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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최고의 맛, 모든 것이 완벽했던 장작 스테이크집

최고의 식당은 끝내주는 메뉴 더하기 사람

by 정그루



어떤 가게에 대한 감상은 맛 외에도 변수가 많다. 내가 어떤 상황일 때 갔는지, 주변 앉은 사람들이 어떠한지, 그 날 만난 서버는 어땠는지, 내가 주문한 메뉴가 그 가게에서 잘 만드는 메뉴인지, 등등. 물론 가장 중요한 요소는 ‘맛’ 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말이다.


구글 지도 후기를 보다 결정한 ‘블루버드’에서의 첫 번째 식사는 정말 모든 면에서 완벽했다. (구글 지도에 정성껏 후기를 남겨주신 친절한 한국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앨버타 주의 소고기가 궁금해 찾았던 블루버드. 태어나서 먹어 본 스테이크 중에서도 특별히 맛있다고 말하고 싶은 곳. 하지만 최고의 경험을 한 것은 비단 맛 때문만이 아니었다. 이 멋진 가게를 찾는 데, 그리고 정말 맛있는 최고의 메뉴를 고르는 데, 그리고 맛있는 메뉴를 여유 있고 행복하게 즐기는 데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들이 아니었더라면 최고의 경험을 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지금 생각해 봐도 새삼 감사하다.





한국에서는 보통 저녁시간이 조금 지났다고 할 시간. 대략 여덟 시 부근이었던 것 같다. 시간대가 좀 아쉽긴 해도, 당일에 예약이 가능한 게 어디냐, 감지덕지 가는 중이다. 가게 앞에 차를 세워두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위도가 조금 높다고 해가 이렇게 늦게 지다니. 체감상 아직도 오후 한 다섯 시 정도밖에 안 된 것 같다. 여름 캐나다 여행은 나 같은 올빼미족에게는 특히 최고인 것 같다.




“안녕하세요, 예약하셨나요?”


매우 밝은 표정과 목소리의 점원이 우리의 예약을 확인하곤, 여전히 밝은 미소로 메뉴판을 두 개 쓱 뽑아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자리를 안내했다.



건물 밖에 ‘1930’이라는 말이 쓰여 있던데. 거의 100년의 역사를 지닌 곳이라 생각하니 더 설레고 기대가 됐다. 아늑하고 예쁘게 꾸며진 나무 건물 안에서 메뉴를 구경하였다. 맛있는 메뉴를 고르고 싶은데. 실패하고 싶지 않은데. 방금 차에서 내리기 전에 잠시 봤던 한국 분의 블로그가 생각이 나서 얼른 다시 들어가 본다.


밴프에서 살았을 때, 본인의 송별 파티로 이곳에 오신 것 같았다. 캐나다 친구들이 다른 유명한 경쟁 스테이크하우스보다 여기가 더 맛있다 해서 여기에서 약속을 잡았고(“현지인 추천!”), 심지어 이곳을 여러 번 왔던 친구들이 함께였고(재방문!), 그녀가 도착했을 땐 그들이 알아서 가장 맛있는 메뉴들을 다 주문해 놨다는 것이었다(베스트 메뉴 추천!). 후기 속의 그녀는 스테이크와 음식의 맛에 황홀함을 감추지 않고 있었다. 그 어떤 후기보다 신뢰가 가는 후기였다.


이름 모를 동포여, 정말 고맙습니다.




“ 어, 일단 샐러드는 꼭 시켜야 할 것 같아. 크랩…뭐시기랬는데. 아. 이거다.

그리고 스테이크는 랜처스? 립아이…아, 이거다(헉! 비싸다). 그래도 이거 하나는 꼭 먹어보자.

나머지 하나는 뭐 시킬까? 같은 걸로 두 개 먹을까?”


- 아냐, 난 안심 먹어볼게.


“오케이.

그리고 여기 디저트가 미쳤대. 키 라임 파이도 하나 먹어 보자. 아, 추천메뉴가 더 있었는데.”


- 그 스테이크 양이 14oz였지? 은근히 많을걸? 일단 먼저 이 정도 먹어보자. 와인 한 잔도 마셔 그루야.



평소 술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근사한 공간에서 근사한 스테이크에는 와인을 곁들여 주면 기분이 좋지. 와인 이름을 읽어본다고 해서 특징을 아는 건 아니므로(내 취향 달달와인이란 취급하지 않는다는 정도만 알겠다. 흑흑.) ‘즐거움이 튀어나온다(?)’는 설명의 적당한 가격대의 피노 누아 와인을 한 잔 주문해 보기로 한다.


(지난번 남편 친구와의 식사자리에서 욕심내서 9oz를 주문했다가 억지로 와인 먹느라 괴로웠기 때문에 이번에는 처음부터 6oz로 주문한다.)


주문을 받는 서버가 매우 친절하고 따뜻하다. 가게의 인상에서 서버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에, 이런 점원이 있다는 건 가게의 복이라고 생각했다.



메뉴를 기다리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늦은 시간인 편인데도 가게가 거의 다 차 있다. 당일 예약이 되었기에 손님이 적을 줄 알았는데. 저마다 다른 세상과 상황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친구와 가족과 즐거운 담소를 조용조용 나누고 있다. 따뜻한 공간이다.


크랩 시저 샐러드의 등장! 이게 과연 그렇게 맛있을까?



경험해 보지 못한 범주의 새로운 맛이 입 안에 들어오면 뇌 한쪽이 팡! 하고 무언가 액체가 터지면서 흘러가는 느낌이 든다. 바로 몸이 흐물흐물해지면서 감탄사가 튀어나온다. 다행히 둘 다 이 샐러드가 제대로 취향 저격이었다. 입에 넣기 전쯤에는 비릿할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짭조름하면서도 부드럽고 아삭하고 풍미가 있는 맛이다. 까만 동그라미는 무엇인지 모르겠는데 바삭바삭 부서지면서 아주 맛있는 맛을 내고 식감까지 더해주었다.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수줍어서 물어보진 못했다.


기대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름 모를 그 한국분께 너무 고마웠다.


'이거예요. 맞아요. 최고예요!'


게 눈 감추듯 금세 게 샐러드를 다 먹어치우고, 다시 대기 시작. 어디 장작을 패러 갔나, 미디엄 레어로 시켰는데 안 나오네, 지루한 기다림.



테이블을 두리번두리번. 오, 여기는 냅킨도 검은색이네. 신기하다. 할 즈음. 드디어 스테이크가 나왔다.



겉보기에는 소박해 보이는 인상.


맛은?


다시 한번 뇌에서 무언가가 터졌다. 우물우물 고기를 먹는 입은 엄청난 도파민을 뇌에 전달해 준다. 그을음이 보이는 겉 부분은 살짝 바삭하다는 기분을 주고, 안쪽의 고기는 부드럽고 육즙과 기름기가 가득. 환상적이었다. 이게 스테이크지. 이런 스테이크라면 돈을 많이 내고 먹을 만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소 성의 없는 구도와 초점...


그동안 내가 립아이 스테이크를 안 먹어서 스테이크집 가서 큰 감흥이 없었나? 그가 주문한 안심도 물론 맛이 있었지만 부드럽고 바삭하고 풍미 넘치는 립아이스테이크를 이길 순 없었다. 나는 건강을 생각한 버섯 사이드를, 그는 감자튀김 사이드를 주문했는데 감자튀김이 훨씬 맛있어서 눈치를 보며 몰래 많이 뺏어먹었다.




과연, 고기 양이 풍족해서 배가 많이 불렀다. 그렇지만 그렇게 맛있다는데. 여기 또 언제 올 줄 알고. 키 라임 파이는 먹어줘야 한다.



그리고 나온 파이. 엄청난 양의 크림이 얹혀있는 파이. 아래엔 달달한 캐러멜 같은 것이 뿌려져 있다. 어디. 맨 아래 쿠키 같은 부분까지 빼놓지 않고 한 입에 먹어보기로 한다.


와…..

또 한 번 뇌가 팡!


한도를 초과하지 않을 정도의 꽤나 상큼한 라임 맛과 풍성한 크림 맛, 그리고 안쪽의 눅진한 치즈(?) 맛과 마지막 달달한 쿠키까지. 배가 불러도 꼭 한 번 먹어볼 만한 그런 맛이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감탄사를 내뿜으면서 눈을 마주쳤다. 진실의 미간과 함께. 여기 대박이다. 진짜 잘 왔지. 대박이지.




물이 필요하면 물을 주고, 중간중간 필요한 게 없는지, 맛은 괜찮은지 확인하던 밝은 직원이 이윽고 계산서도 금세 가져다주었다. 평소에 우리가 지출하지 않는 큰 금액이 나왔지만, 이곳의 음식과 서비스를 생각하면 납득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아니, 사실 서비스가 조금 덜 좋았더라도 맛으로도 일정 부분 이상 납득이 가능한 정도.


영수증만 잘 봤었어도 서버 이름 알 수 있었구나... 이제 알았네. 아쉽다.


나는 여전히 팁을 얼마나 해야 할지 망설였지만, 매우 만족한 그는 팁을 넉넉하게 주자고 했다. 처음엔 기분내기용인가 생각했는데, 더 친절하고 세심한 사람을 서버로 만난 덕분에 우리가 멋진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만큼의 표현과 보상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니 지출상 타격은 있을지언정 아깝지는 않았다.





아직도 밝은 하루가 아쉬워 밥을 먹고 밴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을 봤다. 한참 돗자리를 깔고 앉아 구경할 만한 여유 있고 좋은 공간이었지만 이 시간이 되니 바람이 꽤 차서 오래 있을 순 없었다. 행복한 기분으로 숙소에 돌아와, 블로그에 글을 올려준 친구에게 정말 고마웠다고, 너무 맛있었다고 댓글을 달았다. 그분은 이제는 한국에서, 나로 인해 캐나다에서의 추억을 소환하시며 매우 기뻐하셨다. 그리고 맛있는 메뉴를 더 추천해 주셨다.

한국 사람들은 여행지에서 한국 사람들을 만나면 왠지 모르게 반가워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몇 번 본 적이 있다(예시: 아, 여기 한국인들 많이 아는 데네! 덜 특별한 것 같아). 사실 그렇게 데면데면하고, 때로는 서로의 존재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던 한국 사람들도 막상 서로 얘기를 나눈다면 내 일같이 맛있는 음식을 추천해 주고, 내 사진처럼 열심히 사진을 찍어 주고, 좋았던 곳을 아낌없이 알려줄 사람들일텐데, 생각했다.



후일담:


이번 캐나다 여행을 통틀어 가장 맛있고 또 가장 환대받았던 행복한 경험에 나는 구글지도에 나의 감탄을 가득가득 담아 후기를 작성했다. 누군가도 나의 댓글이 참고가 되길 바라면서. 그리고 이대로 그냥 한국 돌아가는 게 못내 아쉬울 것 같아, 이틀 후 다시 한번 블루버드에 방문하자고 그를 설득했다.


두 번째 방문에도 스테이크는 여전히 맛있었다. 이번에는 다른 메뉴도 탐험했다. 지난번에 만났던 서버의 이름을 몰라 그분을 다시 만나진 못했다. 아쉽게도 그냥 그저 그런 서버를 만나 응대를 다소 늦게 받고, 우리가 주문하고 먹는 걸 노골적으로 계속 쳐다보는 옆 사람을 만났다. 그 테이블은 사람들끼리도 무척 시끄럽게 이야기하는 편이었는데 설상가상, 서버까지 특이하다. 메뉴 추천은 물론이요, 고객에게 하지 않을 말 할 말 구분 없이 말을 큰 소리로 쏟아내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인상만 찌푸리고 있었는데, 그가 계속해서 쳐다보는 사람에게 그들에게 “왜 그래? 한 입 줄까?”라고 물어보자 그들은 미안하다고, 너무 맛있어 보였다며 빵 터지며 사과했다. 몇 가지 스몰톡을 하며 훈훈한 분위기로 잘 마무리하는 그의 자연스러운 대화를 보자 새삼 아, 그는 캐나다인이었지, 싶었다. 물론 훈훈한 분위기로 마무리해 놓고 저건 무례한 거라고, 그리고 저럴 땐 대놓고 그냥 말을 해야 한다고 알려주는 단호함도 함께. (오, 쫌 멋진데.)


아무튼 두 번째 다녀오고 나서는 이전 글을 쓸 때보단 가게에 대해 느끼는 온도가 좀 낮아져서 후기를 수정해야 하나, 이 글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써야 하나 고민했다. 하지만, 사람 변수는 통제할 수 없는데 그걸로 가게의 평을 내리기에는 멋진 공간과 메뉴가 아쉽다. 글 쓰기 전에 다시 한번 맛에 대해 물어보니, 두 번 다 똑같이 엄청 맛있었다는 그의 반응이 돌아와서 자신 있게 올려보기로 한다. 그리고 나도 미래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이렇게 추천글을 남겨 둔다.



밴프에 가시게 되면, 앨버타 주의 스테이크를 꼭 한 번 드셔보세요. 저는 다른 스테이크집은 못 가봐서 뭐라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블루버드에 가 보시면 후회 안 하실 거예요.

가셔서 꼭, 크랩 시저 샐러드 드시고요, 스테이크 중에 하나는 꼭, 랜처스 립아이 스테이크를 드세요. 두 번째 갔을 때는 엄청나게 큰 립도 시켜봤는데, 맛있긴 한데 특별한 정도까진 아니었어요. 감자튀김도 드시고요,

아, 꽈리고추 요리를 강력 추천받았는데 제가 꽈리고추를 안 좋아해서 패스했지만 괜찮으시면 꼭 드셔보세요. 추천받은 것 중 당근 구이는 평범했어요.

아무튼, 좋은 서버와 이웃자리 사람들을 만나 최고의 시간이 되시길 저도 진심으로 바라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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