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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uwriting Dec 21. 2022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이보다 더 좋아질 수 없다면 어쩌겠소?

 


이웃과 말을 섞지 않고 감정 교류 없이 자신만의 규칙대로 살아가는 멜빈 유돌(잭 니콜슨)은 강박 신경증 진단을 받은 베스트셀러 작가입니다. 자신의 강박 증상대로 길에선 절대 보도블록의 경계를 밟지 않게 걷고 문 걸쇠는 꼭 정해진 숫자만큼 반복해서 위아래로 돌린 후에야 안심을 합니다. 영화는 그만의 방식을 세상의 방식으로 이끌어내는 두 명의 이웃-화가 사이먼 비솝(그렉 키니어)과 식당 종업원 캐럴 코넬리(헬렌 헌트)를 통해 유쾌하게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이웃엔 사이먼이 살지만 게이라서 마음에 들지 않고, 유일한 외출은 정해진 시간에 오직 같은 자리에서 캐럴의 서빙을 받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리에 앉은 남녀를 쫓아내는 식당 장면처럼 멜빈은 아무렇지 않게 독설을 퍼붓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내가 강아지 때문에 눈물을 흘리다니 




다른 사람의 감정 따위는 관심도 없는 멜빈, 사이먼의 반려견 버델을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사이먼이 강도를 당해 병원에 입원하면서 어쩔 수 없이 버델을 돌보게 되는데 이상하게 자꾸 강아지에게 신경이 쓰입니다. 왠지 어색하고 귀찮지만 강아지와 보내는 시간이 멜빈을 바꿔 놓습니다. 냉장고를 열어 강아지 밥을 챙기고 강아지가 밥을 안 먹으면 피아노를 쳐줍니다. 괴팍한 줄만 알았던 그가 멜로 베스트셀러 작가다운 츤데레의 매력을 내뿜습니다. 강아지를 통해서 그만의 인간적인 감정을 드러냅니다.  그동안 게이라서 혐오했던 사이먼이 맞이한 고통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우정을 쌓아갑니다.  



 



대사가 없어도 감정이 전달되는 잭 니콜슨의 섬세한 얼굴 표정 연기는 두말할 나위 없지만 멜빈의 걸음걸이를 따라 하고 눈빛 연기까지 가능한 버델의 앙증맞은 모습을 보면, 어떻게 강아지가 저렇게 표정과 눈빛 연기를 할 수 있을까 감탄하게 됩니다.  버델이 다시 사이먼에게 돌아갈 때 멜빈과 정들어 머뭇거리는 버델,  버델을 보내는 멜빈은 눈물을 흘리며 피아노를 치는데 가슴이 미어집니다. 분명 조금은 슬픈(?) 장면이어야 하는데 자꾸 웃음이 납니다. 잭 니콜슨은 영화의 장르가 변할 때마다 완전히 다른 캐릭터로 변해서 보는 영화마다 기대를 갖게 하는 배우입니다. 때로는 섬뜩하고 끔찍하게 때로는 코믹하게, 또 때로는 까칠하고 능청스럽고, 귀엽기까지 안 되는 게 없는 배우입니다.   




오직 캐럴의 서빙을 받기 위해, 캐럴 아들이 치료받도록 출판사 사장에게 부탁(?)을 하지만 사장의 자식 자랑엔 용건이 끝났다며 바로 등 돌리고 떠나는 멜빈! 진저리 치는 사장의 반응이 코믹하지만 이 또한 멜빈만의 소통 방식입니다. 캐럴은 갑작스러운 의사의 방문과 멜빈의 서빙 요구가 황당하지만 아들을 치료해준 멜빈에게 마음을 엽니다. 둘만의 식사 자리에서 멜빈의 말에 마음이 상한 캐럴은 자신에 대해 칭찬을 해보라고 요구합니다.



You make me wanna be a better man

캐럴에게 더할 수 없는 최고의 칭찬을 합니다.







문 잠그는 거 까먹었어




여행 중 사이먼과 캐럴의 대화에서 혼자 소외된 기분을 느낀 멜빈, 자신이 갖고 온 음악 중  '상황이 절박할 때'  Nat King Cole의 I Love You For Sentimental Reasons를 틉니다. 상황에 맞게 철저히 준비한 멜빈의 음악 센스가 너무 어이없고 귀여워서 보는 내내 계속 웃게 됩니다. 사이먼과 캐럴은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습니다. 사이먼은 부모님 이야기와 화가가 된 계기를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멜빈은 살짝 질투를 하지만 캐럴은 칼같이 자릅니다. 시간이 갈수록 세 사람의 여행에서 멜빈은 외톨이가 되어 갑니다. 사이먼은 스스럼없이 캐럴과 친해지면서 화가로서 자신감을 회복해 갑니다.




여행이 끝나고 멜빈이 사이먼의 충고에 따라 캐럴의 집으로 가려는 순간, "문 잠그는 거 까먹었어" 문 걸쇠를 여러 번 돌리던 습관이 사라진 걸 알게 됩니다. 새벽시간 따뜻한 빵집을 함께 가자며 캐럴을 찾아간 멜빈은 캐럴을 향한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고, 가끔씩 보도블록의 경계를 살짝 벗어나 걷고 있는 자신의 변화를 발견합니다.




강박증을 받아들이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던 멜빈이 변해가는 과정을 보면서 그동안 그가 세상 속에서 살기 위해 얼마나 애써왔는지 짐작이 됩니다. 그의 말대로 '이보다 더 좋아질 수 없다면 어떻게 할까요?' 나름 그만의 방식을 유지했던 겁니다. 마음은 한없이 따뜻하고 세심하지만 겉으로는 철저히 괴팍함으로 포장했던 멜빈이 사이먼과 캐럴을 만나면서 비로소 자신의 본성으로 돌아옵니다. 나이를 먹어도 누구나 세상을 살기엔 늘 서툴고 세상 모든 것들엔 항상 이유가 있습니다. 오랜만에 잔잔한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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