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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uwriting Dec 07. 2022

길버트 그레이프

만약 네가 원한다면 너는 어디든지 갈 수 있어



한적하고 작은 시골 마을 엔도라, 때가 되면 줄지어 지나가는 캠핑카 행렬을 매번 바라보지만 한 번도 떠나지 못하는 길버트(조니 뎁)는 집안의 가장으로 가족을 돌보며 성실히 살아갑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식품점에서 일하며 장애가 있는 어린 동생 아니(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아버지의 자살로 충격을 받아 움직이기도 힘든 초고도 비민의 어머니, 누나 에이미와 반항적인 십 대 여동생 앨렌을 돌봅니다.

  




10살을 넘기지 못할거라던 아니가 18번째 생일을 앞두고 있습니다. 가족들이 모두 파티 준비에 바쁘고 정신없는 와중에 아니는 위험한 가스탱크에 올라가기를 반복합니다.





틈만 나면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동생 아니는 어머니의 엄청난 무게와 함께 집안의 골칫거리지만 길버트의 말은 절대적으로 따릅니다. 한편, 캠핑카를 타고 여행 중인 베키(줄리엣 루이스)는 고장 난 차 때문에 엔도라에 잠시 머물게 됩니다. 우연히 가스탱크에 올라가 있는 아니를 따뜻하게 대하는 길버트를 보고 호감을 느끼는 베키. 가족에 꽁꽁 묶여 옴짝달싹도 못하던 길버트에게 베키의 등장은 새로운 희망을 갖게 합니다.   




 


'잘 가'는 떠나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야. 나는 아무 데도 가지 않아 




베키를 만나러 가기 위해 아니에게 스스로 목욕을 하도록 두고 간 길버트, 아름다운 노을조차 바라볼 여유가 없습니다. 길버트의 심성을 좋아하게 된 베키, 자기 자신을 위해 바라는 것 하나 생각해내지 못하는 길버트를 바라보는 표정에서 안타까움이 묻어납니다. 베키는 길버트와 아니 외에도 실제 영화를 보는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특유의 표정과 낮은 목소리, 느린 듯한 말투가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아마 아니가 길버트에게 맞고 밤에 찾아간 것도 이런 편안함을 찾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아니를 때리고 갈 곳이 없던 길버트도 역시 위안을 얻을 곳이 베키였을 듯합니다.


 



아니를 돌보며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고 말해주는 든든한 형 길버트지만 아니를 때리고 화나가서 집을 나와도 '갈 곳이 없다'는 슬프고 쓸쓸한 고백에 눈물이 납니다. 사랑하지만 버거운 가족을 끝까지 놓지 않는 길버트의 마음속 아픔이 느껴집니다. 죽을 때까지 아픈 아들을 가슴 아파하는 엄마, 마을 사람들에게 놀림 당할 걸 알면서도 경찰서에 가서 아니를 데려오는 엄마의 용기도 놀랍습니다. 또한 아이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간 엄마, 그 엄마를 놀림감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집을 불태우는 자식들, 가족들 모두가 각자의 입장에서 배려와 최선을 다합니다.


 


만약 네가 원한다면 너는 어디든지 갈 수 있어




디카프리오가 나오는 영화를 예전엔 보지 않았습니다. 등장 때부터 화려한 외모로 온갖 매스컴에 떠들썩했던 배우로 기억됩니다. 당시 그 유명한 타이타닉 조차 찾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후회합니다. 볼 걸... 영화에 디카프리오가 나온다는 걸 알면서도 아니가 디카프리오라는 걸 알기까진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디카프리오와 참 많이 닮은 대역이 있구나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대역이 아닌 디카프리오의 연기였습니다. 당시가 10대 후반 정도였을 것 같은데요, 타고난 배우였습니다. 실제 장애인으로 오해할 만큼의 표정과 손짓, 몸짓들, 베키를 만날 때의 순수한 표정, 엄마의 죽음을 알아챈 아니의 표정, 장면마다 섬세한 연기에 감탄하게 됩니다. 디카프리오 특유의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해맑은 미소와 눈빛, 섬세한 몸짓이 보는 사람을 현혹시키기 충분했을 정도였습니다. 한동안 멍하니 충격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살짝 배불뚝이 중년의 모습이지만 연기만큼은 여전히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누나와 앨리까지 모두 각자의 길을 따라 떠나고 길버트와 아니도 길을 나섭니다. 영화의 시작 캠핑카 행렬을 바라보며 부러워하던 길버트와 아니가 이번에는 그 행렬 안에서 '그들처럼' 길을 떠나는 선택을 합니다. 부러움만 있던 길버트에게 어디든 갈 수 있는 희망과 설렘이 생겼습니다. 영화의 오프닝과 클로징에서 캠핑카의 행렬을 기다리는 길버트와 아니의 모습은 같아 보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들어 있습니다.



'We can go anywhere,  If we want!  We can go anywhere.'



가족과 마을을 떠날 생각조차 하지 못하던 길버트와 아니는 가방을 꾸립니다. 가족으로 인해 마음이 무겁기도 했지만 태어나 처음으로 고향을 떠나는 길버트의 얼굴엔 설렘과 기대가 가득합니다. 베키를 다시 만난 길버트, 삶의 무게가 훨씬 가벼워졌음을 홀가분한 표정에서 알 수 있습니다. 드디어 날개를 활짝 펴는 길버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처음 보는 길버트의 표정과 생기 있는 모습을 보며 앞날을 응원하게 됩니다.








조용하고 담백한 분위기가 너무 아름답게 느껴졌던 영화. 길버트가 더 넓은 세상 밖으로 나가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30여 년 전 영화지만 전혀 촌스럽지 않았습니다. 90년대 미국 시골 마을 배경이 오히려 아날로그적 감성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연속으로 2번을 반복해서 봐도 역시 좋은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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