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만 찍지 말고 너희 사진 꼭 많이 찍고 와!"
나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편이지만, 내 사진 찍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진기만 만나면 어색하게 굳어버리는 표정과 몸. 사진을 찍고 나서 마주해야 하는 어색한 나 자신의 모습. 아닌데. 나 이렇게 안 생겼는데. 세 시간 동안 샵에서 공들여 만들어준 결혼식 모습 정도 되어야 흡족하게 스스로를 받아들인다. 이유는 조금 다르지만 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하는 둘이 만나니, 풍경사진은 늘어가지만 같이 찍은 사진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둘 다 사진 싫어하면서 ‘넌 왜 나랑 사진 안 찍냐’고 생각하는 게 코미디.)
이번 여행을 오면서는 꼭 둘의 사진을 많이 남기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또 풍경이 지나치게 아름다운 캐나다가 아니었던가. 결국 사진의 대부분은 풍경 사진으로 담아 오고 말았다. 그렇다고 ‘풍경 사진은 더 잘 찍은 사진 인터넷에 널렸는데 무슨 의미냐’는 말에 난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내 손으로, 열심히 찍은 내 풍경 사진을 갖는 게 얼마나 기쁘게요.
이 날은 밴프에서 북쪽 방향에 위치한 ‘재스퍼’ 쪽에 가는 날이다. 안타깝게도 재스퍼는 2024년 여름 큰 불이 났다. 삼촌 숙모께서 록키 여행 중 가장 좋았던 곳이라고 하셨는데, 화재 규모와 피해가 매우 컸다. 우리가 가 보지 못하는 것도 당연히 아쉽지만 그것보다도 너무 큰 규모의 불이 나고 사람들도 피해를 많이 입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아예 밴프 쪽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길 자체가 다 폐쇄되었었는데, 우리가 록키 여행을 시작할 즈음, 재스퍼까지는 아니지만 아름다운 호수와 빙하를 볼 수 있는 곳까지는 다시 여행을 할 수 있게 길이 열렸다. 정말이지 타이밍이 좋았다.
늦잠보 두 명이 오래간만에 일찍 일어났다. 아이스필드에서 빙하 보는 시간을 예약했더니, 그전까지 관광을 하며 올라가려면 부지런할 필요가 있었다. 이 아침에 연 곳은 맥도널드밖에 없어, 반가운 맥 모닝을 먹으며 여행을 시작했다.
차 안에 앉아만 있어도 바깥 산 풍경이 무척 아름답고, 때때로 왼쪽에 눈부시게 빛나는 호수가 나오면 넋을 잃고 바라보는 행복한 여정이었다.
얼마쯤 갔을까. 기대하던 페이토 호수 주차장에 도착했다.
호수를 보려면 위로 조금 걸어 올라가야 했는데, 많이 고되지 않은 적당한 산책 정도의 느낌이었다.
드디어 사람들이 모여있는 나무 전망대가 보였다. 와! 눈이 시리게 빛나는 옥색 호수. 중간에 잠시 빗낯이 떨어지고 구름이 꼈지만 예쁜 빛깔은 여전했다. 너무나 좋은 풍경이었지만 어디를 찍어도 옆 사람이 걸리는 슬픈 상황. 어제 숙소에서 봤던 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전망대 오기 마지막 전 갈래길에서 왼쪽 말고 오른쪽으로 가면 또 다른 전망을 볼 수 있다 했다.
그와 함께 다시 내려가는 길 쪽으로 조금 돌아왔다가, 갈래길을 찾아 오른쪽으로 향했다. 나무 전망대 아래쪽으로 올 수 있는 갈림길이었다. 흙과 돌 위에서 또 다른 전망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사람 한 명 안 나오게 사진을 찍을 수 있기도 했다.
(인스타그램의 그 누군가, 참 고마워요.)
참 예뻤다. 다만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면서 새삼 사진을 보며 더욱 감탄하는 것은, 사진에는 그 당시의 빗방울이나 시끄러운 사람 소리가 안 담겨서인 것 같기도 하다.
아무리 사진 찍히는 걸 안 좋아한대도 이곳에서는 사진을 남겨야겠다 싶어 돌 위에서 사진을 찍기로 했다. 한두 명이 줄을 서 있었다.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부부가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었다. 쨍한 등산복을 입은 분이 거짓말 아니고 포즈를 계속 바꿔가며 10분 넘게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근엄하게, 산을 정복한 사람같이, 평범하게, …. 어쩌다 보니 계속해서 그의 모델 쇼를 구경하고 있었다. 조금 성질이 났다. (누가 기다리든 말든 개의치 않고 나 자신에 사랑에 빠지는 그 모습을 1% 정도는 닮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는 여자분이 가서 또 그만큼의 충분한 시간을 쓰며 포즈 쇼를 끝냈다.
드디어 우리 차례. 급하게 산 맨투맨을 입고 꼬질꼬질한 운동화를 신은 평범한 복장이지만 어쩔 수 없다. 쭈뼛쭈뼛 다른 곳을 쳐다보며 어색한 사진을 찍고, 얼른 달려와 그의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우리 다음 차례로 보이는 스킨헤드에 검은 상하의를 입은 멋진 외국분께서 우리 사진을 찍어주겠다 하셔서, 또 쭈뼛쭈뼛 어색하게 머리를 맞대고 사진을 찍었다. 나도 두 분의 사진을 찍어드리겠다고 했으나 사진 많다고, 괜찮다고 쿨하게 거절하시며 아내분 화보를 열심히 찍어주셨다. 또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고 사람들의 소리는 줄어들 기미가 없어, 다음 장소로 향하기로 하고 서둘러 산을 내려왔다.
계절이 두 번 바뀐 지금, 한국에서 페이토 호수 사진을 본다. 풍경 사진은 기가 막히지만 나의 어색한 모습은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도 가끔, 어색한 포즈인 내가 스스로 귀엽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이번 글을 쓰며 다시 한번 훑어보니, 그의 옆에서 제법 어색하지 않게 활짝 웃은 사진도 보인다. 같이 찍은 사진이 별로 없는데 멋진 신사분 덕분에 사진이 남아 있으니 좀 더 친해진 것 같고 기분이 좋다.
지금은 사진 속의 내가 맘에 차지 않고 어색한 표정만 눈에 띄겠지만, 지금의 나는 지금 이 순간에만 존재하는 것. 미래의 나에겐 그 어색하고 부족한 모습도 귀엽고 풋풋하다고 느끼지 않을까 싶다. 어색하다면 더더욱 많이 찍어야 그때의 활짝 웃은 내 사진을 간직할 수 있겠지. 정 어색하면 필터를 써서라도, 찍고 싶지 않더라도 가끔은 의식적으로, 그때그때 사진을 찍어보자, 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