가는 작은 동네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말 그대로 자연 놀이공원을 만들어 놓은 것이 참 좋아 보였다. 여행 일정이 많이 여유로우시다면 아예 여기에서 반나절 이상을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토요일에 오면 공연도 있고 재미있는 것들이 더 있다고 한다.) 나보다 몇 배는 용감한 어린이들이 신나게 자연의 높이를 즐기는 모습을 감탄하며 다음 장소로 향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노

(World's Largest Paddle in Golden)



 사실, 이 날 골든 스카이브리지를 구경한 후 ‘필드’라는 동네까지 다녀왔다. ‘타카카우 폭포’, ‘에메랄드 레이크’, ‘내추럴 브리지’까지(다음 화를 기대해 주세요). 넉넉잡아 400km는 왔다 갔다 한 것 같다. 누가 봐도 알찬 일정을 보내고 골든으로 돌아오는 조금 지친 길. 갑자기 그가 수줍게 물었다.

 “나 사실 가고 싶은 데가 있어. 좀 어이없는 덴데 한 군데 더 가도 돼?”

 “당연하지. 어딘데?”

 “어제 구글 지도보다 봤는데….”


 알고 보니 골든에서 아래쪽으로 30km 정도 내려가면 ‘세상에서 가장 큰 노’가 있다는 것이다. 갑자기? 여기서? 노가? 물음표가 일면서 유쾌했다. 아 세상에서 가장 ~~ 하다는 건데 그럼 가 봐야지! 사실 난 차에 앉아있기만 하면 되는데 뭐. 하루에 구경을 여섯 개 넘게 하는 거 아니야. 캐나다 여행 중 가장 보람찬 하루가 아닐까, 생각하며 바깥 풍경을 구경했다.


 그런데 오른쪽 산에서 심상찮은 연기가 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올해 재스퍼에 불이 크게 났는데, 여기도 불이 났구나! 매우 놀랐다. 신고라도 얼른 해야 할 것 같아 어디로 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그가 아마도 나라에서도 알고 있을 거라고 했다. 여행 카페를 검색하다 ‘BC Wildfire Service’라는 앱이 있다는 걸 보고 설치했다.


 과연, 이미 신고가 된 불이었다. 앱에는 지도가 나오고, 불이 난 곳들이 여러 군데 표시되어 있었는데, ‘불이 난 걸 알고 해결하고 있는’ 부분, ‘불이 났지만 해결할 수 없는 부분’ 등이 나뉘어 표시되어 있었다. 이곳은 안타깝게도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부분 같았다. 그렇다면 그저 비가 내리기를, 어떤 이유로든 불이 멈추기를 기다리는 것밖에 없는 것일까.



인간이 아무리 잘나고 아무리 자연을 이용하고 날고 긴다 해도, 아직 손쓸 수 없는 자연의 힘 앞에서는 무력한 존재라는 점을 생각하니 겸손해지기도 서글퍼지기도 했다.


 

 드디어 노 도착! 정말 별다른 건 볼 것이 없다. 그저 노다! 그렇지만 정말 크다! 그래도 기네스북에 오른 곳이라고 캐나다 국기가 옆에서 신나게 펄럭이고 있었다.


 여기서 찰칵, 저기서 찰칵, 아, 노가 큰 게 사진에 잘 안 담기는데, 찰칵. 바로 옆에 가 서봐, 찰칵. 그렇게 우리의 긴 하루도 끝이 났다.


 내일은 정말로 밴프에 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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