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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uwriting Oct 17. 2022

벨파스트 Belfast

흑백 영상이 전해주는 색다른 색감의 이야기와 추억들


<벨파스트>는  밸파스트 출신 브래너 감독의 유년시절을 바탕으로 한 반자전적인 영화입니다. 1960년대 북아일랜드 역사적인 분쟁 시기, 밸파스트를 배경으로 벌어진 종교 분쟁과 갈등이 빚어낸 폭력과 피해를 주인공 버디(주드 힐)의 어린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나날이 불안과 공포가 커져가는 즈음 가족과 짝사랑하는 캐서린, 그리고 벨파스트의 골목을 떠나야 할지도 모르는 9살 버디의 고민도 시작됩니다.






맑은 날이면 골목에 나와 음악과 함께 노래하며 춤을 추고 해질 녘이면 큰 소리로 아이들을 불러 저녁을 먹는 풍경, 모두가 서로의 가족을 알고 함께 돌보며 아끼던 모습이 흑백의 영상에 따듯하게 담겨 있습니다.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움직임이 우리가 자라온 골목 풍경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온 마을이 한 아이를 키운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저 오늘 하느님을 너무 많이 찾았어요




1969년 개신교와 가톨릭 간의 분쟁으로 동네가 폭력으로 물들어가던 시절, 어린 버디는 그래도 평소처럼 바리케이드를 지나 학교에 가고 친구들과 놉니다. 버디도 잠시 혼란에 뒤섞여 물건을 훔치기도 하고 폭력에 휩쓸리기도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모두 혼란 속에서도 평소처럼 학교와 직장을 가고 교회를 가며 일상을 살아갑니다. 2주에 한 번씩 일터에서 돌아오는 아빠(제이미 도넌)와 혼자 힘겹게 아이들을 돌보던 엄마(케이트리오나 발피)는 갈등이 점점 커지자 어쩌면 그들 삶의 전부였던 벨파스트를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릅니다.






버디가 자주 가는 할머니(주디 덴치), 할아버지(시아란 힌즈) 집에서 하는 대화가 무척 기억에 남습니다. 한껏 심각한 버디의 고민을 비유적으로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던 할아버지와의 추억은 버디의 마음속에 큰 중심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해 주는 할아버지, 그러면서도 벨파스트 사람으로서의 자부심을 알려주는 장면은 감동적입니다. 아마도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차별을 받고도 꿋꿋하게 견뎌낸 아일랜드인들 특유의 유머와 강한 민족의식의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할아버지가 버디에게 조언하는 캐서린과 같이 지낼 방법, 월세를 내던 방식에 관한 이야기, 달 착륙의 의미를 사실 근거로 알려주던 장면, 수학 공부를 돕던 과정은 모두  버디의 눈높이에서 이루어지면서도 할아버지만의 편법(?) 전수가 너무 자연스러워 슬며시 웃음 짓게 됩니다.





자칫 단조롭고 차가울 수 있는 흑백 영화가 추억을 기반으로 따듯함을 불러옵니다. 장면마다 적절히 섞여 흘러나오는 아일리쉬 한 Van Morrison의 음악들은 생동감을 주고 장면마다 입체적인 느낌을 줍니다. 사이사이 추억과 감성을 자극하는 비 오는 장면들이 특히 좋았습니다. 촉촉한 빗방울들로 복잡한 모든 상황에서 숨 고르기 하도록 쉼표를 찍어주는 연출력이 매력적입니다. 바리케이드 앞에서도 경쾌한 음악과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 그들의 유머와 여유가 아일랜드인들 특유의 모습인 듯합니다. 할아버지의 장례식 때, 클럽에서 모두가 즐겁게 춤추며 노래를 부르던 흥겨운 모습에서 그들만의 풍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남들은 내가 누군지 몰라도 난 알잖니, 내가 누군지 나만 알면 돼




넌 네가 누군지 알지?

넌 버디야, 벨파스트 출신이고,

여기선 다들 널 알아.

남들은 내가 누군지 몰라도 난 알잖니.

내가 누군지 나만 알면 돼.

 

온 가족이 널 위하지.

네가 어딜 가든 무엇이 되든,

그건 변함없는 사실이야.

그것만 알면 넌 안전하고 행복할 거다.



어린 버디에게 건넨 할아버지의 이 한마디는 그 무엇보다 버디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큰 힘이 되었을 듯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버디의 억양이 새소리처럼, 노래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 듣기에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연기를 처음 시작한 아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영화에 몰입하게 하는 순수한 연기가 좋았습니다.



'아일랜드인은 떠나기 위해 태어나' 이 한마디엔 아일랜드인들의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벨파스트는 언제든 여기서 너를 기다릴 거다, 난 어디 안가.'라는 말처럼 고향을 떠나더라도 그들의 마음속에 남은 따듯한 추억과 행복한 기억들은 항상 그들 삶의 바탕에 자리하고 있을 것입니다. 실제 역사적으로도 국가의 여러 가지 어려운 사정으로 이민을 가거나 고향을 떠난 아일랜드인들이 많습니다. 본국보다 아일랜드 혈동으로 세계 전역에 거주하는 인구가 훨씬 많습니다. 끊임없이 떠나고 남고, 떠나고 남고...





마지막,


떠난 이들

그리고 길 잃은 모든 이들을 위하여







구름 가득한 벨파스트의 항구와 아름다운 밴 모리슨의 음악, 왁자지껄 소란스러운 골목 풍경들과 함께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고 벨파스트에 혼자 쓸쓸히 남은 엄마의 마음은 무척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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