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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uwriting Sep 06. 2023

나이를 먹으면 부부는 각자의 방향으로 움직인다

남편은 조금씩 안으로, 아내는 점점 더 멀리 밖으로 향한다



가끔 만나는 노부부의 모습들, 말하지 않아도 느린 움직임 속에 서로서로 통하는 노부부의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내고 같이 늙어간다는 사실은 축복입니다. 남편은 은퇴를 하고 집안에 시선을 두고 자꾸 안으로 들어옵니다. 반면, 아내는 그동안의 관계가 넓어지면서 시선이 더더욱 밖으로 향해 갑니다.






남편을 잃고 나서 가장 생각날 때가 쓰레기 버릴 때였다고 하던 어느 할머니의 회고가 생뚱맞을 수도 있지만, 매일 아내가 신경 쓰지 않게 늘 알아서 쓰레기를 처리해 주던 남편이 사소한 순간에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또, 남편은 아내를 잃고 외출을 위해 옷을 갖춰 입어야 할 때 정말 어찌 할 바를 몰라 가장 아내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양말과 속옷과 구색 맞춰 혹은 격식에 맞춰 입어야 하는 순간에 그 작은 것 하나 스스로 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놀라움과 실망이 함께하는 상태에 도달합니다. 사소한 습관과 행동들이 기억을 되살리고 사소한 것에 아쉬워하고 그리워합니다. 사는 것이 어쩌면 이렇듯 사소한 날들과 사소한 기억들의 전체이기도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삶이란 것이 어찌 보면 거창한 일은 생각보다 많이 일어나지 않기도 합니다.






함께 나이 들어가는 노년의 소소한 추억들



부부가 함께 늙고 함께 생활하는 것만큼 움직이는 시선도 같은 방향이라면 더없이 좋겠지만 대개 사람의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회생활의 끝무렵이 되면 남편의 시선은 집으로 향하게 되고 아내는 모든 자신의 보살핌이 끝날 무렵 시선이 밖을 향하게 됩니다. 젊은 날 자녀를 키우며 함께 한 기쁨과 소소한 추억들을 뒤로하고 남은 시간을 각자의 방향에서 시간을 보내려 합니다. 어찌 보면 그동안 각자의 영역에서 임무가 끝나가는 시점이라 당연한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남편은 집안에서 자신의 위치와 안정감을 찾고 싶어 하고 아내는 집안의 울타리에서 조금 벗어나 세상에 관심을 갖고 새로운 시선으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하지만 늙은 남편은 스스로 밥수발을 들고 집인일도 할 줄 알아야 하고 늙은 아내도 혼자 움직임에 제한을 두지 않아야 합니다. 서로 보완이 되는 관계로 유지할 수만 있다면 어느 누구 한 사람이 같이할 수 없는 순간이 와도... 결국은 남편이나 아내 모두 각자의 독립성을 갖출 필요가 있습니다.






방향은 달라도 서로 바라보며 독립적으로



남편은 잠시 아내가 없더라도 기본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가사와 요리를 배워야 합니다. 그것은 먹고사는 생존과 연결된 문제이기에 매우 중요합니다. 어쩌면 가정을 꾸려가는데 필요한 소소한 정리의 기술이나 저렴하게 물품을 구입하거나 공과금을 처리하는 방법들도 배워야 할지도 모릅니다. 반면, 아내는 부득이 전문가가 필요한 일을 제외한 사소한 물건의 수리나 못 박기, 분리수거, 형광등갈기, 적당히 힘을 써야 하는 일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스개 소리로, 아내가 곰국솥에 국을 끓이고 있으면 남편은 아내의 신발을 숨겨야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지만, 서로 같이하지 않아도 스스로 존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화《굿 윌 헌팅》중, 숀이 윌에게 죽은 아내의 소소한 버릇들, 아내와의 추억들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과 교감을 나누고 함께 한다는 것의 의미를 알려주는 장면이기도 한데요, 항상 함께 하지만 언젠가 함께할 수 없는 순간들이 오면 그 상실감이 너무도 커서 일상생활이 어려운 경우가 생깁니다. 마음이 무너지고 생활이 무너지고 모든 세상의 의미가 덧없어지는 순간이 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관계란 서로 세상에 대해 마음을 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내게 하는 것입니다. 비록 서로의 방향은 달라져도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로, 서로 같이할 수 없는 순간이 오더라도 함께 존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숀의 말을 곰곰이 곱씹게 됩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각자의 세계로 들일 사람을 선택하니까

중요한 건

과연 서로에게 얼마나 완벽한가 하는 거야

가까운 관계란 바로 그런 거지

영혼의 짝이란 네 마음을 열고 영감을 주는 존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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