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러치글 100번째 발행을 하며 알게 된 것들
글을 쓸 수 있어 다행이고, 그저 '글 쓰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저는 남들의 평가에 그리 민감한 사람이 아닙니다. 아니 거의 무시하는 편입니다. 누가 뭐라 하던 내가 생각해서 필요하고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만 않으면 그냥 합니다. 설사 누가 험담을 하거나 비판, 비난을 하더라도 가만히 듣습니다. 그건 저에 대해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생각일 뿐이니 듣고 참고만 합니다.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구나' 하는 정도랄까? 아마도 그래서 세상 살아가기가 남들보다 더 귀찮고도 번거로웠을지 모릅니다. 고집스러운 제가 브런치에 글을 쓰고 벌써 100번째 글을 발행합니다. 그동안 글을 발행하면서 느낀 점과 새삼 알게 된 것과 걱정스러운 것을 정리해 봅니다.
새롭게 알게 된 것들
#. 수다쟁이
사실 일상에서 많은 말을 하지 않는 편입니다. 과묵한 건 아니지만 불필요한 말로 인한 오해와 설명(혹은 변명?)을 하고 싶지 않아 의도적으로 말을 줄이는 편입니다. 그런데, 브런치에 글을 쓰며 느낍니다. 사실, 제 안에 엄청난 수다쟁이가 숨어 있었다는 걸. 어찌 그리 말을 참고 살았을까 스스로 신기할 정도입니다.
#. 서랍정리
계절이 바뀔 때마디 가구와 옷장, 서랍을 정리하곤 합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과정은 마치 지저분하고 복잡한 책상 서랍을 하나씩 정리해 가는 기분입니다. 어지럽게 어수선하고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던 서랍을 정리하며 아~ 이런 게 다 있었구나!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겨보곤 하는... 그러면서 하나씩 정리를 합니다. 예전의 묵은 일기와 사진첩을 넘겨 보듯 망가진 물건을 살릴 방법을 궁리해 보듯 글쓰기를 하며 그런 시간을 갖습니다.
#. 마음의 짐 덜기
브런치 글을 둘러보며 브런치에 글을 쓰는 수많은 마음들을 생각해 봅니다. 누군가는 깔끔하게 정리를 하고 다른 누군가는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작은 것들에 지속적인 관심을 놓치지 않고 유지해 가는 힘을 봅니다. 반짝거리는 일상을 기록하고, 기억하고 싶진 않지만 자기 삶의 일부로 아픈 기록을 남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산다는 일은 다 비슷해서 브런치에서 그 일상들과 수많은 세세한 이야기에 공감하며 서로 위안을 얻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면에서 수많은 브런치 작가들의 글은 서로서로에게 모두 소중합니다.
#. 출판 직전 생생한 글의 맛보기 맛
신제품의 한 스푼을 먼저 맛보는 기분과 비슷하달까요? 브런치 글들을 읽으며 마치 출판 직전의 원고 ‘날것’을 만나는 것처럼 그 생생함에 빠집니다. 조금 거친 것도, 세련된 것도 모양은 다 다르지만 관심 있는 주제와 이야기를 누군가 같이 고민하고 풀어낸 것을 볼 때 혼자 보물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 좋습니다.
여전히 어려운 것들
#. 브런치 조회수와 댓글
그저 글을 쓰다가 어느 날 갑작스러운 조회수가 늘어나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사실,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한다는 것 외에 다른 의미를 두지 않았던 터라 구독을 해주시거나 라이킷을 눌러 주시는 분들에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이 있었습니다. 어떡하지?... 이런 면에서 소통이 부족하다는 걸 깨닫습니다. 갑자기 왜? 뭐지? 하다가... 천천히 생각해 봅니다. 아, 이런 생각들을 의외로 많이 하고 있었구나. 더불어, 글쓰기가 조심스러워지기도 하지만 일희일비에 마음 쓰지 않으려 합니다. 애초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후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한 정리와 청소를 하고 있는 중이니까요.
#. 처음 마음 유지하기
글을 왜 쓰고 싶은가? 단순한 취미로? 단순한 취미였다면 다른 대안도 있었을 것입니다. 굳이 글로 써야 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자신을 정리하고 스스로를 알아가는 과정, 그리고 삶의 남은 시간이 그래도 조금은 더 본래의 내 모습에 가까운 삶을 만들어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과정이 다른 것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고 그나마 스스로 해 볼 수 있는 것이 글쓰기였습니다. 감히 유명 작가를 꿈꾸지도 않지만 그저 '나에 충실하고자 하는 처음의 마음'을 유지하기민 해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 꾸준히 하기
살면서 뭔가를 숨 쉬듯 아무렇지 않게 꾸준히 하기는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그것들이 더욱이 스스로 원하거나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다행인 것은, 브런치에 올리는 글은 그런 면에서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하고 있습니다. 살다가 어느 시점 내가 누구인가 의문이 들었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정리를 해야만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의미 없는 일이지만 저에겐 반드시 해야만 하는 묵은 숙제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을 '글쓰기'에서 찾게 된 것은 무척 다행입니다. 조금 오버하면 쓸 수 있어서 다행이고 쓰게 되어서 감사할 뿐입니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자신을 알아가고 나만의 길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그래서 전 그 어려운 꾸준함을 '꾸준히'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22년 8월 중순 브런치에 글 발행을 해도 좋다는 메일을 받고 한동안 글쓰기를 망설였습니다. 혼자 일기장에 써야 하는 것 아닌가, 굳이 브런치에 써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하는 고민을 브런치 수락 메일을 받고 거꾸로 고민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서 첫 발행을 눌렀고 어느새 100번째 발행을 합니다. 조금 살아본 세월도, 또 살아가야 할 세월도 모두 어렵고 두렵긴 마찬가지지만 글을 쓰며 보다 든든히 '나 자신'에 뿌리를 두고 계속 가려고 합니다.
그동안 남루한 글을 찾아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