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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uwriting Nov 09. 2022

릴리와 찌르레기

문득문득 떠오르는 아픔의 조각들, 그리움



<릴리와 찌르레기>는 아기를 잃은 부부가 슬픔과 상실감 속에서 고통을 견뎌내고 이겨내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평온한 가정에 찾아온 사랑하는 딸의 죽음, 부부는 말할 수 없는 충격과 슬픔에 빠지지만 각자의 슬픔을 견뎌내는 방식은 서로 다릅니다.





초등학교 미술교사인 잭 메이너드(크리스 오타우드)는 슬픔과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정신병원에 입원하지만 생각처럼 치유가 되지 못한 채 계속 깊은 슬픔에 잠겨있습니다. 병원을 나와 학교(직장)로 돌아가서 매일 아이들과 지낼 자신이 없습니다. 릴리가 방문 때마다 주고 가는 봉투 - 포장지 안에 스노볼? - 는 계속 쌓여가지만 잭은 차마 봉투를 열어보지 못합니다. 시간을 견뎌보는 중이지만 잭은 자신의 슬픔이 너무나도 커서 옆에 있는 아내 릴리 메이너드(멀리사 매카시)의 아픔을 미쳐 돌아보지도 못합니다.






겉모습에 속지 마



슈퍼마켓 매장에서 일하는 릴리도 실제로는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상태지만 겉으로는 씩씩하게 지냅니다. 하지만, 직장에서 멍하니 넋을 놓기 일쑤고 업무상 실수가 반복되자 직장에서도 위기를 맞이합니다. 1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있는 남편을 만나기 위해 왕복 2시간 거리를 운전하며 다녀 오지만, 남편도 자신도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점점 무기력에 빠져 하루하루 버티던 릴리, 어느 날 집의 정원을 정리하던 중 찌르레기의 공격을 받습니다. 정원에 둥지를 튼 찌르레기와의 싸움은 계속되었고, 정원의 식물을 모두 없애려던 릴리는 덤불 속에서 작은 열매를 발견하고, 작지만 소중한 생명을 한참 바라봅니다.


'나는 잠깐 쉬고 싶어. 다들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일상을 살아가는데 멈추라고 하고 싶어.'



어느새 릴리는 자신을 공격한 찌르레기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합니다. 릴리는 아예 찌르레기의 공격에 대한 방어로 헬멧을 쓰고 살충제를 잘못 사용한 것을 인정하며 자신의 힘든 상황을 하나씩 이야기합니다. 그리곤, 집안 구석구석에서 아기의 흔적들이 느껴지지만, 릴리는 그동안 그대로 두었던 아이의 물건을 모두 버리고 빈 공간으로 집을 정리합니다. 찌르레기의 둥지에서도 작은 생명을 지키는 데 사용된 딸의 물건과 흔적들이 발견됩니다.



릴리와 찌르레기의 싸움(?)은 의외의 결과를 맞이합니다. 아이를 잃은 상실감을 극복하지 못한 릴리와 둥지의 새끼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려 공격성을 보였던 찌르레기. 릴리는 찌르레기가 자신을 공격하며 지키려 했던 것이 소중한 자식과 가족이었다는 것에 동질감을 느낍니다. 릴리는 찌르레기와의 싸움을 통해 조금씩 자신의 슬픔을 덜어내고 스스로 치유하기 시작합니다.






나도 만나기 싫을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 있어?




남편의 방문 거부로 흥분한 릴리는 우연히 소개받은 수의사 래리 파인(케빈 클라인)과 이야기를 하며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남편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상담을 원했지만 아무도 탓하지 않는다는 릴리의 말에 위태로운 불안을 느낀 래리는 릴리가 스스로의 감정을 끄집어낼 수 있도록 곁을 내어줍니다. 괜찮다고 하지만 괜찮을 수 없는 릴리, 마음속의 얘기를 꺼내면서 울컥합니다. 자신의 감정에서 비켜섰던 릴리가 드디어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래리의 말대로 남편과 함께 대화를 시도합니다. 각자의 슬픔 속에서 한 걸음씩 나와, 서로 나누고 가볍게 주고받는 말들 가운데 릴리가 드디어 ''를 내뱉습니다. "나도 만나기 싫을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 있어?" 잭은 다소 충격을 받지만 새삼스레 아내의 상태를 생각하게 됩니다. 릴리의 솔직한 감정 표현을 계기로 서로 화도 내고 화해도 하면서 그렇게 조금씩 대화를 이어갑니다.







'어떻게 다시 시작하죠? ' 너무나 막막한 일이 생기면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생활 주변을 정리하면서 아픔도 하나씩 정리해가야 합니다. 옛말에 '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특히나 사람의 죽음은 아무리 슬퍼해도 결국 다 잊힌 듯한 어느 시점에도 시시때때로 불쑥 기억으로 아픔으로, 그리움이 밀려오곤 합니다. 래리의 말대로 슬픔의 3단계 - 협상, 분노, 우울로 이어지는 과정, 아플 땐 아프다고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드러낼 줄 알면 좋지만, 그러지 못하기에 더욱 힘이 듭니다. 릴리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마음속 응어리를 비워가는 과정에서 래리가 릴리에게 건넨 말은 마음이 힘든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말인 것 같습니다.



누구를 탓해야 하나요?

옳고 그름이나 선악을 떠나서 원래 인간이란 게 그래요.
이유 없이 일어나는 비극을 도저히 못 받아들여요.
감정은 어떻게든 분출해야 하고 항상 그렇게 돼요.
최악의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탓해요.

남편은 당신 기분을 알아요?
남편과 대화를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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