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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uwriting Feb 22. 2023

엄마가 시간을 기억하는 방식

모든 시간의 기억에 이름을 붙이다


시간이 지난 모든 순간을 우리가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가장 좋았던 순간이나 힘들었던 특정의 순간을 찰나로 기억할 뿐입니다. 그것도 시간이 더 지나면 점차 흐려지고 맙니다. 사람이 한평생을 살면서 끝까지 갖고 가게 되는 기억은 어떤 것일지 순간 궁금해집니다.






아기가 옹알이를 떼고 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부모들이 여기저기 단어가 적힌 카드와 그림이 그려진 카드를 붙이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집에서 볼 수 있는 꽤 흔한 풍경입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말을 소리로 먼저 배우면서 눈으로 그림을 보며 따라 하고 반복함으로써 직관적으로 사물과 함께 글도 배울 수 있게 됩니다. 신기하게도 눈에 익은 그림과 이름을 한꺼번에 배우며 글도 함께 익힐 수 있어 인지 능력이 향상됩니다. 가장 가까이 집에 있는 물건들과 관계에서부터 시작을 합니다. 그렇게 언어를 배우며 세상을 하나씩 습득해 갑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희미해지고




어느덧 팔십 년 인생을 살아낸 팔순 노모의 기억은 이제 조금씩 희미해져 갑니다. 새로 얻는 기억보다 알고 있던 것들이 더 빨리 잊히고 자주 깜박깜박합니다. 그런 과정이 여러 날 반복되면 점차 자신의 기억을 믿지 못해 확인하느라 여러 방법을 고민하게 됩니다. 그렇게 엄마의 쪽지와 메모가 등장을 합니다.




열쇠를 잃어버리면 집에 들어올 수가 없어서 전자키 배터리 교체일을 출입문 옆에 붙여둡니다. 이미 한 번의 경험으로 놀란 적이 있던 터라 다시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필요한 메모들을 여기저기 꼭꼭 붙여놓습니다. 또 친구의 전화번호가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어도 혹시나 휴대폰에서 못 찾아 연락을 못할까 봐 번호 순서대로 노트에 빼곡하게 적어 서랍장 문 안쪽에 붙여둡니다. 휴대폰은 그저 지인이나 자식들과의 연락 도구일 뿐, 휴대폰으로 단순히 전화 통화만 하는 상태이니 그 안에 어떤 소중한 것이 들어 있더라도 찾아내서 사용하기까지는 너무 어렵습니다. 노인들이 멈춰 선 채 주머니에서 꼬깃한 종이를 펴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거나 작은 손수첩을 펼쳐 찬찬히 보는 광경이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집안의 여기저기 하나씩 메모한 쪽지가 붙여질 때마다 무언가 새로운 시도가 있었다는 흔적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다시 반복할 시점에는 또 시간이 얼마간 지나있을 테고 그럼 자신의 기억이 그만큼 더 희미해질 거란 것을 알고 있기에 미리 붙여두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엄마의 집은 아이들에게 말과 글을 가르치던 그때처럼 집안이 온통 메모로 채워집니다. 나이를 먹으면 어린애가 된다는 말이 이런 방식으로도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새삼스럽고도 참 특이한 느낌이 듭니다. 엄마의 이런 애씀이 안타깝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런 노력의 흔적들이 고맙기도 합니다. 함께할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어 함께할 시간을 더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함께했던 사소한 순간들이 더 많이 기억되길




살아오면서 겪은 모든 일들 중 어떤 것이 엄마의 마음속에 가장 깊이 잊히지 않고 남게 될까 생각해 봅니다. 그 마음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아무쪼록 힘들었던 것들이 아니라 같이 피식피식 같이 웃던 순간이길 바랍니다.  잠시 서운하고 싸웠을지라도 함께했던 그런 사소한 순간들이 더 많이 기억되길 바랍니다. 자식은 또 이렇게 부모를 통해 서서히 나이 드는 순간순간과 그 의미를 배웁니다.




세상은 아무래도 어떤 시작점에서 시작된 출발이 어느 특정 지점을 지나고 나면 다시 처음의 시작점을 향해 되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마치 마라톤의 반환점을 돌아 출발선으로 골인하는 것처럼 우리가 사는 인생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산다는 것이 그리 거창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끊임없는 성공과 실패가 반복되는 것이 삶입니다. 평범한 일상의 감사함을 뒤로하고 우린 자꾸 궤도를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느라 긴 세월을 보내는 것 같습니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더 같이 웃고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들이 많았다면 나름 행복한 것이 아닐까요? 그저 별 것 아닌 그런 것들이 오히려 더 우리 마음에 대부분 바탕을 이루고 위로가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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